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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5/05 박경리, 나의 '위대한 女人'은 떠나셨습니다 by 김진애 (20)
  2. 2008/05/04 우리 아이 잘 자라는 6가지 비결 by 김진애 (2)
한국남자들의 행복 7계명

한국남자들은 불쌍하다. 구조적으로 불행하다. 헤어나기 어렵고 벗어나기 힘든 사회의 틀에 얽매여 있다는 이유에서 확실히 그러하다. 세계 어느 곳의 남자들도 ‘남성’이라는 구조적.....

용두사미 대운하, 더 괴롭다

대운하는 계속 우리를 괴롭힐 모양이다. 아무리 용두사미가 되어도. 총선 이후 ‘대운하 포기’ 뉴스가 나오고 ‘청와대 대운하 무기한 보류’ 뉴스가 나오더니, ‘포기한 적 없다’는.....

‘머피의 법칙’에 빠진 MB와 광우병

MB는 ‘머피의 법칙’에 빠졌다. “왜 이렇게 모든 일들이 꼬일까?” 하는 일마다 안 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샐리의 법칙’으로 당선되었다면, 이제 이명박 정부는 ‘머피.....

‘20대 피’의 조건 단 한가지

이 시대의 20대란 부럽긴 한없이 부러워도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세대다. 차라리 20대의 피가 흐르며 사는 삶이 훨씬 좋을지 모른다. ‘20대-30대-40대-50대-60.....

박경리 선생님, 결국 떠나셨군요. 어린이날 가시다니, 참 박경리 선생님 답습니다.

박경리 선생은 어릴 적부터 저의 위대한 여인이었지요.
처음에 남성으로 알았던 박경리, 나중에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아주 기뻤했답니다.
여인(女人)을 여성인간(女性人間)의 줄임말로 이해되는 거인 박경리,
저는‘주름 많은 치마폭을 두른 큰 산, 박경리’
 ‘뿌리인간 박경리’라 표현하곤 한답니다.

제가 썼던 박경리 흠모의 글들을 모아봅니다.
 한번도 못뵈었지만 항상 곁에 있는 듯, 떠올리면 든든한,
같은 시공간에 계시다는 것이 그저 좋던 박경리 선생님,
가셔도 여전히 계시겠지요. 그 생명력으로 우리를 다시 생생하게 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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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무대인 평사리를 내려다 보는 최참판 댁 사랑채 마루에서.

기실, 평사리와 최참판댁은 모두 박경리 선생님 머리의 상상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세요?

저도 실제의 무대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지금 있는 곳은 재현한 평사리 마을이랍니다. 그런데도 가보면 정말 평사리 같아요.

섬진강변의 풍요로운 평야이지요.







................................................
드디어 나에게 다가온 첫 위대한 여인은 ‘박경리’ 선생이었다. 나는 첫 책으로「시장과 전장」을 보았는데 그 후 「김약국의 딸들」「가을의 여인」을 찾아보면서 참 기분이 괜찮아졌다.

우선 그 긴장감이 좋았다. 내 어렸을 시절 문학으로 많이 읽힌 것은 소위 고전이었고 근대문학이 많았는데, 서정성이 강한 근대문학을 권장하는 분위기여서 솔직히 그리 역동감이 없던 기억이다. 그런 나른함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 1960년대의 치열하고 고민 가득하고 딜레마를 제기하던 전후문학들이다. 예컨대 최인훈의「광장」같은 소설은 사실 당시 나이로서 이해하기 어려웠어도 여전히 그 치열한 박동감을 즐겼던 기억이다. 숱하게 많은 책들을 접했던 이 시절에 박경리 선생을 발견했을 때의 행복감이란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게다가 처음에 나는 박경리 선생을 남자로 알았었다.
여자 작가가 귀한 시절이었고 요새처럼 작가들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신문 광고에 등장하는 시대도 아니었으니 나는 당연히 남자로 생각했었다.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나는 남자로 생각했다. 함자 석자마저도 ‘남자스러운’ 데다가, 책의 내용 역시 전혀 여자가 쓴 것 같지 않았으니, 어린 나의 고정관념이 작용했던 셈이다. 나중에 언니 오빠들의 대화를 듣고 여자임을 알고는 너무도 신기하게 생각되어 다시 한번 책을 읽던 기억도 난다. 여자가 쓰는 글에서 여자를 알아낼 수 있는 단서를 찾아보려는 어린 마음에서 였다. 나는 당시에 전혀 알아 낼 능력이 없었고, 사실은 지금도 잘 모른다.

글을 보면 분명 여자가 쓴 글이라는 냄새가 물씬한 글이 있고, 분명 남자가 쓴 글이라는 냄새가 물씬한 글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렇게 두드러지는 글이란 어차피 별로 재미없는 글 아닐까? 진짜 괜찮은 글이라면 여자, 남자를 그 글에서 알아낸다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분명 위대함이란 여자, 남자의 성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성을 초월하는 그 어떤, 사람됨의 위대함이라는 것이 있는 것 아닐까?”

               『여자, 우리는 쿨하다』 책 중, “어린 시절, 나의 위대한 여인” 중에서
              (김진애, 한길사, 2001)
................................................

박경리 선생에 대한 어린 시절 나의 발견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었는가는 이미 앞에서 얘기했다. 그러다, 대학 시절 드디어「토지」를 만났을 때의 내 감격은 참으로 컸다. 지난 역사가 비로소 나에게도 살아있는 의미로 다가왔다고나 할까? 아마도「토지」는 다른 어떤 문학보다도 ‘역사적 의미’와 ‘역사의 개인 의미화’를 교차시킨 문학으로서 언제나 생생한 의식을 일깨우는 작품으로 후대에도 기록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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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공부하던 나에게 특별한 의미도 있었다. 나는「토지」를 보며 우리 강산, 우리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고 과언이 아니다. 하동(河東), 화개장터(花開), 평사리, 어찌 이름도 그리 예쁜가. 그 구비구비 섬진강과 그 비옥한 옥토들, 그 대문 높은 집, 그 담장 펼쳐진 집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게다가 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삶의 이야기는 얼마나 입체적이든지. 나는 우리 전통 집의 심성에 대해 그 무엇을 알 것 같았다.

제가 우리의 한국 옛 집, 마을, 땅의 아름다움과 뜻에 대해 눈뜨게 만든 책이거든요. 사진이나 답사나 건축 책이나 사진 책이나 영화보다 더 절절하게 그 ‘관계’들을 느끼게 되었던 소설입니다. 아름다움도 있고 처연함도 있고 안타까움도 있고…….

윤씨 부인의 기품이 배어 나오는 모습에서 ‘안채의 품위’를 알았고, 아름다운 별당 아씨의 모습을 그리는 남자의 모습에서 ‘담의 의미’도 알았고, 자의식을 떨치지 못하는 아들의 처절한 자기 정체성 고민을 보여주는 ‘사랑채의 외로움’, 무당의 딸과의 사랑이 펼쳐지는 사당, 절도와 미래 구상과 포용이 펼쳐지는 절, 그 묘향산의 진달래 꽃, 섬진강의 구비구비 아름다움 등 ……. 참 박경리 선생님의 힘있으면서도 안타깝고 절절하게 그리시는 필력에 가슴을 울리며, 비로소 우리 건축, 우리 강산,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느꼈던 그런 문학이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건축과는 그렇게도 달라요…….

지금도 박경리 선생을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뵈면 든든하기 짝이 없다. 그냥 좋고,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살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 여전히 가장 좋은 모습은 땅을 일구는 모습이다. 든든한 가이아의 모습을 느낀다. 홀로 글을 쓰는 외로움을 찾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고집도 좋고, 땅을 일구며 오히려 글을 쓸 에너지를 찾는다는 모습도 너무 좋다. 정말 용기 있게 보인다. 그의 혼이 그대로 느껴진다.     ....................

이들 위대한 여인들을 나는 나의 혼의 친구라 일컫는다.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그저 팬일 뿐이다. 한번 사람을 발견하면 나는 그냥 팬이 된다. 다만, 조용한 팬이다. 그들의 작업, 그들의 행적을 찾아보고 밟아보곤 한다. 그들 얘기가 여기 저기에서 나오면 반가워하고 뿌듯해 하는 정도의 조용한 팬이다.”

        『여자, 우리는 쿨하다』 책, “성찰기, 나의 위대한 여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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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인터뷰 중에서 “다시 태어나면 건축가를 하고싶다”는 대목이 있다. 분명, 박경리는 ‘자연 파괴’라는 건축가의 운명적 속성을 뛰어넘는 건축가가 될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생에서 박경리는 글로 건축을 한 것 아닐까? 나는『토지』에서 우리 한옥과 마을의 생생한 아름다움과 뜻을 언어를 통해 먼저 깨우쳤다. 나중에 소설 속의 공간이 온통 박경리의 상상 공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 속아버린 것에 아주 기분 좋아졌던 것은 물론이다. 최근 지어졌다는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 댁’이 과연 소설 속의 공간 상상력만큼 실제로 살아났을까?                  ..........

박경리는 심플하다. ‘원초적’이라는 말이 더욱 맞을 것이다. 말이 별로 필요 없다. 눌변은 아니지만 부끄럼을 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공적인 자리에 나서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의 메시지는 ‘수사’가 필요 없다. 생명, 염치심, 수고함의 가치, 보잘 것 없음에 대한 감사함.   ......

박경리가『토지』의 최치수를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한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아하!” 했었다. 자신의 태생의 비밀을 막연히 짐작하면서도 감히 입에 내지도 못하고 배신의 배신을 거듭 겪으면서도 꼿꼿이 자신을 지키는 것. 박경리의 깊은 콤플렉스, 그리고도 버텨나는 자존심은 뿌리 인간을 지켜내는 힘이 아닐까?”

『남녀열전』책, “뿌리인간 박경리 vs. 날개인간 이어령” 중에서

 (김진애, 샘터사, 2005)

................................................

내가 가장 만나보고 싶은 인물은 작가 박경리다. 별로 말은 필요 없을 듯싶다. 꼭 같이 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나란히 밭을 매는 일이다. 아무 말 없이 시골 아낙네처럼 머리에 수건 쓰고 같이 땅을 만지면 그 자체만으로도 무언가 통할 듯싶다. 큰 산 같은 박경리, 그 큰 산은 마치 우리옷의 치마처럼 주름이 철렁대고 주름 잡힌 치마처럼 깊은 주름을 안고 있는 큰 산 같은 박경리, 그 주름 사이사이에 숨은 이야기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듣고, 그를 만나서는 그저 감이 통했으면 좋겠다.”

              『남녀열전』책,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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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 박경리 선생의 아름다운 자태 사진을 찾다 못해 이 사진첩을 넣는다. 젊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어찌나 근사하신지. 우리가 기억하는 박경리 선생은 이미 유쾌하게 나이 드시고 난 후의 모습이다. 얼마나 멋진가. 오른쪽 아래 사진은 그 사진 하나로서 파워가 뿜어나온다.)

*** 박경리 선생님이 뇌졸증으로 혼수상태에 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지난 4일에 입원하셨다네요. 다행히 25일 뉴스에는 의식이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올해 82세. '뿌리깊은 큰 산 박경리'의 힘을 차려주시기를... 완쾌를 기원합니다.

*** 의식이 돌아오셨다는 뉴스는 오보였네요. 27일 일요일에도 계속 의식불명이시랍니다. 걱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지고 있네요. '생명의 존엄'을 생각하게 됩니다.
 
*** 오늘 어린이날, 드디어 떠나셨습니다. 그의 생명력은 계속 그의 책을 통해 뿜어져 나오겠지요...

*** 0506 새벽에:
어젯밤 MBC 뉴스에서 박경리 선생님의 짧은 일대기를 보면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과 더불어 그랬던 것 싶습니다. 5월 4일 울 엄마 기일, 5월 5일 박경리 선생님.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연상될 듯. 연세도 비슷해서 한 살 차이세요.
 
뉴스 중에 제가 그렇게도 반했던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자태 사진이 나와서 어찌나 반갑던지. 서재에 있는 사진인데, 아마 40대 시절인 듯 합니다.  단아한 자태에 올곧은 풍모. 젊을 때는 '서희' 같기도 하고 '윤씨부인'일 듯도 싶고. 우리 남편은 박경리 선생님은 늙은 모습일수록 더 멋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힘'있게 나이 들어가면 오죽 좋을까요. 박경리 선생님의 힘은 '뿌리 깊은 힘'이라 오래가고 계속 자랐던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뿌리도 그렇게 깊어지기를.

아래 누리꾼의 '소풍'이라는 말씀이 너무 좋군요. 이생에 잠시 '소풍' 나오셨다는 말씀. 소풍을 끝내고 발 가볍게 집에 돌아가셨기를.  마지막 남긴 시의 마지막 구절이 '홀가분하다'인데,
'이제 버릴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라는 구절. 참 박경리 그래로의 시구입니다.  

***  박경리 영정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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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님의 영정으로 위의 오른쪽 아래 사진을 써서 아주 좋더군요.

이 사진이 가지는 이미지 파워는 굉장한 것 같아요. '단순'하면서, '성찰'적이고, '지혜'로우면서 '열정'적이고, 그윽하게 관찰하면서 내 눈을 깊이 들여다 보는 듯한 이미지...
사실은 전체 사진을 다봐야 하는데... 오른쪽 아래에 고추 보이시지요. 고추 따고 다듬는 모습이랍니다.
영정에서는 얼굴 중심으로만 보여주지요.


*** 박경리와 한나 아렌트
트랙백 기사를 보니 '박경리의 존엄'을 얘기하시는데, 바로 이 점에서 저는 박경리와 한나 아렌트를
'존엄'의 틀에서 두 위대한 여인으로 꼽는답니다. 두 여인 모두 고통의 역사를 살아오시면서 인간의 존엄을 각기 문학으로, 철학으로 세상과 소통해 내신 분들이지요. <토지>를 읽는 김에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도 읽어보세요.  
 
*** 박경리의 명언

"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토지>> 서문 중에서(1973년 6월 3일 밤)

위 말이 너무 좋아서, 제 책에서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 5월 9일 아침,
박경리 선생님 오늘 드디어 고향 통영의 미륵산 흙으로 돌아가십니다.
불행과 고통에서 길어올린 뜻과 의지를 후시대 사람들에게 남기셨으니
고이 잠드소서.
그리고 앞으로의 역사에서 생생하게 살아 계셔주소서.
 삼가 절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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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환경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근본 : 박경리

    Tracked from 오선지위의 딱정벌레 2008/05/05 20:28  삭제

    4월 25일 "박경리선생의 의식불명 소식을 듣다. 또 한세기가 흘러감을 느낀다. 다시 박경리선생이 바라본 청계천 복원을 읽어 본다. 선생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고 했는데 오늘 선생의 부음을 듣게 되었다. 생명운동에 있어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활을 해왔다. 사위인 김지하의 생명사상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작년(2007년) 6월 인터뷰에서 '환경'과 '생명'에 관하여 한 말씀은 과거와 현재의 시대상에 대한 정확한 지적이다. 환경과 생명 생각하는 대통령..

  2. Subject: 박경리의 화두 '존엄'과 대운하에 대하여.

    Tracked from 언어노동자 2008/05/06 07:30  삭제

    박경리선생이 타계하셨다. 1969년 부터 1994년까지 무려 26년이상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며 국어와 우리 문학의 자존심을 외롭게 지켜준 노(老) 작가를 우리는 이제 아쉽지만 안식으로 보내드려야 하는 순간인 것이다. 박경리의 문학이 탁월했던 이유는 그가 단 한번도 '사람'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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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e-zoomin 2008/04/29 02:24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원주 근교에서 지내고 계섰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고등학교를 원주에서 나와서 박경리 선생님에 대한 말씀을 종종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짓말처럼 쾌차하셔서 좋은 글 조금 더 오래오래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2. BlogIcon 김진애 2008/04/29 06:12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계속 의식불명 상태라고 하시네요. 저의 엄마가 4년전 바로 이맘 때 뇌졸증으로 사흘 동안 의식 없다 돌아가셨습니다. 의식을 못차리고 떠나시니까 어떻게나 가슴 아프던지요. 준비못한 이별이었답니다. 박경리 선생님, 꼭 의식차리시기 바랍니다. '거짓말처럼' 쾌차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e-주민님.

  3. BlogIcon 김진애 2008/05/05 16:1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의식불명으로 계시다가 오늘 어린이날 떠나셨다고 합니다. 꼭 울 엄마 돌아가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우리 어머니 딱 이맘 때, 5월 4일 돌아가셨었거든요. 성묘도 다녀왔는데... 오늘은 '죽음'이 '삶'을 생각하게 하는 날이군요. 고통 속에서 작품을 피어올리신 박경리 선생님, 애도합니다.

  4. BlogIcon 바실리카 2008/05/05 16:5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큰 별이 지샜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5. BlogIcon 로카르노 2008/05/05 17:02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위대한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은 영원할 것입니다..
    진심으로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6. 소해 2008/05/05 17:15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7. 김영남 2008/05/05 17:3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통영의 거목 대한민국의 거목 되시는 선생님!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우리의 큰 자랑이 되셨는데...가슴 뿌뜻한 분이셨는데...
    평안이 잠드소서.영원히 잊지 못 할 겁니다.

    • BlogIcon 김진애 2008/05/05 1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영에 가셔서 사시면 했었는데요. 원주라는 새로운 땅의 고향을 만드신 것도 좋지만, '통영, 그 숨막히게 아름다운 고향'에 사시는 모습을 뵙고 싶었는데요, 왜 안가셨을까? 어린 시절의 고통의 기억 때문일까, 궁금하곤 합니다. 바실리카, 로카르노, 소해, 김영남님, '위대한 여인'은 떠나셔도 위대함은 남겠지요. 토지-1권 다시 읽어야 겠습니다. 저, 거의 초판본 갖고 있거든요. 위아래로 쓰여진 책. 한 쪽 넘기기가 막 아까운 책.

  8. dream 2008/05/05 18:24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가 박경리 선생님을 다시는 뵙지 못한다는 것이 서글퍼지네요
    이 시대 의 존경받는 큰 스승 이셨습니다 토지 처음부터 다시 읽어 봐야 겠습니다.

  9. BlogIcon 머쉬룸M 2008/05/05 19:3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0. Korean 2008/05/05 20:5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어쩌면 나하고 그렇게 똑 같은 생각을 ㅋㅋㅋ...이름도 그렇고 정말 책에서 여자라는 점을 느끼기가 너무 힘들어요. 30년전 학생이었을때 박경리님이 남자인줄 알았답니다. ㅋ

  11. 김진예 2008/05/05 21:00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예전에 '토지'에 푸욱 빠져서 꿈도 사투리로 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그당시 컴을 배우면서는 ID도 'tojiya"(토지야~)로~~아~~님께서 가셨군요~~소풍을 끝내셨군요...훗날 다시 뵙지요~~~

  12. 이수연 2008/05/05 22:4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김약국의딸들인지김약국네딸들인지제목에 혼자서 고민했던중1읽으면서도 무슨내용인지이해하지못했던 그시절부터 책읽기엔힘들었던고3시절 2번을 연이어 봤던 토지 편히가셨기를 빕니다

  13. 김용귀 2008/05/05 23:44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슬픕니다 슬픈 한국의 역사를 잊지않토록 하셨습니다 존경하는 박경리님 편히 잠드소서

  14. BlogIcon 김진애 2008/05/06 04:40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Korean님, 저랑 같은 분이 있어서 반갑군요. 아마 많은 어린 독자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은데... 본명이 '박금이' 아니었던가요? 여성스러운 이름에서 필명을 '경리'로 바꾼 것이 너무 좋아요. 박경리 아닌 박경리는 상상할 수가 없어요.
    김진예님, '소풍'이라는 말 깊이 담겠습니다.
    이수연님, dream님, 우리 '토지' 다시 읽기 해보지요.
    김용귀님, 슬픔 속에서도 뿌리 깊게 살아가는 우리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셨지요. 감사합니다.

  15. 전효숙 2008/05/06 09:1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당신의 혼이 담긴 [토지]를 다시 펼쳐들었습니다.

  16. 도화영 2008/05/06 11:25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시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을 빛내주실 거라 믿습니다.
    사랑했습니다.

  17. 박지영 2008/05/06 20:42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자꾸 눈물이 납니다.
    한번도 직접 뵌적은 없지만, 당신의 글을 사랑했나봅니다.
    자꾸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납니다.

  18. 글쎄올시다... 2008/05/06 22:4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글쎄올시다....할말은 많지만...글쎄올시다....글쎄올시다...

  19. BlogIcon 김진애 2008/05/07 05:03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박경리 별세 소식에 대하여 세대에 따라 절실함이 다른 것 같습니다. <토지>를 책으로서가 아니라 드라마로 접한 세대도 많고, 세대의 역사 체험이 다른 것도 있겠지요. '단편'도 많이 쓰신 박경리 단편집도 다시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책 안 읽는 세대라서... 전효숙, 도화영, 박지영, 글쎄올시다님... 9일 발인이라고 합니다. 박경리 선생님을 각별히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친척 아이가 자폐증이 있다. ‘꽃 미소년’에 말이 없어 우리 가족에게 아주 인기 높은데 엄마 아빠는 고민이 많다. 그런데 나는 이 여섯 살 소년과 은근히 통한다. 마치 그 시절 나를 보는 것 같다. 자기 세계에 흠뻑 빠져 ‘금지된 장난’을 하는 듯하던 그 시절.

요즘 이 소년이 매혹된 것은 고래와 상어 등 바다 속 이야기란다. 설날에 만두를 빚다가 만두피 두 장으로 물고기를 만들어 비늘과 지느러미도 만들고 눈과 입과 콧구멍을 만들고 바람을 넣어 주니 이 소년의 빛나는 탄성, “우와!”

언젠가 이 소년은 자기 세계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 자기 세계에서 길어 올린 그 무엇으로 더 큰 세계와 통하리라. 그런 믿음으로 내가 쓰는 여섯 가지 자라기 방법들.

하나. 아, 궁금해! 묻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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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은 모든 자라기의 원동력이다. 질문은 호기심의 표현이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을 맘껏 하면 오죽 시원한가.

어릴 적 질문 꽤나 많은 나를 어른들은 질색을 했던 모양이다. “넌 참 이상하구나” 라는 어른들의 말에 질려서 나는 한동안 입을 꽁꽁 닫았다. 답을 못하겠으니까 나를 이상한 아이로 몰았던 거라는 건 나중에 커서야 깨달았다. 나를 포함, 모든 어른들은 반성할 일이다.

내가 책 세계로 도망갔던 것은 마음껏 질문하고 답을 들을 수 있어서였다. 열 살 무렵 세 권을 달달 외우도록 수십 번 읽었다. 『그리스로마신화』, 『플루타르크 영웅전』, 『공자일대기』. 글자 빽빽이 박힌 어른 책들이었다.

나는 요새 아이들이 왜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에 열광하는지 알겠다. 아이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복잡다단한 스토리를 기막히게 소화한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을 잇고 답을 찾을 수만 있다면.

둘. 아, 멋져! 나도 해 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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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쪼록 팬이 되어야 한다. 팬은 마니아로도 통한다. 팬이 되면 스타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싶어진다. 노래만 잘 부르는 가수 보다는 작곡도 하는 음악인이 좋고, 몸짱 배우보다는 연기짱 배우가 좋고, 이왕이면 상상력과 창조성 넘치는 복합적인 인물이 좋다.

나의 첫 스타는 괴도 루팽이었다. 『기암성』 추리소설을 초교 3년 시절 ‘내 돈’으로 혜화동 로터리 서점에서 샀던 것은 아주 행복한 추억이다. 루팽은 상상력 넘치는 도둑이었고 스타일도 멋졌고 사랑도 잘 했다. 과학적으로 암호 해독도 잘하고 문학적인가 하면 무기도 잘 다루고 투자도 잘하고 정의감도 있었다. 또 나는 우리나라 SF 만화 첫 세대를 개척한 『라이파이』(김산호 작) 마니아였다. 고구려 무인처럼 두건 질끈 동여맨 ‘라이파이’도 근사했지만 나는 악인으로 나오는 ‘녹(綠)의 여왕’에 매혹되었다. 으음, 여자도 아주 근사한 악인이 될 수 있구나! 멋지잖은가.

그렇다고 내가 커서 괴도나 악인이 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괴도 루팽과 녹의 여왕의 멋진 능력에 반했던 것은 아주 좋은 자극이었다. ‘나만의 스타’를 만들어보자.

셋. ‘잘’놀면 잘 큰다!

모르는 사이에 공부 되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나.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는 공부는 지겹고 기억도 잘 안 나지만 한 건지 아닌지 모르게 쌓이는 공부는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나의 영어 실력은 순전히 AF(K)N 라디오 덕분이다. 중고교 내내 끼고 살았다. 우리말 방송은 너무 잘 들리므로 방해가 되어서 생각해낸 방식인데, 어느 날 갑자기 라디오 드라마 내용이 귀에 들려서 깜짝 놀랐다. 다음 프로를 기다리는 내가 어떻게나 기특하던지.

MIT 유학 중 큰 딸은 두 살부터 여섯 살 까지 공립 유아원(Nursery School)에 다녔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얼마나 잘 놀던지. 그렇게 놀면서 영어는 물론, 글짓기와 만들기는 물론, 무엇보다도 친구들과 팀워크 하는 방식을 깨쳤다. 엄마인 내가 놀아 준 것보다 훨씬 더 유효했던 유아원 놀이공부, 주말이면 나는 각종 놀이를 실험해 보는 어린 딸의 실험 모르모트 노릇을 하곤 했다.(가장 기억나는 놀이는 낚시 놀이. 같이 목욕을 하면서 나는 고기, 딸은 낚시꾼. 입벌리고 낚시에 걸려주는 묘기를 발휘해야^^. 물 속에서 발가벗고 하는 놀이라 더욱 신나는 놀이.) 우리는 놀면서 무럭무럭 자란다.

넷. 아, 발표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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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만큼 긴장되는 것은 없다. ‘공적인 자리’에 서는 경험은 빨리 시작하고 많이 해보는 것이 최고다. 땀 뻘뻘 나고 얼굴 빨개지는 경험이 우리를 키운다.

나는 중 2 시절 이혜성 국어 선생님(나중에 대학 교수와 청소년상담원장을 역임하셨다)께 정말 감사드린다. 매 시간마다 3분 발표를 시키셨던 것이다. 한 학기가 지나자 모든 학생들에게 한차례씩 돌아갔다. 그 3분 발표 체험이 어떻게나 두고두고 남는지 모른다.

엄마아빠 앞에서 발표하자. 친구들 앞에서 스피치를 하자. 방학 계획서도 입 밖으로 발표하자. 생일 파티에서 멋진 감사 인사를 해 보자. ‘건배’ 말도 해 보자. 어른들께 절할 때 자기 색깔 나는 창조적인 인사말을 하자. 입 밖에 내면 진짜 자기 것이 된다. 사람들의 반응을 느끼면 무언가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은 사람과 기를 나눌 때 가장 살 맛 난다고 느낀다. 발표를 위한 긴장은 아주 요긴한 긴장이다.
(사진. 대학로 골목에서 만난 중학생들. 외국인과 만나서 했던 대화의 긴장, 그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

다섯, 홀로 설 거야! 독할 때는 독한 결심을!

열여섯 살 나의 결심. “1년 동안 소설 안 보고, TV 안 보고, 영화 안 보고 오직 공부만 하리라!” 그리고 독하게 지켰다. ‘홀로 서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해내리라는 결심이었다. ‘내가 벌어 내가 살래’는 그 시절 나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큰 딸이 독한 결심과 독한 실천을 한 것은 스물두 살이 되어서다. 나보다 여섯 살 늦었지만 그 결심을 지킨 것이 가상하다. ‘홀로 서기’의 싹이 보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은 진실이다. 작은 딸은 아직 한번도 독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은근히 걱정이다. 별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아서 일까? 어떻게 하면 독립해서 사는 그 어려움과 뿌듯함에 대해서 절실하게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

여섯, 나의 프로젝트는 뭘까?

그래서 작은 딸과는 ‘어떻게 벌어먹고 살 건지’ 사업 구상을 한다. 학교 성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구상이다. 내 경험상 성적 모범생은 별 재미없는 사람이 될 위험이 높다. 학교 공부 잘하면 선택의 폭도 줄어든다. 결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교수나 의사 밖에 못하잖아요?” 사람 사는 세계에는 훨씬 더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이 많다. 인류 발전에 기여할 정도로 탁월한 능력의 사람이 아니라면 학교 공부는 ‘정도껏’ 하는 게 오히려 인생살이에 이로울지도 모른다. 오히려 구체적인 ‘나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딸과 앉아서 프로젝트 구상을 한다. 딸이 스스로 자신의 프로젝트를 찾게 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지고 아이디어도 던진다. 어떤 사업이 좋을까? 지금 당장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그 프로젝트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까? 너의 인생을 스스로 헤쳐가려면 너만의 프로젝트가 필요하단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재미있다.
스스로 자라는 아이들도 날개 돋는 듯 할 것이다.

엄마 아빠는

-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을 키워줄 것,
- 팬과 마니아 되기를 축복해 줄 것,
- 모르는 새 실력 쌓이는 매일매일 놀이를 할 것,
- 자기 의견을 발표하는 ‘긴장의 그 순간’을 마련해 줄 것,
- 스스로 결단을 하도록 홀로 서기를 강조할 것,
- 어떻게 벌어먹고 살 것인지 스스로 프로젝트 구상을 하게 할 것.

이렇게만 하면 우리 아이들, 쑥쑥 잘 자라지 않을까?

사실, 아이들 스스로 쑥쑥 자라는 것 보면서, 우리 부모도 같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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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어른에게 더 절실한 어린이날

    Tracked from 多作以後 2008/05/05 03:20  삭제

    "그 천진난만함과 완전한 것에 이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아이들이 끊임없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무서운 것으로 되어 버릴까!" (故이오덕 선생)"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며 어버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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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fffffffff 2008/05/04 13:42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이렇게까지 반대하는데,
    이런거 다무시하고도 수입하면 그건 정말로
    민주주의 무시하고
    거의 '국민 무시수준' 아닐까요?
    광우병걸린고기1g으로도 사람이죽는데....,
    이건 정말안될이야기..................

  2. BlogIcon 김진애 2008/05/05 05:0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위의 트랙백 기사 '어른에게 더 절실한 어린이날'을 꼭 읽어보세요. 참 와닿네요. 저도 감동해서 방문해서 주인장 '승주나무'께 아래와 같이' 메모를 남겼답니다.
    "감동적인 글입니다. 정말 멋진 어린이날 되시겠군요. 트랙백 따라왔답니다. 하지만 우리도 아직 어린이의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첫경험의 떨림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아직 해보지 보한 경험은 여전히 많으므로. 어른들의 어린이 날, 멋진 상상입니다. 건승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