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셨다. 너무도 갑자기. 화사한 봄날, 손녀 결혼식 날이었다. 한복 준비에 목욕재계에 머리 손질에 하루 종일 너무 들뜨셨던 모양이다. 뇌졸중. 나도 예식장에 가다가 발길을 돌려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미 의식불명. 뇌수술을 받고 의식이 없는 채 나흘을 버티다 가셨다.
한 해 빠진 팔순. 남들은 '호상'이라 하겠지만 이별 연습을 전혀 못한 상태에서 이별을 한지라 가슴이 미어진다. “내가 아무리 몸이 약하더라도 니 아버지 묻고 일 년 있다 떠난다더라.” 수십 년 전 들었다는 점괘를 철썩 같이 믿던 엄마를 우리도 덩달아 믿어 줬었다. 그게 자연스러워 보였고 그렇게 소망했었기 때문에.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보통 엄마. 온갖 집안대소사에 일생을 바친 엄마.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친 세대답게 생활력 치열한 엄마. 열 아이를 낳아 세 아이를 가슴에 묻고 일곱 아이를 키운 엄마. 언제나 바지런하게 자신의 ‘유쾌한 프로젝트’를 만들며 살아온 엄마. 맏이가 아니면서도 집안 어른 역할을 하면서 “짐은 질 수 있는 사람한테 온단다.”는 말을 뇌던 엄마. 언제나 이 딸을 나보다 더 믿어 줬던 엄마.
하도 울어서 뇌가 터져 나갈 것 같다. 그나마 장례식이라는 형식 덕분에 아픔을 견딜 수 있는 게 아닐까.
장례식은 일가 모두가 만나는 자리다. 결혼식에는 빠지더라도 여간해서 장례식에는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일가가 모이면 어디서 사단이 나서 감정의 골이 터질지 모른다. 영화 <축제>에서 장례식에 뿔뿔이 흩어진 일가친척들이 모여 아귀다툼하며 싸우다가 결국 마지막 피날레에서 다 같이 환하게 웃으며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마감하던데, 그 짝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 장례식이다.
옛 사진을 보고 그렸단다.
항상 내 책상 옆에 있다.)
별로 싸울 일 없는 우리 집에도 역시 사단은 있었다. 말로만 들던 ‘종교 전쟁’. 장남 하나, 딸 여섯은 기독교, 가톨릭교, 불교, 무교 등 다양한데, 가톨릭교는 언제나처럼 중립을 지키고 불교식이냐, 기독교식이냐가 문제였다. 엄마는 평생 불자인데, 문제는 단 하나뿐인 아들과 며느리가 기독교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엄마는 그 시대 엄마답게 죽기 전에 기독교에 귀의하겠다는 말을 했었고 며느리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고집을 세운다. 아들은 난감한 처지에 빠졌고, 조금 있으면 친척, 외척까지 나서서 대대적인 종교 전쟁이 날 판이다.
“니 엄마 평생 절에 다녔잖니. 불교식이 자연스럽지. 그래도 니 오빠가 기독교식으로 하자면 그렇게 하도록 해.” 아버지의 말씀이라니. 나는 아들 눈치 보는 아버지가 안되어서 눈물을 쏟았고, 아들 내외 눈치 보느라 기독교에 귀의하겠노라고 말하던 엄마 심정이 생각나서 또 눈물을 쏟았다.
역시 엄마다. 엄마는 이 모든 논쟁에 지혜롭게 종지부를 찍었다. 엄마가 20여 년 전 준비했던 수의를 가져오니 거기에는 온몸을 쌀 수 있는 다라니경이 들어 있던 것이다.
결국은 절충식이 되었다. 장례 중에는 꽃 바치고 싶은 사람은 꽃 바치고, 절하고 싶은 사람은 절한다. 발인에는 스님과 목사님을 같이 모신다. 장례 중 제상은 올리지 않도록 한다. 사십구재는 엄마가 다니던 절에 모시도록 한다. 아, 이 모든 것을 타협하는데, 가족 일가 간의 신경전은 오죽하던지. 종교 분쟁의 실체를 피부로 느낄 만했다. 한 분 계신 목사 친척이 스님과 공동 주관할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떨떠름해졌는데, 결국 오빠의 친구 장로가 대신 기도를 올려 주었다.
그 와중에 있던 에피소드. “왜 남자를 찾으세요?”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상황을 알려 주려 나온 남자 의사가 여자들만 있자, “남자 가족은 없나요?” 묻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어찌나 화가 나던지, 아니 남자 아니면 가족도 아닌가, 가족회의 후 알려 달라고 하면 되잖아? 그 남자 의사도 내 반응에 멈칫했다. 울 엄마가 보셨으면 “그래, 맞다 맞어.” 할 일이었다.
딸 하나는 장례 중 제상을 안올린다고 내내 툴툴댔는데, 드디어 울면서 하는 말이라니, “엄마가 사흘 동안 쫄쫄 굶었단 말이야.” 나는 그 와중에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통 제례에 익숙한 동서와 고모들도 “니 엄마가 얼마나 조상을 잘 모셨는데...” 하며 영 못마땅해 하신다. 묘소에 가시며 “내가 여기 물통 하나 준비했다. 니 엄마가 지금 얼마나 목이 타겠니?”
아, 제사란 참 중요한 거구나!
***
엄마의 입관. 온몸을 씻기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드러내니 뇌수술을 하느라 삭발한 머리가 드러났다. 평소 그렇게 수술을 무서워했던 엄마의 머리에 난 수술 자리에 모두 통곡을 한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삭발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평안해졌다. “엄마가 드디어 출가를 하는구려. 보살이 되는구려. 열반에 드는구려. 그 모든 고통을 뒤로하고...” 엄마가 이제야 평안해진 것 같았다.
절에 모셨다. 엄마 앞에 잘 차려진 제상, 스님의 염불, 엄마의 웃는 얼굴, 엄마는 이제야 자연스러워 보인다. 가장 엄마다워 보인다. “항상 혼자 오시더군요.” 스님의 말씀에 눈물이 솟았다. 왜 나는 엄마와 함께 절에 가 주지 못했을까? 엄마가 가족을 위해 절을 올릴 때 왜 나는 그 옆에 있어 주질 못했을까?
“엄마만 빠진 잔치구나. 엄마가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내 말에 온 가족이 고개를 끄덕인다.
장례는 잔치다.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평생의 업보를 돌아보는, 나도 언젠가 같이 할, 사랑하는 사람들이 안녕을 하는, 평생의 수고를 도닥여 주는 잔치. 내가 기독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은 “수고하라”다. 엄마는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평생 수고하셨다. 그 수고에 고마워하는 기념 잔치.
“참 좋은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단순한 한마디에 그동안 무덤덤했던 아버지에게 서운했던 모든 감정이 단숨에 털어졌다. “인마, 나한테도 엄마야!” 계속 빈소를 지키는 머리 허연 오빠 친구에게 가서 쉬라고 하니까 하는 말이었다. 아들의 여섯 친구를 당신 아들처럼 만들었던 엄마. “딸들보다 아들 친구들한테 더 잘해 줬나 봐.” 딸들의 흉은 사실 그대로인가 보다.
비문은 결국 아들의 친구가 쓰기로 하여 나는 씁쓸해했었다. 대신 나는 오빠 친구에게 몇 년 전에 썼던 “엄마의 배는 크디크다”라는, 엄마에게 쓴 연애편지 같은 긴 글을 주었다. 나중에 비문을 보고 나도 흡족했다. ‘무거운 짐을 가볍게 지셨다’는 그 비문의 한 구절이 정말 엄마다웠다.
엄마 떠나는 떠들썩한 잔치 이후, 이젠 엄마의 묘소 앞에 모일 것이다. 일가친척 중 유일하게 무덤이라는 집을 가지게 된 엄마. “니네 엄마는 복도 참 많구나.” 하는 친척들의 말답게, 항상 모이기 좋아했고, 거둬 먹이기 좋아했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그 자체가 즐거웠던 엄마는 떠난 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물론 종교 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제례 형식에 대해서 온갖 분란도 있겠지만, 그것도 살아가는 과정의 한 부분이다. 엄마, 걱정 마세요. 엄마 굶게 하지 않을게요. 아들딸 가리지 않고 돌아가며 제사를 지낼게요.
엄마에게 이별 편지를 쓰는 지금, 엄마가 몹시 그립다.
박경리 선생님이 어린이 날 별세하셨지요. 우리 엄마는 5월 4일에 돌아가셨답니다. 이제 5월의 어린이날에서 어버이날에 거쳐 두 분을 같이 기억할 것 같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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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잔치'라는 표현이 눈물과 슬픔만 있을 것 같은 죽음을 새롭게 보게 하네요. 처음 글 읽을 때는 이번에 돌아가셨다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지난 '잔치' 이야기군요.^^;
가정의 달, 미국에 있다는 이유로 그냥 전화로만 때우는 데 이번에도 저는 '엄마'한테 그냥 전화로 때울 수 밖에 없겠네요.
엄마의 장례에서 또 많은 걸 배웟지요... 죽음이 있어 삶이 뜻있는 것 같아요. 오늘 박경리 선생님 흙으로 돌아가시지요. 통영 미륵산에 가신답니다. 엄마와 박경리 선생님 같이 기억할 것 같아요. 저도 엄마 생전에 '전화로만' 한 적이 많답니다. 그래도 엄마는 좋아하세요.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가있는 딸에게서 오늘 아침 전화가 왔습니다. 거기는 오늘이 어버이날이니까. 블로그에 들어와 '엄마만 빠진 엄마의 장례 잔치'를 읽고 할머니 생각에 펑펑 울다가 잠을 설쳤다고 하네요...
'미국 쇠고기' 얘기도 한참 했지요. 거기서도 학생들 사이에 얘기 많이 된다고 하네요. 걱정들이 많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