나는 한번 맘에 든 책은 여러 번 본다. 때로는 수십 번씩. 좋아하는 노래 다시 듣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노래는 몇 백 번 씩 다시 듣지만 책은 몇 십 번 다시 읽을 뿐이다.
이런 습관은 어릴 적 책 귀했던 시절을 살아봤기 때문일까? 하얀 바탕에 검은 무늬 있으면 무엇이나 주워 읽던 시절, <그리스로마 신화>, <플루타르크 영웅전>, <공자 일대기> 세 권을 수십 번 읽어 달달 외웠다. 10살 무렵이었다. ‘복잡할수록 재미있다’는 것을 일찍 터득한 나는 요새 아이들이 복잡해서 더 좋아한다는 ‘해리 포터’ 열풍을 충분히 이해하겠다.
나는 그리스로마신화의 모든 신들 이름과 에피소드들을 달달 외웠고, 특히 재미있어 했던 것은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요정들, 영웅들 이야기였다. 이렇게 그리스로마신화를 습득한 덕에 나는 서구의 문화 토양의 근원에 대해서 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난 후에야 그 효과를 알게 되었다.
풀루타르크 영웅전의 그 수많은 영웅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그리스의 작은 나라 ‘테베’의 ‘데모스테네스’였다. 다른 영웅들은 주로 칼로 이루어졌는데, 데모스테네스는 ‘세치 혀’, 즉 웅변을 통해 국민을 하나로 묶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이 사람은 어릴 적 말더듬이였다니, 수줍음 많던 내 열 살 시절에 나도 뭔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고 할까?
공자가 많은 제자들과 함께 그 수많은 지방을 다녔다는 것을 <공자 일대기>로 알았다. 이른바 군주들과의 만남들이 많이 그려져 있었는데, 영웅전처럼 재미는 없었지만 수십 번 읽은 이유는 뭘까. 수없는 만남과 헤어짐이 인상적이었다. ‘공자님’하면 근엄하고 권위 가득한 줄 알았더니 수없는 방황과 실패가 있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물론 나이 들고 책 그리 귀하지 않고 좋은 책 너무도 많은 이 시절에는 수십 번 씩 읽는 책은 점점 귀해진다. ‘어느 부분’을 수십 번 씩 읽는 경우는 있지만. “그 뜻이었나? 어떤 단서였지? 어떤 어휘를 썼지? 어떤 표현이었더라? 왜 나는 이렇게 기억하지?” 다시 그 부분을 펴본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는 책은 역시 ‘스토리’가 있는 책이다. 이른바 소설. 애착 1순위는 <토지>. 그 중에서도 1부 1권. 초판본은 아니더라도 1973년의 ‘거의 초판본’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읽는 그 맛. 첫번 읽었을 때의 그 순간 그 느낌을 다시 더듬을 수 있다. 책이란 기억의 단서다. 책은 다시 한 번 살아보게 한다.
‘추리소설’도 빠뜨릴 수 없는 수십 번 다시 읽기 대상이다. 숨어있는 ‘장치’들을 찾는, 즐거운 게임이다. 책 이름은 별로 못 외워도 작가 이름만은 절대로 못 잊는 아가사 크리스티, 반 다인, 레이먼드 챈들러의 고전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추리소설 다시 읽기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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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책읽기가 지금의 글발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 오랜만에 아주 좋은 블로그 발견해 좋습니다.
그 3권의 책들은 다 어른 책들이었고,
영어가 아니라 우리말 책들이었답니다.
아이들을 아이라고만 여기지 않는 것,
우리말을 잘하게 하는 것, 두가지가 참 중요합니다.
어린이 과잉 보호, 영어 과잉 주입은 스스로 자라기를 방해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