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시로 읽다
- Posted at 2008/05/31 09:39
- Filed under 리더십과 펄로십
문인들은 시와 산문을 정확히 구분하겠으나 나는 그리 발표되어 그리 여길 뿐인 아마추어다. 산문의 한 대목을 ‘시’로서 추천하는 이유다. 백범의 ‘나의 소원’ 중 첫 대목이다. 정확한 제목은 ‘나의 소원’이지만, 종종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로 소개되기도 하고(나는 이 제목이 좋다), 이 글이 포함되어 있는《백범일지》로 소개되기도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백범 김구>>
왜 이 대목을 꼽아보는가. 나는 입에 붙여 좋고, 그림이 그려지고, 가슴과 머리를 같이 불태우는 글이 좋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대목에서는 장욱진 화백의 그림 중, 노란 들판에 한 남자가 바람같이 걸어가는 자화상이 떠오른다. 그러다 마지막 대목,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겄네”에 가면 가슴에 불이 붙는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의 첫 대목,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는 피를 토하는 듯하다. 일상 속에 떠오르는 절박한 순간이 그려진다. ‘신새벽’이라는 말의 그 느낌, 그리고 ‘뒷골목’이라는 말의 그 느낌은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강렬하다. 누군가 이 새벽 이 골목에서 그 무엇을 쓰리라는 그림이 그려진다.
이 상의 시도 입 밖으로 내기에 더없이 좋지만 그보다도 더 좋은 것은 산문《날개》의 마지막 부분이다. “날아라, 날아라” 대목의 그 깊은 절망과 높은 갈망이 좋다. 아무래도 나는 ‘숨을 토하는 듯한 말의 운율’에 잘 반하는 편인 모양이다.
백범의 <나의 소원>이라는 글도 그렇게 숨을 토하는 말의 운율로 다가왔었다. 글이야 진작부터 알았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던 글이었다. 정작 이 글이 내게 마음으로 다가온 것은 이 글을 입 밖으로 소리 내 봤을 때였다.
유학에서 돌아온 1988년, 나의 첫 프로젝트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3년마다 열리는 전시회(밀라노 트리엔날레)의 ‘서울 전시관’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마침 88 올림픽의 해였고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일이라서 어깨에 진 짐이 무거웠다. 각별하게 우리 것을 알고 싶었지만 지금에 비해서 자료도 그리 많지 않을 때다.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자료가 <뿌리깊은 나무>에서 만든 《한국기행》, 《서울600년 사》그리고 ‘나의 소원’이었다. 때가 때여서 그랬던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가 절실하게 다가왔었다. 참 짧은 말로 깊은 뜻을 담았다고 감탄했었다. 입 밖으로 내 보니 왜 그리 더 다가오던지.
(아이콘이 된 백범 김구 사진, 아마 우리 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역사인물 아이콘이 아닐까? 참 멋진 사진이다.)
큰딸이 이 책을 보고 마구 울었던 것이 중학 시절이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대목이 뭉클하더란다. 그래,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배울 때 마음속에 오가던 갈등을 나도 기억한다. “왜 우리나라는 그렇게 힘이 없었어?”하던 그 애 타는 심정 말이다. 그렇지만 설령 힘이 있다 하더라도 남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의지, 그 뜻에 대해서 어린 딸과 함께 한참을 토론했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대목은 지금도 듣자면 설렌다. 내가 쓰는 글에도 자주 인용하거니와 자주 입 밖에 내 본다. 나라에 힘이 없어 그렇게 힘들던 시절에 이런 말을 하신 백범 선생은 정말 멋지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의 ‘가장’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약간 거부감이 든다. 강조하는 뜻이지만, 아름다움에 대하여 ‘가장’이라는 비교적인 말을 쓴다는 것이 조금 석연찮다. 아름다움이란 절대로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높은 문화의 힘’이란 참 근사한 말이다. ‘높음’에는 어디 비교할 바도 없고 끝도 없지 않은가. ‘한없이’라는 말도 영 근사한 욕심이 아닐 수 없다. 어디에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것에 한없는 욕심을 낸다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근사한 포부가 아닐 수 없다.
과연 ‘높은 문화의 힘’이란 무엇일까? 백범 선생은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라고 하셨다. 그리 원하셨던 대로 우리의 부력은 놀랍도록 풍족해졌고 우리의 강력은 상당히 강력해졌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의 힘은 얼마나 높을까? ‘높은 문화의 힘’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게 보인다. 확실히 ‘부력’과 ‘강력’이란 ‘높은 문화의 힘’의 충분조건도 필요조건도 아닌 것이다.
몇 년 전 ‘TV 책을 말하다’ 프로 덕에 《백범일지》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적이 있다. 모쪼록 사람들이 이 <나의 소원>의 한 대목을 꼭 입 밖에 소리 내 보았으면 좋겠다. 가끔 생각하건대, 이 대목이 영어로 또 다른 외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사람의 입에서도 소리 내어지면 참 좋겠다.
시도 소리 내어 읽을 때 시적 감성이 느껴지듯이, 산문도 소리 내어 읽으면 시적 감성으로 높아질 수 있을지 모른다. 만약, ‘시적 감성’이 우리가 평소 소리 내는 말에서도 느껴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높은 문화의 힘’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백범 선생은 그것을 이루어 내셨다. ‘높은 문화의 힘’이다.
오늘은 황사 걷힌 하늘도 맑고 새벽 공기도 써늘합니다. 뭔가를 기다리는 전야의 분위기입니다.오늘 저녁은 훨씬 더 좋은 공기에서 더 많은 촛불시민들이 나오겠지요. 오늘 새벽따라 이 글 생각이 났습니다. <<문학사상>>에 기고했던 글인데, "나를 매혹시킨 이 한 편의 시"라는 주제였지요. 산문이 시가 되고 시가 노래가 되면 그렇게 우리 마음을 깊게 치지요.
우리나라의 부력과 강력은 무척 높아졌는데, 우리 문화의 힘은 아직 못미치지요. 문화의 힘이란 철학의 힘, 개념의 힘, 사상의 힘, 소통의 힘, 사람의 힘, 감성의 힘, 그리고 일상의 힘 아닐까요? 백범 김구 선생이 지금의 촛불집회를 보시면 '높은 문화의 힘'이라 하시지 않을까요?
(어젯밤 하늘에서 본 시청앞 광장 장면- 출처 경향신문.
정말 근사한 아이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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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도 김구 선생님을 존경하고 계셨군요!^^
김구 선생님의 선경지명과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김구 선생님을 항상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모든 사람의 행복을 생각했던 그 마음 가짐을 본 받고자 합니다.
저는 정보가 지식이 되고, 그 지식이 다시 문화가 된 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를 모든 사람이 옳다고 인정할 수 있어서, 모두가 함께 소유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지식으로 보고 있거든요.
그리고 오로지 문화만이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어 모두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과학기술자로서 가장 중요한 사명은 자신이 아는 지식과 남이 알고 있는 지식을 융합해서 문화로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보고 있고요.^^
안타까운 것은.. 도대체 제 실력이 별로 성장하지 않는 것 같다는 거죠.^^;;
제가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나라'에서 '가장'은 '아름다움'에 붙은 수식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은 비교 할 수도 없지만 항상 변하고 발전해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아마도 김구 선생님이 원래 하시고 싶은 말은 '가장 아름다움(을 선도할 수 있는) 우리나라'가 아니었을까요?
'가장'이라는 말도 이 생략되어 있는 의미를 수식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아름다운 우리나라'라는 말에서 '거부감'보다는 왠지 모를 '사명감'이 느껴집니다.
우리나라처럼, 외세에 침략을 당해 억압 당하는 힘든 상황도 겪어 봐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는 저력이 있어야 하며, 그 밑바탕에 촛불 집회처럼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단결력까지 가지고 있어야 만이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자격(경험을 통한 성숙)을 갖췄다고 느껴지거든요.
저는 이 나라를 통해 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꼭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죽어도 다시 태어나고 싶은 나라, 대한민국을 위하여 오늘도 달려봅니다.-
역시 글의 해석에는 개인적인 성향이 나타나는군요. '가장'을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군요.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인간됨을 축복하는 사람들은 아주 매혹적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그 매혹적 인물이지요. 별로 '안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끌어당기는 사람이 있어서, 이 세상은 여전히 희망의 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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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김구선생님 뿐만이 아니라 역대 나라를 위해 희생하셨던 모든 분들을 존경합니다. 다만...현 시대엔 그분들을 따를 자가 안나타나는것이 안타까울뿐입니다. 민심이 갈라지고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되는것 자체가 바로 그 나라와 사회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보여주는 증거가 되겠지요. 그래서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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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네요 정말
좋은글 블로그에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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