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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8/03/16 자기 집을 그려보자 ... 국민 프로젝트 by 김진애 (2)
  2. 2008/01/29 집 같은 아파트’를 만들 때까지 by 김진애 (5)
  3. 2008/01/28 외국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들, 좋은 걸까 나쁜 걸까? by 김진애 (14)
  4. 2008/01/25 아무 때나, 아무 데나, 크게 짓지 말자! by 김진애 (3)
  5. 2008/01/23 주거문화와 부동산문화의 양립 by 김진애 (3)
흰소리, 큰소리, 립서비스

- 흰소리: 터무니없이 자랑으로 떠벌리거나 거드럭거리며 허풍을 떠는 말 - 큰소리: 남 앞에서 잘난 체하며 뱃심 좋게 장담하거나 사실 이상으로 과장하여 하는 말. - 립서비스.....

휴가지 ‘베개’ 잃어버린 소동

“어머나, 내 베개!” 차는 마산시로 막 접어들고 있었다. 잠깐 눈을 붙이겠다고 뒷좌석에 던져둔 베개를 집으려다가 깨닫고 말았다. 이런, 호텔에 두고 왔구나. 나에 대한 비밀.....

추석 다짐 세 가지

올 추석은 여러 이유로 넉넉한 한가위가 되기 쉽지 않군요. - 여름과 너무 가깝다. - 토일월 사흘, 너무 짧다. - 장바구니 물가 너무 올랐다. <?xml:namespace.....

철거 시장 오세훈?

오세훈 서울시장이 철거전문가가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 안했었다. ‘문화시장’을 자처하고 ‘디자인 서울시장’을 지향한다고 천명한 오세훈 시장이 이럴 줄이야. 철거 서울시청 기습철.....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교 때쯤 되면 꼭 나오는 숙제가 하나 있다. ‘자기 집 그려 오기’다. 아이들이 갑자기 줄자를 찾고 이 방 저 방 재러 다니면 바로 이 숙제 때문이기 십상이다. ‘평면’을 그리라는 숙제니까 같이 길이를 재자고 할지도 모른다. “나 못 그리니까 엄마가 그려 줘.” 할지도 모른다. 엄마라고 어디 잘 그리나? 끙끙대기는 마찬가지다. 

그림 실력이 별로인지라 나의 그림 실력에 대해서 열등감(?)을 갖고 있는 막내 역시 나에게 도와 달라고 했었다. 어디 해 달란다고 해 줄 녹록한 엄마인가? 줄자로 재는 방식을 가르쳐 주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차근차근 그리는 방식을 시범으로 보여 주고는 곁눈질만 했다. 그렇게 시범을 보여 주었어도 그려 놓은 것을 보니 한심하기는 퍽 한심했다. “아무래도 우리 집 같지 않은데?” 아이 역시 자기 그림 실력의 한계를 인정했다.    

“이런 숙제 왜 있는 거야?”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이는 그리면서 툴툴댔다. 하지만 그려 보고 나더니 얻은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자기 방이 가장 작다는 것을 실제 수치로 알아냈고, 그 덕분에 보다 더 근거 있는 불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큰아이 방보다 폭이 30센티미터만 짧은 데도 방 쓰는 방식에 왜 그렇게 제약이 많은가를 깨닫고는 한 자 폭의 귀중함을 알게 되기도 했다.

 이제는 집에 대해서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 하는 아이디어를 수시로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내놓는다.
                                   ***

나의 원대한 야망(?)이라면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자기 집 그리기’를 하는 것이다. 1년에 한 번씩은 자기 집을 그려 보면 좋겠다. 이것이 너무 거창한 목표라면, 3년에 한 번도 좋다. 평균 3년마다 집을 바꾼다는 통계이고, 또 3년쯤이면 자기가 사는 공간에 대해 무언가 변화를 시도해 볼 만한 시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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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용인에 있는 고 장욱진 화백의 고택.
                       (화백 생전에 직접 고르신 한옥, 직접 지은 양옥이 어우러진...
                         가 보세요.)  


왜 집을 그려 봐야 하는가? 집을 그려 보면 무엇이 좋을까? 학교 숙제를 내주는 것과 마찬가지 동기다.

“첫째, 그리면 보인다.”
자기 손으로 그려 본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체험이다. 다 아는 것 같던 것도 실제 손으로 그려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그리는 중에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있고 그리고 나면 새롭게 깨닫는 것도 생긴다. 밑그림을 그릴 때와 마무리 그림을 그릴 때 또 다른 게 보인다.  

“둘째, 가장 쉽게 그릴 수 있는 대상이다.”
이른바 ‘그림’이라면 사람이든 풍경이든 선과 표정이 워낙 풍부해서 그리기가 영 쉽지 않다. 그렇지만 집이란, 특히 평면이란 상대적으로 선을 그리기가 쉽다. 바로 그 속에서 평소 익숙하게 알고 있는 공간이니 맘만 먹으면 언제나 그릴 수 있다.

“셋째, 합리적인 생각을 키운다.”
집이란 은근히 복잡한 공간이다. 단칸방만 해도 그리 간단치 않다. 여러 물건, 여러 설비, 여러 기능이 있고 또 가족 여럿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가 있다. 그리다 보면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요모조모 생각거리가 나타날 뿐 아니라 어떻게 해 볼까 하는 궁리도 생기게 된다.    

“넷째, 당신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는 이야기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가, 삶의 느낌이란 얼마나 미묘한가. 그런 이야기와 느낌에 대해서 상상하게 된다. ‘공간 상상력’이란 다른 어떤 상상력보다도 다채롭기도 하거니와 또한 아주 기분 좋은 것이다. 공간 상상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쁨일 뿐 아니라 특히 손을 써서 그리면서 상상하면 그 기쁨은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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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사는 집 한 켠... 상상해 보세요.
                                  '마당있는 집'에 사는 축복을 누리고 삽니다.
                             집 자체는 보잘 것 없지만 삶의 이야기는 풍성합니다요.
 

나의 직업적 특기를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걸까? 그러나 오히려 굳이 직업적 특기로 한정하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다는 것이 나의 뜻이다. 자기 집 그리기란 특기가 아니라 일상의 취미가 될 수 있다.  

*** 

주택을 설계할 때면 나는 집주인을 유혹하곤 한다. 같이 그려 봅시다 하고. 직업상 나는 남들이 말로 표현하는 것 또는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잘 파악해서 그림으로 그려 내는 사람이지만 살 사람의 마음 깊은 속, 심리 깊은 속까지 들어가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럴 때 집주인이 뭔가 그려 주면 훨씬 더 가깝게 짐작할 수 있다. 힌트가 풍성해지는 것이다.
    
집주인은 쑥스러워들 한다. “못 그려요.” 그려 보고 나서는 “그리기 만만치 않데.” 하기도 한다. 내가 권하는 것은 건물의 형태나 전체의 구성은 아니다. 이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고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권하는 것은,

주로 집 내부의 가구 배치, 컴퓨터 배치, 텔레비전 배치 같은 것들이다. 전문가인 나보다도 집주인이 훨씬 더 잘 아는 물품들, 습관들, 선호도가 나타나는 항목들이다. 


일단 평면에 대해서 어느 정도 동의하는 때에 이르면 축척 1:100(1미터가 1센티미터인 축척)으로 평면을 뽑아서 주고 그려 보는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권한다. 이왕이면 가족과 함께 하면 더 좋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아이들이 쓰는 자로도 충분하고 연필과 지우개만 있으면 되니 모처럼 부부가 알콩달콩 의논하는 시간, 아이들과 의논하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잖은가.

이렇게 그려 보면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안심이 되는 것이 그 첫째. 괜찮은지 아닌지 고민하다가도 실제 그려 보면 확신이 더 드는 심리다. 풍부하고 깊은 아이디어가 나오면서 섬세하게 안을 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그 둘째. ‘이렇게 바꾸면 이런 점이 좋겠다. 저렇게 바꾸면 저런 점이 좋겠다.’ 하는 세밀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며 주문이 구체적이 된다. 

이렇게 하면 설계하는 나도 좋다. 설계하는 과정에서 나도 확신이 더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다 짓고 나서 불만이 생기더라도 은근슬쩍 책임 회피(?)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 그려 보셨잖아요?” 하고 말이다. 너무 약은 수법인가? 그러나 집주인에게 진짜 집주인 마음을 들게 하기에 더없이 좋은 방식이다. 그러고는 머리를 맞대고 다시 한 번 그려 보자고 권한다. 다시 그려 보면 또다시 새로운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삶이란 끊임없는 변화이다.

***

자기 집에 대해서만큼은 사는 집주인이 가장 잘 안다.
가장 탁월한 전문가다. 이른바 전문가에게 무턱대고 기댈 이유가 없다. 전문가들을 너무 믿을 이유도 없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 앞에서 공연히 주눅들 이유도 없다. 

자기 집을 그려 보자. 내남없이 비슷비슷한 아파트에 산다고 지레 생각하지 말자. 모든 집은 다 다르다.

모든 방은 다 다르다. 모든 공간은 다 다르다. 당신 삶의 힌트가 어떻게 녹아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다 다르다. 그려보면 힌트는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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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도 없는 한옥... 한옥은 그리기 무척 재미있답니다)

집을 그려 보면 줏대도 생긴다. 새봄맞이 단장이나 가구를 사겠다면 자기 집 평면 정도는 가지고 가자. 전문가가 이것저것 더 좋은 것이라 권하는 앞에서 꿋꿋하게 줏대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갑 속을 생각하면서.

집을 그려 보자.
혼자서 그려도 좋고,
부부가 함께 그려도 좋고,
아이와 같이 그려도 좋다.
그리면서 집에 정이 들 것이다.
그리면서 삶에 정이 더 들지도 모른다.
이번  봄맞이를 ‘자기 집 그리기’로 맞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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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프로그램 그려보기

    Tracked from Tasy.jaram.org 2008/03/17 08:22  삭제

    김진애님의 자기 집을 그려보자 라는 글을 보면서 문득 소프트웨어를 설계할 때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게 된 부분은 이 부분인데요. 주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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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헤이즐 2008/04/03 20:4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마당에 백구 한마리 놀고 있고, 담장 옆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가 있는 집.
    서울 하늘 아래에서는 쉽지 않은 꿈이지만, 제 마음 속의 dream house입니다~.

  2. BlogIcon 김진애 2008/04/04 06:15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제나이 보다 더 먹은 집에서 살고싶다는 꿈을 꾸었었는데, 지금 사는 용산 향나무 집은 80살 된 집이랍니다. 요새는 백구 한마리와 유기견 한마리 더해서 2마리... 어젯밤에 2마리 싸워서 제 안경 날라갔답니다.^^ 꿈을 계속 꾸세요...

“아파트도 집같이 만들 수 없나요?”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다. 아파트를 만드는 데 한 몫 하는 정책 수립자, 사업자, 설계자, 시공자 등 모든 전문가들이 항상 유념해야 할 말이 아닐 수 없다. ‘집 같은 아파트’를 만들 때까지 할 일은 무한하다.

‘집 같다’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첫째, 오랫동안 살아왔고 오래도록 살 것 같다. 둘째, 새록새록 가족 이야기가 떠오른다. 셋째, 뭔가 여유롭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넷째, 뭔가 우리 집만의 독특한 게 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아파트가 집같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게 참 많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앞으로 오래도록 살 것 같지는 않은,  하시라도 이사할 수 있고 이사하더라도 별로 섭섭하지 않을 것 같은 아파트, 가족이 만드는 삶의 스토리보다 오히려 잘 장식된 거실 장면이나 잘 갖춰진 부엌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 아파트, 여유보다는 빈틈없이 짜인 느낌과 따뜻함보다는 편리함이 먼저 떠오르는 아파트, 이웃집이나 우리 집이나 별 다를 게 없고 다르면 오히려 이상할듯한 아파트.

이런 아파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남이 부러워하는 아파트’가 아니라 ‘우리 집 같은 아파트’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사실 아파트에 관련된 정책, 개발, 설계, 유통, 관리 방식 등이 모두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될 때까지,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당장 우리 사는 아파트를 돌아보자.   

아파트에 대한 여러 아쉬움 중에서 나는 아파트의 뭔가 답답하고 갇힌 듯한 느낌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에 주목해보고 싶다.

<이 집은 누구인가>라는 책에서 나는 비슷한 크기의 한옥과 아파트를 비교하면서 왜 한옥은 작다는 느낌은 들어도 답답하다는 느낌은 안 드는지, 왜 아파트는 크다는 느낌은 들어도 답답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해 이모저모 써놓은 적이 있다. 

아파트에서는 이른바 ‘체험 동선’이 짧고 ‘시각 동선’이 짧고 ‘청각 동선’이 짧다는 점이 답답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치명적인 요인이다. 짧은 동선이 좋다는 단순 상식이 갖는 단점이 아파트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동선이란 그냥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거닐면서 여러 만남이 일어나는 체험임을 표현하는 말이 ‘체험 동선’이다. 한옥은 체험동선이 길고도 풍부하다. 직각 동선뿐 아니라 순환 동선도 있고, 방과 방 사이의 동선 뿐 아니라 방과 마당 사이의 동선도 있다. 이 사이 사이에 다양한 체험이 녹아든다.

시각 동선도 따라서 풍부해진다. 아파트처럼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미세기문과 대들보와 창문과 처마와 그 너머 보이는 조각하늘까지 시선이 길어진다. 한옥의 좋은 점은 뭔가 더 있을 듯, 저 너머까지 내 것인 듯, 공간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고 넘어가지만, 아파트의 무언가 둔중한 불쾌함은 사실 소리 때문인 경우가 많다. 너무 조용하면 조용한 대로 전자음만이 둔중하게 공간을 채우고, 벽에 소리가 반사되는 것이 안 좋다. 아파트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일 때 정신없다는 느낌이 드는 게 바로 이 소리 때문이다. 마치 닫힌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얘기할 때 드는 느낌과 비슷하다. 아파트의 청각 동선은 직선으로 반사하는 반면, 한옥의 청각 동선은 공간 사이사이로 감아들고 퍼지기 때문에 편안하고 또 여유롭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의 심리란 참 묘한 것이어서, ‘눈에 보이는 게 다’라고 여겨지면 뭔가 답답하고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아파트의 문제는 쉽게 너무 다 드러내 보인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사람도 뭔가 겹겹이 더 있는 듯 하고, 만날 때 마다 뭔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 매력적이듯이, 우리의 아파트도 이런 매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아무리 한정된 공간이라 할지라도 한 눈에 다 보아는 것이 아니라 살짝 감추고 살짝 돌면 뭔가 다른 게 보이고 시선과 시선 사이에 여러 장치들이 겹겹이 있고, 저 문, 저 벽 뒤에 무언가 더 있을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면 기대감이 계속되는 것이다. . 

한 눈에 반한 사람이 길게 가기 어렵지 않은가. 요즘 아파트는 너무 한 눈에 반하게 만들려는데 힘을 쏟는다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길게 가는 매력, 그것이 ‘집’의 매력일 것이다.

남들 하는 대로만 하지 말고, 발코니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꼭 똑같은 대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꼭 들어가자마자 거실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파트라 해서 마당이 없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지 말고, 창문이 지금처럼 크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발상의 폭을 넓혀보자.

아파트를 집으로 느끼게 되면, 우리 사는 문화가 훨씬 여유롭고 풍부해질 것이다. 집 같은 아파트,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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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08/01/29 14:00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자 그럼 이제 발상의 폭의 변화된걸 보여주세요.. 몇년전에 한말하고 달라진게 뭐에요? 발상의 전화 보여주세요.

  2. .. 2008/01/29 14:03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발상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뭐가 좋고 뭐가 나쁜건지좀 정확히 말씀해주세요. 그러니깐 발상의 전환에서 보면 들쭉날쭉 나와있는 간판도 하나의 경관이될수 있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왜 차분하게 보여야 하나 도시는 원래 복잡한곳인데 그럼 더 정신없게?

  3. .. 2008/01/29 14:0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이런글은 누가옳고 누가 틀리냐를 따지는 글이 되면 안될꺼 같습니다. 자본주의에서 돈이 되는 일을 하면 잘못됐다고 할순 없잔아요. 선생님께서 하는 말이 뭔지 정확히 알겠습니다. 바꿔나가자는 생각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글만쓴다고 바뀌나요? 한번 알트를 보여주세요. 이건 정말 무책임한거 같아요. 학생들한테 공모전을 통해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원한다고 하는데 입상한것들중에 실현된게 뭐가 있나요?
    진정 우리나라의 건축을 생각하신다면 이렇게 글만쓰지 마시고.. 실천할수 있는 알트를 보여주세요. 이런 글은 건축을 생각하고 있는 건축을 공부하고 있는 건축과 관련있는 누구나 생각하고 있는것 입니다.
    이건 발전이 아닌 사소한 말싸움밖에 안될꺼 같아요..

  4. 정말 2008/03/13 10:5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건설회사 사장님이 그런 아파트를 지으면 됩니다. 아니면 돈을 많이 벌어서 건설회사를 차리면 끝이지요. 다만 자본주의 논리상 돈을 효율적으로 많이 벌 수 있는 시스템이 현재의 아파트일뿐입니다. 나중에 현재의 아파트가 지겨워지고 수요가 사라지면 수요의 재창출을 위해서 나오겠지요. 인스턴트에서 웰빙으로 바뀌었던것 처럼. 그리고 서로의 의견을 말합시다. 무조건 까지말고.

  5. 고명환 2008/03/26 12:4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선생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저의 아버지 께서는 전통건축을 공부하시는 분이셔서 어께너머로 한옥을 조금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신 체험동선과 (대부분의 한옥이든 좁은평수의 아파트이든 architectural promenade 라고할수있을까요?) 한옥가옥구조에 따른 공간의 구분 (뒷간 화장실, 대청마루, 안방, 창고, 사랑방, 대문, 뜰 등등은 각기 인간이 다른 형상으로 이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좌식과 입식이 적절히 조화되어 부지런히 움직여야합니다만), 과학적이고 자연에 가까운 건축과학 (대청마루에 걸터 앉으면 남쪽을 향함, 채광은 처마와 태양의각도에 따라 적당히 조절됨 등등) 그리고 추억과 같이하는 건축 (아파트에서는 약간 생소합니다만 어머니께서 자녀를 출산하실적 아버님께서는 자녀의 성별에 따라 나무를 키우시고는 분가시에 손수 키우신 나무로 가구를 만들어주시는 전통)은 아파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눈에 띄는 건물이 부쩍 늘었다. 튀는 건물들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건물들의 설계에는 외국 건축가들이 참여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좋은 건축인 것일까? 아니면 “유명한 외국 건축가가 설계했대.” 하는 ‘브랜드네임 빌리기’에 그치고 있는 것일까? 

사례를 보자. 외국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 중에는 괜찮은 것도 있다. 가장 최근 준공된 서울 광교의 <SK 타워>는 ‘홍콩 RAD 그룹’이 설계했는데, 삐딱한 형태나 다채로운 창문 형상이 다소 유행적 매너리즘에 빠진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유쾌한 변화를 보여준다. 비슷한 건물이 너무 많아지면 문제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KPF’라는 고층건물 설계 잘하는 미국의 건축 팀이 설계한 <동부금융센터>와 <포스틸사옥>은 철골구조와 유리로 날씬하고 우아한 자태를 만들어냈다. 국제성을 부각하는 테헤란로의 가로 풍경을 만들어냈다고 할까?

그렇지만 유감스러운 예도 적잖다. 파랑, 빨강의 원색과 동그라미와 사선 막대기 형태가 눈에 띄는 서울 강남 영동대로 상의 <아이파크타워>. 나는 이 건물을 처음 볼 때, “아니, 도대체 누가 저 장난질을 했지?” 했었다. 건축주가 어떤 상업 디자이너 또는 광고기획가를 시켜서 디자인한 것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외관 설계를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아니 베를린의 ‘유대기념관’의 탁월한 개념을 만들어 낸 그 건축가? 아니, 뉴욕의 9.11 테러 현장의 재건축 설계경기에 당선된 그 건축가가 설계했단 말인가?

스위스 출신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강남교보타워>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10여 년 동안을 끌어온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중후한 표면 처리를 위해 택한 벽돌 프리캐스트(벽돌 패널을 붙이는 시공) 외관에 처음에는 기대도 하였다. 그런데 결과는 보타의 브랜드인 ‘흰색과 갈색의 띠 두른 기둥’이 나타난 정도다. 건물을 두 개로 쪼갠 것은 괜찮은 선택이지만, 건물 규모가 너무 크고 거리에 바짝 붙어있고 벽돌 색깔이 너무 무겁고 단조로워서 거리를 차분하게 하기 보다는 위압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옥상의 철골구조물은 형태가 어정쩡하고 가로 공간과 로비는 거의 디자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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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콜하스, 장 누벨, 마리오 보타, 이 세 명의 세계적 스타 건축가가 설계한  <리움 삼성미술관>은 그저 ‘일정 수준 이상을 넘긴 범작’일 뿐이다. 설계를 잘못했다거나 하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이런 스타 건축가 셋이 만든 작업이라면 세계 문화계에서 회자될 정도의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결과는 그들의 기존 공간 어휘들을 그대로 쓴 정도다. 이들이 자신의 작품이라 자랑스럽게 내놓지 않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만큼 ‘작가의 치열한 고민과 진정한 혼’이 안 보인다.    

옛 화신백화점을 털어낸 자리에 라파엘 비뇰리가 외관을 재구성한 <종로타워>는 ‘오버’한 디자인의 전형이다. ‘클라우드’ 라고 불리는 상층부 원형과 건물 양쪽에 있는 코어의 디자인은 너무 두텁고 거칠다. 그렇게도 우아한 자태의 일본 ‘도쿄포럼’을 설계한 비뇰리라면 상당한 디자인 파워를 갖춘 사람인데, 이런 졸작에 그치다니.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요점은, 외국 건축가가 설계한다고 해서 꼭 좋은 건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외국 건축가를 잘 쓰려면, 적어도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확실한 설계 크레디트를 주면서 일을 맡기느냐?” 설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특히 초기 개념은 아주 중요하다. <아이파크타워>나 <종로타워>가 졸작이 된 것은 외관 구성만 맡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동부금융센터>, <포스틸>이 좋은 성과를 낸 것은 설계 크레디트가 확실했다는 것이 작용했을 것이다.  

둘째, “주문자가 건축가의 야심을 일깨우는가?”좋은 건축주는 좋은 건축가, 좋은 작품을 만든다. 주문자(즉 건축주)가 수준이 높을수록 건축가도 역량의 극한을 끌어내려 노력하는 것이다. <리움 미술관>은 이 점에서 아쉽다. 역작을 만들려는 건축가의 야심을 끌어내지 못했던 결과가 아닐까 추측이 가능하다.  

셋째, “일정 수준의 건축비를 감당할 수 있느냐?” 이것도 무시못할 일이다. 통상적으로 외국 건축가의 설계는 수준 높은 디테일이 받쳐줄 때 빛을 발하며 많은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통상 건축비를 비교하면 일본이 거의 2배, 유럽이 1.7배 정도 더 크며, 특별한 설계일수록 건축비는 올라간다.(예컨대 ‘도쿄포럼’의 경우는 거의 4배) <SK 타워> 경우 초기 설계에서 많이 후퇴한 안으로 최종 시공이 되었는데 건축비 문제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요컨대, 외국 건축가를 쓴다는 것은 ‘인재’를 쓰는 요령과 같다. 그 인재에게 최대한의 책임과 권리를 주는가, 인재의 창조 야망을 불러일으키는가, 그리고 현실적인 제약을 감안할 수 있는가의 세 가지다. 우리도 이제 외국 건축가를 기용하는데 그저 유명세만 빌리는 정도는 넘어서야겠다. ‘좋은 성과를 만들기 위한 인재 활용’의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외국 건축가들을 기용하는 데에는 주로 대기업이 나서왔다. 30여 년 전 미국 건축가 시저 펠리를 기용해서 <광화문 교보>를 설계한 것이 첫 번째 시도라 할까? 그 전에 일본 설계회사를 기용해서 지은 것도 적잖았지만(시청앞 플라자호텔, 코리아나 호텔 등) 그 때는 대체로 숨어서 설계한 ‘용병’의 개념이었다. 지금은 건축가 이름을 마케팅한다는 것이 다르다.

문제는 이런 대기업의 브랜드 마케팅 행태를 공공에서도 따라 한다는 것이다. 2004년에 서울시에서 세운상가 주변 재개발에 대한 설계경기를 하는데 외국 건축가 다섯 팀만 지명 초청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개운찮다. 대기업이 외국 유명 브랜드를 마케팅하는데 치우치는 것도 답답한데, 서울시까지 나서서 그러는 것은 아무래도 공공 마인드 부족이다.

외국 건축가를 쓰는 것은 결국 좋은 작품을 우리 도시 속에 만들려는 노력 중 하나가 되어야겠다. 앞으로도 국제설계경기 등 외국 건축가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활동할 것이다. 좋은 작품이 많이 만들어진다면 반가운 일이고, 또한 그 과정에서 우리 건축가의 해외 진출도 많아지는 세계 교류활동이 많아지면 더욱 반가울 일이다.

“유명한 외국 건축가 누구누구가 설계했대.” 하는 말에 속지 말자. 눈에 띈다고 좋은 건축이라고 여기지도 말자. 정말 우리 맘에 들어야 좋은 건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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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epial 2008/01/28 20:5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오오~!! 진짜 김진애선생님 블로그네요~~
    설마 동명이인이겠지..하고 들어왔는데.....선생님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글과 작업을 통해서 선생님을 아주 조금 알고, 그것만으로도 정말 기뻐했던 사람이예요~~~

    앞으로 블로그를 통해 가까이 뵐 수 있을까.....가슴이 설레입니다.
    바쁘시더라도 댓글도 좀 달아 주시고~ ^^;
    생활 주변 이야기도 좀 써 주시고~~~ 부탁드려요~~~

    광 팬 드림.

  2. berlin 2008/01/28 21:3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불쌍한 한국건축가들 가뜩이나 넘쳐나는데 건축경기도 안좋고.유명한애도 없지만.외국애들한테도 자기나라 안방도 내주고
    서울시나 기업들은 사대주의 젖어 외국작가들 도시환경 무시한 자기들 포트폴리오,경력을 위해서 놀아나고...

  3. 융융 2008/01/28 22:00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멋진 글입니다. 공무원만큼 우리나라에서 사대주의에 젖어있는 사람들도 없는것 같습니다. 정부에서 세우는 건물은 우리나라를 대표하기도 하는데 한국 건축가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텐데요... 그러면서도 저런 건물대신 한옥을 접목시켜 짓는다면 멋있을 거라는 생각은 저 뿐인가요? ㅎㅎㅎ

  4. BlogIcon 병진같은 소리 2008/01/28 22:14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정말 우리 맘에 들어야 좋은 건축인 것이다. 이건 또 무슨 개솔 뭐가 맘에드는 거지 성냥갑?죄다 직사각형의 건물 밖에 없고 대부의 사람들이 그딴식으로 생긴 건축물들의 모습을 다른 나라 건축 물들과 비교해 부러워 한다.그리고 이걸 사대주의라 지껄이는 병신은 또 뭐냐 어차피 콘크리트 건물자체가 한국적인 것 하고 상관 없는데. 솔직히 개눈이 아니라면 누가 봐도 대한민국 건물들의 개같은 디자인은 짜증 날 정도다. 밥그릇 빼기고 개같은 넋두리나 늘어 놓지말고 좀 자기개발 좀 해라 쉬발 남것 배끼지 좀 말고 시쿵창에 떠다니는 똥덩어리에서도 디자인은 연상해 낼 수 있다 .노력해라 남만 못한게 무슨 자랑이냐

    • 병진같은 소리님 2008/01/29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신같은 키보드 워리어가 '개솔' '지껄여댈' 글이 아니네

  5. berlin 2008/01/28 22:58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문제는 자기네 멋대로 .조화라는것과 특성을 읽어 버렸습니다 개개인의 작품도 나쁜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하지 않습니다, 굳이 외국인 쓸필요가 저정도수준이라면 한국에도 있습니다.
    불쌍한 한국건축가들 박봉에 가뜩이나 넘쳐나느데,인정도 못받고

  6. 동감 2008/01/29 01:1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외국건축가들의 경우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있고 그때문에 지역문화적 상황보다는 자신들의 언어로만 풀어간다는 느낌이 강하더군요. 게다가 개인적으로 느낀점은 외국건축가들은 주는 건축비만큼 디테일을 설계한다는 느낌?(당연히 국내건축가들에 비해 건축비가 비싸니 디테일이 부족한....)

  7. BlogIcon KYO 2008/01/29 08:48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

    건축에 대해 관심많은 디자인 학도입니다.

    간만에 영양가 제대로인 글을 읽었다고 생각되네요.

    종종 들려서 많이 배우고가겠습니다 ^^

  8. 개인적으로는 2008/01/29 10:0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정말 좋은 건축은 사람이 생활하기 편한 건축이라고생각합니다. 물론디자인도 중요하겠지만 세계적인 디자인이라고 칭송받는것중에는 사람이 사는데 불편한것도 종종있으니까요. 건축의본질은 사람이 사는것인데 사람이 살기불편하다면 건축가의 자기과시 그 이상은 없겠지요. 보는사람이 좋은게 좋은 건축이 아니라 사는 사람이 좋은게 진짜 좋은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9. BlogIcon 인터리치 2008/01/29 12:23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건축관련 글 잘보고갑니다^^

    참!! 그리고
    저희 인터리치ucc로
    트래픽도 올리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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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외에 다양한제품의 광고배너를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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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드센스와 비교하셔도 손색이 없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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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박상 2008/01/29 13:23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진 건축물은 모두 회색 사각 건물과 똑같은 재질의 지붕.모두 붕어빵. 서울에서 전라도까지 가봐도 모두 모두 똑같다.거기에 난잡하게 갈겨있는 너저분한 간판들까지 똑같다.창피한 일이 아닐수 없다.

  11. 한때 건축인... 2008/01/29 15:1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다 맞는 얘기같습니다만 굳이 딴지를 걸자면 SK타워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고 또 교보타원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조건 내 맘에 들어야 좋은 건축인건 아니죠. 미적가치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니깐요..

  12. BlogIcon A2 2008/01/29 20:4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장인이 혼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진정 멋있는 작품이 탄생할텐데요.

  13. 고명환 2008/03/26 12:2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저는 이제껏 서울에 들러본 횟수를 손꼽아 볼만큼 어린 시골학생입니다
    저는 이 엄청난 금액이 들어간 건물들의 눈에 보이지않는 다른부분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엄청난 크기의 건물 그리고 괴이하고 현대적인 건축외관 (많은분들이 건축물 외관디자인과 건축주를 연관시키기도 합니다) 게다가 시공전에부터 시끌벅적한 디자인설계 (외국에서 온 건축문화입니다)들은 분명 대기업들의 자기과시표현 입니다.
    신축되는 대기업 건물들은 (대규모 건설회사가 시공하는 경우이거나 혹은 적어도 큰 기업의 본사건물들) 건축부지의 규모면에서나 건축물의 외관 그리고 회사 이미지를 고려해서 최대한 돋보이고 회사영업에 이익이 되는 건축디자인안을 선택하게 됩니다. 특히 유명건축가나 건축설계+시공비용이 많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나돌게 되면 이미지에 상당한 상승효과를 기대할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잘못된 건축문화는 또다른 거대기업들에게 내기를 거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인근 다른기업들 또한 이미지 쇄신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수 없게 만드는데 다른기업들 모두 자기들의 사옥이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foreground building 이 되기 원하지 새롭고 더높은 건물이 들어서면서 잊혀지는 background building 이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또한 무수히 지출한 건축비는 고스란히 회사가 빚으로 지니고 있다가 소비자나 가계가 보이지 않는 사이에 안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래 걱정도 듭니다 (모두 아시다싶이 큰회사들의 우리나라 경제에 시장점유율은 우려할만큼 큽니다).

“오페라하우스를 짓기보다는 공연 팀에 대한 지원을, 도서관을 짓기 보다는 도서 구입비 지원과 유통 서비스 강화 지원을, 새로운 대형 문화시설을 만들기 보다는 가기 쉬운 장소에 기존 공간을 임대 활용을 해서라도 작은 규모로 친밀하게 시민에게 파고들기를.”



나의 평소 소신인데, 이름 하여 ‘건축가’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나는 동업자들에게 눈총을 받곤 한다. 아니, ‘짓겠다’는데, 일감이 생기는데, 왜 막느냐? 그런데 이건 약과이고 사실은 선출직 정치인, 특히 지방자치단체 선출직 정치인들에게 더 눈총을 받는다. 무언가 눈에 보이는 실적을 만들려면 건설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지금 당장, 어디에나, 크게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기 십상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대표주자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제 당선인 신분이다)를 들 수 있겠다.  



하지만 내 소신은 여전히 꿋꿋하다. 짓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나 지으려 들지 말 것, 아무데나 지으려 들지 말 것, 크게 지으려 하지 말 것”이라는, 이른바 “타이밍, 환경, 그리고 운영 효과”라는 세 가지 중요한 변수를 치밀하게 따져 보라는 뜻이다. 

우리 사회의 역동적인 발전 단계 상 짓는 것은 아직도 상당히 필요하다. 새로 짓는 것 도 필요하고 고쳐 짓는 것도 필요하다. 인프라 시설도 아직 상당히 미비하거니와, 부실하게 지은 것도 다시 제대로 지어야 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새로운 시설 투자도 필요하고 피폐해져가는 지방의 경제와 환경을 살리는 것도 필요하다. 주택 보급률은 100%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질적 수준을 올리고 특히 소득불안정 계층에 대한 주거 안정을 만드는 주택 정책 운영도 필요하다. 필요한 곳에는 높이 짓고 밀도를 올리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신중해야 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관건은 우선순위를 어떻게 두느냐 일 것이다. 투자 순위의 기준을 제대로 정해야 한다. 다음의 기준은 어떨까?

첫째 순위. 일자리를 만드는 투자에 집중한다. ‘상업 시설, 유통 시설, 관광 유치 시설’ 등이 첫 순위다. ‘생산 시설과 연구개발 시설’은 최우선 순위다. 대안적인 일자리를 마련하기 전에는 기존 일자리를 없애거나 줄이는 개발은 극구 자제한다. 

둘째, 향후 성장에 대비하는 일에 주력한다. 예컨대 상업지역에 대형 고급 주상복합(90%가 아파트)을 쉽게 짓게 만드는 일은 심사숙고할 일이다. 도심이나 부도심 등의 땅은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균형개발도 성장과 꼭 연결시켜야 하고 교육도 마찬가지다.    

셋째, 몸과 마음 편하게 살게 만드는 생활복지를 저비용으로 효과적으로 만드는 일에 주력한다. ‘소형다량’ 공급 정책도 이러한 차원이다. 문화환경도 포함되고, 복지 시설은 물론이고 ‘사람 서비스’가 이것이다. 부의 편중을 문화복지 평등으로 순화하는 일이다.  


  
이런 원칙은 우리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 각자도 아무 때나, 아무데나, 크게 지으려 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짓는’ 대신 ‘사는’ 것으로 대입할 수도 있겠다.) 투기 열풍, 유행 열풍, 체면 세우기에 말려들지 말아야겠다. 대신 고민할 것. 나의 일자리는 튼튼한가, 길게 봐서 평생 일감을 잘 마련하고 있는가, 혹시 무리하게 대박을 꿈꾸는 건 아닌가, 나는 혹시 남들 하기 때문에 따라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혹시 나의 미래를 까먹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매일매일 ‘잘’ 생활하고 있는가, 나는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은 아닌가. 짓기 전에, 사기 전에 심사숙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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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영모 2008/01/26 08:38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환호 2008/01/27 00:0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수고많으십니다. 김진애님! 우리나라가 아직도 정부조직을 정권이 비뀐다고 개편해야하는 미흡한 체제의 나라인지요? 세계인이 보기에 자존심이 좀 구겨지는것 같네요 이 나라 국민으로써 그외도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3. sdfsdf 2008/01/28 15:55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경부고속도로 운운하는 꼴통새리덜아. 지금이 그떄처럼 잃을것도 두려울것도 없는시절이냐. 개꼴통들 하여간. 모아니면 도인 상황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은. 정신좀 챙겨라.

도시와 집은 삶의 바탕이 되는 주거문화다. 불행히도 우리의 주거문화는 부동산문화에 압도되어 버렸다. 특히나 이런 경향은 최근 10년간 가속화 되었으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속도는 가속화 될 것이다.

부동산의 생산, 유통, 활용 방식을 총칭하는 우리의 부동산문화는 기형적이다.

선진사회에서 별 인기 없는 고층아파트에 대한 열광, ‘로또’라 불리는 분양입찰, 사는 아파트가 안전치 못하다는 판정에 자축하는 현상, 재개발이 되면 원주민의 80%가 부담을 못 이겨 떠나는 현실, 큰 아파트와 높은 분양가일수록 분양이 잘되는 현상, 각종 개발 지구 지정에 앞장서는 지자체, 당장 아파트 사놓지 않으면 손해 보지 않을까 시달리는 국민 스트레스, 대출 이자 갚느라 소비생활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 등, 우리 사회는 부동산과 관련해서 이미 깊은 병에 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러한 집보다 고층 아파트가 환영받는 이 상황, 분명히 비정상적이다



이명박 인수위가 내놓은 투자자와 거주자를 분리하는 주택 정책 또한 이러한 비정상적인 한국 상황속에서나 나올 수 있는 정책일지 모른다.

관건은 건강한 주거문화와 건강한 부동산문화를 어떻게 엮느냐다. 건강한 주거문화의 원칙을 새삼 돌아보자.
소유보다 거주, 부동산 값보다 삶의 안정이 우선되는 것이 원칙이다.
건강한 부동산문화의 원칙을 새삼 돌아보자.
투자 위험에 대해 이익을 얻는 시장 원리가 작동하되, 근로 의욕을 무력화시키지 않을 수준의 이익이고 투기 욕망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 원칙이다.

주거문화가 건강하면 부동산문화도 건강해지고, 부동산문화가 건강해지면 주거문화도 건강해진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부동산 질주는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절대부족의 공급량도 상당히 해소되었고, 이제 경쟁적인 추격 매수 거품을 일으키지 않으며 마지막 고비를 넘기고 건강한 주거문화를 세울 때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최근 몇 년 동안 저금리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 앙등에 시달렸다. 그러나 우리 사회처럼 미치지는 않았다.

싱가포르는 왜 그 초고층 첨단개발 트렌드 속에서도 일반 주택시장은 요동치지 않는가, 미국은 왜 뉴욕 맨해튼의 고급 부동산 시장이 다락처럼 올라도 일반 부동산 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가, 유럽의 도시들에서는 어떻게 그 오래된 집들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동네가 보전되는가.
 
싱가포르에는 공공이 공급하는 다양한 주택에 대한 신뢰가 있다. 미국 같은 경쟁적 시장에서도 중산층 이하의 민간주택에 대한 임대비 관리정책에 대한 믿음이 있다. 유럽에서는 아무 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