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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TV, 책’ 살려내세요

<TV, 책을 말하다> 첫 회 패널로서 한마디 하렵니다. 이 프로에 몇 차례 출연했었고, 책 관련 방송을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글에 대한 존중심이 깊고, 20 여권 이상 책을.....

고양이는 쥐의 무서움을 모른다, 아니, 너무 잘 안다

지난 주 <백분토론 400회>에서 유시민 전 의원이 했던 ‘고양이는 쥐가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모른다’말이 많이 회자됐었다. 힘센 고양이는 ‘뭐 그래, 별 거 아닌데’ 하면서 발.....

대학생 멘토링, 참 어렵군요!

이번 학기에 <셀프 리더쉽(리더십)과 자기 비전 만들기>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는데요. 이번 기말 과제가 ‘자신의 role model을 찾아서 인터뷰하기’입니다. 그래서 선생님.....

MIT 도서관에서의 생생한 행복감

행복감이 생생하던 시간들이 있다. 그 중 하나로 나는 유학 시절 도서관에서 하염없이 책을 뒤지며 보냈던 시간을 꼽는다. MIT 도시건축학부에는 로치 라이브러리(The Rotch.....

문인들은 시와 산문을 정확히 구분하겠으나 나는 그리 발표되어 그리 여길 뿐인 아마추어다. 산문의 한 대목을 ‘시’로서 추천하는 이유다. 백범의 ‘나의 소원’ 중 첫 대목이다. 정확한 제목은 ‘나의 소원’이지만, 종종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로 소개되기도 하고(나는 이 제목이 좋다), 이 글이 포함되어 있는《백범일지》로 소개되기도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백범 김구>>  

왜 이 대목을 꼽아보는가. 나는 입에 붙여 좋고, 그림이 그려지고, 가슴과 머리를 같이 불태우는 글이 좋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대목에서는 장욱진 화백의 그림 중, 노란 들판에 한 남자가 바람같이 걸어가는 자화상이 떠오른다. 그러다 마지막 대목,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겄네”에 가면 가슴에 불이 붙는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의 첫 대목,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는 피를 토하는 듯하다. 일상 속에 떠오르는 절박한 순간이 그려진다. ‘신새벽’이라는 말의 그 느낌, 그리고 ‘뒷골목’이라는 말의 그 느낌은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강렬하다. 누군가 이 새벽 이 골목에서 그 무엇을 쓰리라는 그림이 그려진다.

이 상의 시도 입 밖으로 내기에 더없이 좋지만 그보다도 더 좋은 것은 산문《날개》의 마지막 부분이다. “날아라, 날아라” 대목의 그 깊은 절망과 높은 갈망이 좋다. 아무래도 나는 ‘숨을 토하는 듯한 말의 운율’에 잘 반하는 편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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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의 <나의 소원>이라는 글도 그렇게 숨을 토하는 말의 운율로 다가왔었다. 글이야 진작부터 알았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던 글이었다. 정작 이 글이 내게 마음으로 다가온 것은 이 글을 입 밖으로 소리 내 봤을 때였다.

유학에서 돌아온 1988년, 나의 첫 프로젝트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3년마다 열리는 전시회(밀라노 트리엔날레)의 ‘서울 전시관’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마침 88 올림픽의 해였고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일이라서 어깨에 진 짐이 무거웠다. 각별하게 우리 것을 알고 싶었지만 지금에 비해서 자료도 그리 많지 않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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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자료가 <뿌리깊은 나무>에서 만든 《한국기행》, 《서울600년 사》그리고 ‘나의 소원’이었다. 때가 때여서 그랬던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가 절실하게 다가왔었다. 참 짧은 말로 깊은 뜻을 담았다고 감탄했었다. 입 밖으로 내 보니 왜 그리 더 다가오던지.


(아이콘이 된 백범 김구 사진, 아마 우리 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역사인물 아이콘이 아닐까? 참 멋진 사진이다.)

큰딸이 이 책을 보고 마구 울었던 것이 중학 시절이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대목이 뭉클하더란다. 그래,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배울 때 마음속에 오가던 갈등을 나도 기억한다. “왜 우리나라는 그렇게 힘이 없었어?”하던 그 애 타는 심정 말이다. 그렇지만 설령 힘이 있다 하더라도 남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의지, 그 뜻에 대해서 어린 딸과 함께 한참을 토론했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대목은 지금도 듣자면 설렌다. 내가 쓰는 글에도 자주 인용하거니와 자주 입 밖에 내 본다. 나라에 힘이 없어 그렇게 힘들던 시절에 이런 말을 하신 백범 선생은 정말 멋지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의 ‘가장’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약간 거부감이 든다. 강조하는 뜻이지만, 아름다움에 대하여 ‘가장’이라는 비교적인 말을 쓴다는 것이 조금 석연찮다. 아름다움이란 절대로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높은 문화의 힘’이란 참 근사한 말이다. ‘높음’에는 어디 비교할 바도 없고 끝도 없지 않은가. ‘한없이’라는 말도 영 근사한 욕심이 아닐 수 없다. 어디에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것에 한없는 욕심을 낸다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근사한 포부가 아닐 수 없다.

과연 ‘높은 문화의 힘’이란 무엇일까? 백범 선생은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라고 하셨다. 그리 원하셨던 대로 우리의 부력은 놀랍도록 풍족해졌고 우리의 강력은 상당히 강력해졌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의 힘은 얼마나 높을까? ‘높은 문화의 힘’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게 보인다. 확실히 ‘부력’과 ‘강력’이란 ‘높은 문화의 힘’의 충분조건도 필요조건도 아닌 것이다.
                                                                                           
 
몇 년 전 ‘TV 책을 말하다’ 프로 덕에 《백범일지》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적이 있다. 모쪼록 사람들이 이 <나의 소원>의 한 대목을 꼭 입 밖에 소리 내 보았으면 좋겠다. 가끔 생각하건대, 이 대목이 영어로 또 다른 외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사람의 입에서도 소리 내어지면 참 좋겠다.

시도 소리 내어 읽을 때 시적 감성이 느껴지듯이, 산문도 소리 내어 읽으면 시적 감성으로 높아질 수 있을지 모른다. 만약, ‘시적 감성’이 우리가 평소 소리 내는 말에서도 느껴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높은 문화의 힘’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백범 선생은 그것을 이루어 내셨다. ‘높은 문화의 힘’이다.


*** 080531 새벽 김진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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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황사 걷힌 하늘도 맑고 새벽 공기도 써늘합니다. 뭔가를 기다리는 전야의 분위기입니다.오늘 저녁은 훨씬 더 좋은 공기에서 더 많은 촛불시민들이 나오겠지요. 오늘 새벽따라 이 글 생각이 났습니다. <<문학사상>>에 기고했던 글인데, "나를 매혹시킨 이 한 편의 시"라는 주제였지요. 산문이 시가 되고 시가 노래가 되면 그렇게 우리 마음을 깊게 치지요.

우리나라의 부력과 강력은 무척 높아졌는데, 우리 문화의 힘은 아직 못미치지요. 문화의 힘이란 철학의 힘, 개념의 힘, 사상의 힘, 소통의 힘, 사람의 힘, 감성의 힘, 그리고 일상의 힘 아닐까요? 백범 김구 선생이 지금의 촛불집회를 보시면 '높은 문화의 힘'이라 하시지 않을까요?
(어젯밤 하늘에서 본 시청앞 광장 장면- 출처 경향신문.
정말 근사한 아이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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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요, 건축가요?” 건축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글을 많이 쓰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글쎄다. 건축하는 일이나 글 쓰는 일이나 나는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똑같이 사랑하는 일이다.

그러나 “둘 중 하나만 꼭 골라야 한다면?” 하는 질문에는 별 서슴없이 ‘글 쓰는 일’이라 답하곤 한다. 글쓰기의 자유와 상상력이 더 매력적이라서다. 건축은 현실에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그 무엇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더없이 매력적이지만 바로 그 현실 때문에 고달프기 짝이 없고 마음껏 자유롭거나 또 상상력을 발휘하기에도 훨씬 더 제약이 많으니 말이다.

글은 자유롭고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좋다. 공간에 대해서 감동과 상상의 파워를 발휘하여 더욱 좋다. 공간을 느끼게 하는 글, 공간을 상상케 하는 글은 정말 매혹적이다.

유치환의 시, 「깃발」은 무한한 푸른 하늘을 바탕으로 한 점의 깃발이 전파하는 기를 느끼는 긴장감과 자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여 좋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로 하여금 우리 강산과 옛 건축의 정서와 아름다움과 뜻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책이기 때문이다. 집, 대문, 담장, 대청, 사당, 나룻터 등의 공간들이 자아내는 사람 이야기의 단서들을 찾게 해주었다.    

토지 (전21권) 상세보기
박경리 지음 | 나남 펴냄
경남 하동의 평사리를 무대로 하여 5대째 대지주로 군림하고 있는 최참판댁과 그 소작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박경리 대하역사 장편소설. 1860년대부터 시작된 동학운동, 개항과 일본의 세력강화, 갑오개혁 등이 『토지』 전체의 구체적인 전사(前史)가 된다. 동학 장군 김개주와 윤씨 부인에 얽힌 비밀이 차차 풀려나가고, 신분문제와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귀녀와 평산 등이 최치수를 살해하는데... 세트(전21권) ☞ 한국간행

「메밀꽃 필 무렵」「소나기」의 서정적인 공간 분위기에 마음이 그윽해지다가, 이상화의 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한 구절,

“나는 온몸에 해살을 밧고,
푸른 한울 푸른 들이 맛부튼 곳으로,
가름아 가튼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거러만 간다.“

에 이르르면 참으로 공간과 사람의 몸과 마음과 정신이 얽히는 글의 파워에 생생한 떨림을 느낀다. 

이 상의 글은, 그가 건축을 공부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공간 상상력이 펼쳐지는 것이 즐겁다. 그의 글을 읽으면 ‘그림이 온다.’ 「날개」에서 그 골방과 그 집과 골목, 그리고 휘황한 거리의 냄새가 날 듯 하다. 

외국 작가들의 글에서 펼치는 공간 파워 역시 좋다. 브론테 자매의「폭풍의 언덕」「제인 에어」는 아마도 그 황량한 영국의 자연이 없이는 태어나지 않았으리라. 움베르토 에코의 글은 아마도 중세의 미로와 같은 공간이 없었다면 가능치 않았으리라. 지식의 미로가 그대로 반영된 것 같은 중세의 공간에서 에코의 상징은 복합적인 의미로 태어난다.  

미셸 푸코 작업의 의미를 새삼 깨달은 것은 그의 다른 어떤 뛰어난 책 들보다도 ‘파놉티콘‘이라는 원형 감옥의 공간을 통해 사회의 권력구조와 컨트롤 방식을 분석한 글 덕분이다. 공간이란 역시 사람에게 파워풀한 컨트롤 수단임을 알 수 있다.    

도시의 역학을 기막히게 그리기로는 시오노 나나미를 따라갈 작가도 없을 듯 싶다. 그의 저작 중에서도 베니스의 탄생과 흥망성쇠를 그린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도시가 인류문화의 집대성이고 인간사의 무대라는 것을 웅변하는 책이 아닐까. 도시는 눈에 보이는 그 이상이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상) (르네상스 저작집 5) 상세보기
시오노 나나미 지음 | 한길사 펴냄
베네치아의 정치외교 기술과 국가를 '경영'하다시피 한 베네치아인들의 정치 마인드, 그리고 실현불가능한 '완전무결'을 고집하지 않는 대신에 실제 피해를 되도록 줄이는데 힘썼던 그들의 현실적인 합리주의 노선을 되짚어보는 대하 서사시이다.


그러다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책에 이르르면 나는 ‘공간의 시성, 공간의 상징성’과 함께 ‘글의 시성, 글의 상징성’을 깨닫는다. 역시 글의 파워는 놀라운 것이다.
글을 쓰는 작가와 공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작가의 공간 감성은 아마 누구보다도 예민하고, 떨릴 듯 섬세하고 또 흔들림 없이 힘이 있을 것이다. 글을 통해 그러한 공간 감성을 느끼는 체험, 감동적인 순간이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세계문학전집 138) 상세보기
이탈로 칼비노 지음 | 민음사 펴냄
선과 악,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는 도시에 대한 한 편의 시와 같은 소설. 보르헤스, 마르케스와 함께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대표작으로, 그의 소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힌다. 매우 섬세하면서도 이곳저곳으로 뻗어나가는 소설은 도시를 심리적, 물리적, 감각적 상태로 그리며,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관한 통찰을 보여준다. 소설은 베네치아의 젊은 여행자 마르코 폴로와

『이 집은 누구인가』라는 책을 쓰면서 나는 제발 건축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부디 독자가 글을 읽으며 자신의 집을 상상하는 글을 쓰려 애썼다. 그러나 ‘상상하게 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깊이 실감했다. 책을 다시 읽어보면 전문가로서의 나의 투가 곳곳에 튀어나오는 것이 아쉽기 짝이 없고 나의 한계를 느낀다. 아, 공간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글이란 얼마나 쓰기 어려운가.  

그래서 나는 부디 우리의 작가들이 그들의 감성과 지성으로, 그들의 상상력과 필력으로 공간을 묘사하고 상상하고 감동하게 만드는 글을 쓰기를 마음 속 깊이 기대한다.

실재하는 공간이든,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상상의 공간이든, 아주 일상적인 공간이든, 평소 보기 어려운 초일상적인 공간이든 글을 통한 공간상상력을 느끼고 싶다.

평소 보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지나는 공간의 뜻, 많이 봄으로 해서 잃어버린 상상력, 보질 못해서 상상하지 못하는 공간, 또는 상상을 통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글을 더욱 접하고 싶다.

 집이건, 사람의 몸 공간이건, 우리의 길이건, 도시건, 하늘의 공간, 땅 속의 공간, 땅위의 공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공간의 뜻을 새삼 깨우치게 하는 그런 글을 더욱 만나고 싶다. 우리의 문학에서 생생하게 우리의 도시, 우리의 골목, 우리의 집, 우리의 공간이 살아 숨쉬는, 그 미묘한 감성들이 퍼져나오는 기쁨을 만나고 싶다.

글과 공간. 그렇게 둘이 있기에, 서로 만나고 파장을 주며 때로 하나가 되기에, 사는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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