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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TV, 책’ 살려내세요

<TV, 책을 말하다> 첫 회 패널로서 한마디 하렵니다. 이 프로에 몇 차례 출연했었고, 책 관련 방송을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글에 대한 존중심이 깊고, 20 여권 이상 책을.....

고양이는 쥐의 무서움을 모른다, 아니, 너무 잘 안다

지난 주 <백분토론 400회>에서 유시민 전 의원이 했던 ‘고양이는 쥐가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모른다’말이 많이 회자됐었다. 힘센 고양이는 ‘뭐 그래, 별 거 아닌데’ 하면서 발.....

대학생 멘토링, 참 어렵군요!

이번 학기에 <셀프 리더쉽(리더십)과 자기 비전 만들기>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는데요. 이번 기말 과제가 ‘자신의 role model을 찾아서 인터뷰하기’입니다. 그래서 선생님.....

MIT 도서관에서의 생생한 행복감

행복감이 생생하던 시간들이 있다. 그 중 하나로 나는 유학 시절 도서관에서 하염없이 책을 뒤지며 보냈던 시간을 꼽는다. MIT 도시건축학부에는 로치 라이브러리(The Rotch.....

얼마 전 나는 다 큰딸로부터 기분 좋은 칭찬을 받았다.
8주 동안 외국대학에서 공부하고 오더니, 한다는 말.

“엄마한테 고마웠어. 문화적으로 키워줘서. 아주 멋지게 놀았어.”
짬짬이 그 도시의 미술관, 박물관, 다운타운 명소들을 신나게 누빈 모양이다.
“이제 온 세계에 친구 깔아 놨어!
에티오피아, 아일랜드, 이탈리아, 러시아 등” 온 세계 학생들과 ‘온 캠퍼스’와 ‘오프 캠퍼스’ 친구를 삼았단다.
“요리는 역시 잘해야겠어.”
멋있게 보이려면 요리도 필수임을 알게 되어 반갑다.
“엄마 말대로 불어 공부 좀 더 할 걸.”
불어를 알면 좀 더 보이는 게 많을 것 같더란다.

나는 일갈했다. “글쎄, 잘 놀려면 공부 제대로 해야 한다니까.”

***

‘나의 교육 방침’을 ‘피교육자(?)’인 자식이 모처럼 인정을 해 주니 감격할 지경이었다.

사실 나는 ‘교육’이라는 말을 영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이른바 ‘공식 교육계’에 종사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교육이라는 말 대신 내가 좋아하는 말은 ‘자라기, 깨닫기, 문답하기, 해 보기’ 같은 것들이다.

부풀려 보자면, 나는 ‘소크라테스’적이고, ‘아인슈타인’적이며, '다빈치’적이다.
우리 식으로 풀자면, 나는 ‘연암 박지원’적이고, ‘퇴계 이황’적이고, ‘고산자 김정호’적이다.
해냈던 일 이상으로 이들의 삶의 방식, 자라기 방식이 좋다.
이들은 인생을 한바탕 ‘잘 놀고’ 갔던 것 아닐까?

물론 내가 한참 자랄 때는 잘 놀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몰랐다. 누가 얘기해 주었더라면 아마 잘 놀고 싶어서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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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소설에 빠진 덕분에 나는 역사, 세계사, 지리, 사회 과목들에 흥미를 가졌다. 이들 과목들은 소설 속에 엉켜 있는 사건들과 지명을 연결시키고 확인하는 도구였다.

영화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영화와 소설은 이렇게 극화를 했구나 또는 이렇게 틀렸구나 알아맞히는, 일종의 ‘숨은그림찾기’ 같은 게임이었다.

나는 영어 노래 듣느라 영어 공부를 했다고 해도 좋다. 중고 시절 내내 켜 놓고 살았던 AF(K)N 라디오 덕분에 영어 귀가 틔었던 것이다. 우리말 라디오는 너무 잘 들려서 집중에 방해되고, 심심하니 노래는 듣고 싶고 해서 틀어 놓았던 영어 방송, 하루는 연속 드라마의 내용이 드디어 들렸다. 그 순간의 깜짝 놀람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다음 드라마 시간을 기다리던 나 자신이 기특하고 은근히 자랑스러웠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고 자랑 꽤나 하는 불어. 그런 자랑은 지나치다 싶지만, 그 분위기에 말려서 고등 시절에 일부러 학원까지 다니며 드디어 그 유명한 『어린 왕자』를 원어로 읽어 내는 짓까지 했다. 한때의 열중에 불과했지만, 나의 열중은 큰딸의 불어 공부를 도와줄 때 기막히게 사용되었고(딸의 행적을 팔아서 내 자랑을 하자면, 첫 시험 45점짜리 딸이 다음 시험 94점을 받았다.) 딸이 이제야 깨닫게 된 것과 같이 내가 문화를 맛보는 데 지금도 소용이 닿는다.

***

두 가지 공부를 안 해서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첫째, 우리 전통 악기 하나 배우지 못한 것. 단소나 대금 하나 배웠더라면 외국 사람들 앞에서 산조 한 가락 멋들어지게 뽑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얼마나 멋진가? 기타 들고 피아노 한 수 하고 색소폰 부는 것보다 더 멋질 텐데.

둘째, 태권도를 못 배운 것. 왜 나의 시대에는 여자들에게 호신술을 가르치는 분위기가 없었을까.(지금도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없는 힘이나마 요령껏 쓰는 방법을 터득하면 남자들 앞에서 훨씬 더 당당할 수 있었을 것을.

역시 ‘풍류(風流)’는 알아야 하고 ‘문무(文武)’는 겸비하는 것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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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도시건축을 내 일로 택한 것도 잘 놀기 위해서였나? 물론 시작할 당시엔 어림도 없었다. 놀기 위해서는커녕 어떻게든 일하고 싶은 마음만 앞섰을 터이다. 그런데 지금와서 보니 나의 일은 일하기와 놀기가 잘 구분이 안 간다. 여행도 일이요, 영화 보기도 일이고, TV 보기도 일의 한 부분이 된다.

칼 갈며 하던 공부도 일을 놀이처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는 되었다. 그냥 “잘하면 돼!”보다는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무엇일까, 선례는 어떤 게 있나, 어떤 의미가 있나, 역사와 어떤 관련이 있나, 어떤 문학적 연상이 있을까, 영화와는 어떤 관계일까, 사람의 어떤 심리를 건드릴까” 등. ‘얼마나 큰 프로젝트이냐’에 관계없이 ‘얼마나 뜻있는 프로젝트로 만드느냐’ 에는 역시 열심히 한 공부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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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는 ‘잘 놀려고 공부한다’ 수준은 졸업했을까? 그렇지 않다. 여전히 나는 잘 놀려고 열심히 공부한다. 예컨대, 지난밤 만난 사람과의 즐거운 대화에 끌려, 집에 돌아와서 그 사람이 얘기하던 책을 들춰보고 열심히 다시 읽는다. 왜 그 사람은 내가 그냥 넘긴 이 대목을 그리 인상적으로 봤을까? 다른 책도 더 찾아볼 것이다. 공부는 인생이다. 인생은 공부다.


나는 잘 놀고 싶다.

이왕이면 멋지게 놀고 싶다.

나는 내 딸들이 멋지게 놀았으면 좋겠다.

나는 사람들이 모두 멋지게 놀면 좋겠다.

(‘놀다’를 ‘일하다’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멋지게 놀기란 돈으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돈과 시간은 도움이 되지만, ‘플러스 알파’가 꼭 필요하다.
딸은 왜 ‘멋있게 즐겼다’고 했을까? '제대로 공부하며 제대로 놀아보는 여섯 가지 비결'을
어느새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대로 공부하며 제대로 놀아보는 여섯 가지 비결

첫째, 새록새록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 더 들어서.

둘째,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게 자꾸 더 커짐을 느껴서.

셋째,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고 싶어져서.

넷째, 날개가 돋고 머리가 부푸는, 자라는 느낌이 좋아서.

다섯째,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참 많구나, 인간은 위대할 수 있구나 느껴서.

여섯째, 살아 있음이란 참 좋은 것, 참 뜻있는 것임을 느끼게 되어서.

 

첨언: 
그런데, 제대로 공부해서 제대로 놀아보려면(똑같이, 제대로 공부해서 제대로 일해 보려면)
입시몰입교육, 과외몰입교육, 시험몰입교육, 외국어몰입교육 같은 것은 금물이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의 우리 사회가 그렇게 몰아가는 것이 심히 불안하다.
제발 교육을 ‘돈벌기 도구’로 만들지 말고, 제발 교육을 ‘돈들이기 경쟁’으로 몰지 말라.
제대로 일하지도, 제대로 놀 줄도 모르는 사회가 될까 심히 걱정된다.
이런 사회에서 사회정서가 황폐화됨은 물론 결국 경쟁력도 떨어진다.
'잘' 놀기 위해 공부하는 사회, 인생 자체가 공부가 되는 사회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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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이스트 남표 횽아를 만나다

    Tracked from 자존심지키기 2008/04/18 11:25 Delete

    어제 학부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거기서 서남표 총장께서 외국인 학생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거기다가 방송사까지 동원해서... 뭐, 외국인 학생들이 많이 늘어났으니, 그네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하나 보다 하고, 우리는 우리끼리 저~쪽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방송사 직원인듯한 사람이 와서는 하는 말이, 총장님이 너무 외국인들하고만 이야기를 하시는데 우리랑 약간 이야기를 해 보면 어떠냐고 한다. 다들 '싫어요. 우..

“길을 잃는 것은 자신이라 알고 있던 것을 잃어보는 것이다.
길을 찾는 것은 곧 자신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한 젊은이가 유쾌한 메일을 보내왔다. 나의 집이자 사무소를 찾으러 골목을 누비고 있다는 것이다. 힌트는 세 가지란다. ‘시장 근처일 것, 큰길가는 아니고 어느 골목일 것,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살고 일할 것 같은 인상의 집일 것.’

“스토커는 아닙니다.”라는 단서와 함께 보내 온 이 유쾌한 메일. “주소로 금방 찾을 수 있지만 저는 이 집 찾기 놀이를 하면서 한참 더 헤매며 놀렵니다.”

그 젊은이의 모습이 가히 상상이 된다. 행간에서 힌트가 잡힌다. 20대 중반, 키는 멀대처럼 커서 허우적댈 듯싶고, 모자는 물론 썼고, 가방이나 배낭은 물론이고, 큰 주머니 주렁주렁 달린 옷을 걸쳤을 듯싶다. ‘도시 속의 유목민’ 같은 모습이랄까.

그 젊은이는 나의 집을 찾았을까? 후속 메일이 없으니 나는 그저 그 젊은이가 여전히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고 있으리라 상상하련다. 그의 탐정 놀이는 즐겁기 짝이 없으리라.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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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으면 무언가 다르다.
새로운 것이 떠오른다.
평소에 잠자던 온갖 감각이 발동된다. 느낌이 새삼 생생해진다.
민감해진다.
머리가 돌아간다.
모든 것이 단서로 떠오른다.
탐정이 된다.

집의 크기와 모양은 물론, 간판이며 가게 종류, 다니는 차와 주차한 차의 종류와 숫자, 나무와 풀과 돌, 꺾인 길과 휘돌아 가는 길과 막다른 길의 생김생김이 모두 단서다. 길 가는 사람들마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어떤 차림을 하고 다니는지, 아이들이 다니든지, 어르신들이 있는지, 어느 시간대에 사람이 많은지, 사람들의 표정은 어떤지, 이 모두가 단서가 된다. 냄새에 흠흠 대고, 온갖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발부리에 부딪히는 쓰레기마저도 심상찮다.

모르는 길이란 그렇게 몰라서 매력적이고 무엇이 펼쳐질지 몰라서 매혹적이다. 여행 갈 때 너무 꼬치꼬치 계획을 세우고 가면 재미 반감, 모험 반감인 것과 같은 이치다. 펼쳐지는 장면에 자신을 맡기고,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에 자신을 던져 버리는 것이 좋다.

마치『천로역정』의 순례자처럼 진실을 찾는 마음으로, 『열하일기』의 연암 박지원처럼 천연덕스러운 호기심으로, 사랑하는 에우리디케를 찾아 땅속 지옥의 온갖 모험을 마다 않는 오르페우스처럼 말이다. 위험은 그저 위험일 뿐, 그 위험을 알아채는 요령도 곧잘 터득하게 되고, 위험을 피하는 방법은 물론 위험을 헤쳐 가고 즐기고 활용하는 비법도 익혀 가게 된다. 모험도 역시 몸에 익어 가는 것이다.

길을 잃는 목적은 막연한 것이 좋을 게다. 길을 찾는 방법은 모르면 모를수록 좋다. 호기심은 왕성하면 왕성할수록 좋다. 배짱은 두둑해야겠고 두둑하지 않으면 ‘두둑한 척’이라도 하면 된다. 다리야말로 튼튼해야겠다. 비상금이 넉넉하면 좋겠지만, 정 안 되면 한두 끼니 양식거리나 물통 하나쯤 넣어 두면 된다.

무엇보다도 혼자인 것이 좋다.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나를 몰라서 좋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있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는 쉽게 혼자가 된다. 그 혼자 있음이 축복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길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지름길, 바른 길, 맞는 길’을 찾는다.
‘넓고 훤한 길’을 택하려 한다.
‘아는 길, 편한 길’을 가려 든다.
그러고는 그 유명한 시구처럼 ‘가지 않은 다른 길을 그린다’는 심정으로 사는 것이나 아닐까. “그 길로 갔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 길은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그 길은 훨씬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는 찜찜한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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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인간은 워낙 겁이 많거니와 비겁하기조차 하다. 그러니 무턱대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라는 것도 무모한 짓이다. 그렇게 부추긴다고 해서 영악한 우리들이 그리 쉽게 길을 잃으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일부러 길 잃어 보기’ 전략은 어떨까. 그리 위대하거나 모험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지극히 인간적(?)인 전략이라고나 할까.

첫째, 목적지는 알되 찾는 과정에서 잃어 본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의 가운데 토막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흩뜨려 본다고 할까. 직장 가는 길, 학교 가는 길, 집 가는 길 사이사이에서 말이다. 잘못하면 아예 새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기에 즐겁지 않은가.

둘째, 지도는 지니되 보지 않고 간다. 마치 나의 집을 찾는다는 앞의 젊은이처럼 말이다. 머리를 동원하면 금방 찾는다는 믿음을 가지되 먼저 ‘감(感)’을 동원하는 것이다. 평소 잠잠하게 숨어 있던 감의 훈련도 될 뿐더러 오감과 육감을 즐길 수 있게 될 게다.

셋째, 일정 시간을 아예 길 헤맴에 쓴다. 여행이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모르는 곳에 자신을 떨어뜨리는 방식은 수없이 많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번 아예 아무 정거장에서나 내리고 일부러 모르는 동네에서 헤매 본다.

넷째, 남몰래 길을 잃어봐야 더 재미있지 않을까. 나의 탐험, 나의 모험에 대해서 은근한 비밀로 간직하고 있으면 마치 자기의 보물 지도를 하나 가진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마치 몽테크리스토 백작처럼? 그 언젠가 내가 탐험한 것을 드러낼 때를 기약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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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부러 길 잃어 보기’가 너무 소극적인가? 마음 같아서야 다 떨쳐 버리고 전혀 모르는 길로 가보고 싶다마는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간의 한계 아닌가?

그래도, 길을 잃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애쓰고, 바른길, 옳은 길, 좋은 길, 아름다운 길만을 찾으려는 사람보다는, 이렇게 때때로 길 잃기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이 훨씬 인간 냄새가 나지 않는가. 그런 모험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을 어쩌다 길에서 마주칠 때의 그 안도감이란. 아, 나 같은 사람이 나만은 아니구나. 아직도 모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아직도 이 세상에 진짜 사람이 있구나 하는 그 뿌듯한 기분이란...
(무지개 까지 뜨면 더욱 좋다.....).



물론 우리는 잃기 위해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길을 잃는다는 행위는 곧 길을 찾기 위한 단서를 찾는 행위다.
     길을 잃는 것은
     자신이 자신이라 알고 있던 것을 잃어 보는 것이다.
     길을 다시 찾는 것은
     곧 자신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알고 있던 나, 내가 모르고 있던 나, 내가 되고 싶던 나, 또 다른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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