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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8/05/07 엄마만 빠진 엄마의 장례 잔치 by 김진애 (3)
  2. 2008/05/05 박경리, 나의 '위대한 女人'은 떠나셨습니다 by 김진애 (20)
  3. 2008/04/24 유쾌한 척 나이 드는 7가지 전략 by 김진애 (9)
  4. 2008/02/24 문학 상상력∙공간 상상력을 위해서 by 김진애 (2)
  5. 2008/02/11 어릴 적 달달 외우도록 읽은 책 3권 by 김진애 (2)
한국남자들의 행복 7계명

한국남자들은 불쌍하다. 구조적으로 불행하다. 헤어나기 어렵고 벗어나기 힘든 사회의 틀에 얽매여 있다는 이유에서 확실히 그러하다. 세계 어느 곳의 남자들도 ‘남성’이라는 구조적.....

용두사미 대운하, 더 괴롭다

대운하는 계속 우리를 괴롭힐 모양이다. 아무리 용두사미가 되어도. 총선 이후 ‘대운하 포기’ 뉴스가 나오고 ‘청와대 대운하 무기한 보류’ 뉴스가 나오더니, ‘포기한 적 없다’는.....

‘머피의 법칙’에 빠진 MB와 광우병

MB는 ‘머피의 법칙’에 빠졌다. “왜 이렇게 모든 일들이 꼬일까?” 하는 일마다 안 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샐리의 법칙’으로 당선되었다면, 이제 이명박 정부는 ‘머피.....

‘20대 피’의 조건 단 한가지

이 시대의 20대란 부럽긴 한없이 부러워도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세대다. 차라리 20대의 피가 흐르며 사는 삶이 훨씬 좋을지 모른다. ‘20대-30대-40대-50대-60.....


엄마가 돌아가셨다. 너무도 갑자기. 화사한 봄날, 손녀 결혼식 날이었다. 한복 준비에 목욕재계에 머리 손질에 하루 종일 너무 들뜨셨던 모양이다. 뇌졸중. 나도 예식장에 가다가 발길을 돌려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미 의식불명. 뇌수술을 받고 의식이 없는 채 나흘을 버티다 가셨다.

한 해 빠진 팔순. 남들은 '호상'이라 하겠지만 이별 연습을 전혀 못한 상태에서 이별을 한지라 가슴이 미어진다. “내가 아무리 몸이 약하더라도 니 아버지 묻고 일 년 있다 떠난다더라.” 수십 년 전 들었다는 점괘를 철썩 같이 믿던 엄마를 우리도 덩달아 믿어 줬었다. 그게 자연스러워 보였고 그렇게 소망했었기 때문에.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보통 엄마. 온갖 집안대소사에 일생을 바친 엄마.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친 세대답게 생활력 치열한 엄마. 열 아이를 낳아 세 아이를 가슴에 묻고 일곱 아이를 키운 엄마. 언제나 바지런하게 자신의 ‘유쾌한 프로젝트’를 만들며 살아온 엄마. 맏이가 아니면서도 집안 어른 역할을 하면서 “짐은 질 수 있는 사람한테 온단다.”는 말을 뇌던 엄마. 언제나 이 딸을 나보다 더 믿어 줬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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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울어서 뇌가 터져 나갈 것 같다. 그나마 장례식이라는 형식 덕분에 아픔을 견딜 수 있는 게 아닐까.

장례식은 일가 모두가 만나는 자리다. 결혼식에는 빠지더라도 여간해서 장례식에는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일가가 모이면 어디서 사단이 나서 감정의 골이 터질지 모른다. 영화 <축제>에서 장례식에 뿔뿔이 흩어진 일가친척들이 모여 아귀다툼하며 싸우다가 결국 마지막 피날레에서 다 같이 환하게 웃으며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마감하던데, 그 짝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 장례식이다.

(우리 언니가 그린 엄마의 젊은 초상. 돌아가신 후 1주기에 그려서 보내줬다.
옛 사진을 보고 그렸단다.
항상 내 책상 옆에 있다.)



별로 싸울 일 없는 우리 집에도 역시 사단은 있었다. 말로만 들던 ‘종교 전쟁’. 장남 하나, 딸 여섯은 기독교, 가톨릭교, 불교, 무교 등 다양한데, 가톨릭교는 언제나처럼 중립을 지키고 불교식이냐, 기독교식이냐가 문제였다. 엄마는 평생 불자인데, 문제는 단 하나뿐인 아들과 며느리가 기독교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엄마는 그 시대 엄마답게 죽기 전에 기독교에 귀의하겠다는 말을 했었고 며느리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고집을 세운다. 아들은 난감한 처지에 빠졌고, 조금 있으면 친척, 외척까지 나서서 대대적인 종교 전쟁이 날 판이다.

“니 엄마 평생 절에 다녔잖니. 불교식이 자연스럽지. 그래도 니 오빠가 기독교식으로 하자면 그렇게 하도록 해.” 아버지의 말씀이라니. 나는 아들 눈치 보는 아버지가 안되어서 눈물을 쏟았고, 아들 내외 눈치 보느라 기독교에 귀의하겠노라고 말하던 엄마 심정이 생각나서 또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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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엄마다. 엄마는 이 모든 논쟁에 지혜롭게 종지부를 찍었다. 엄마가 20여 년 전 준비했던 수의를 가져오니 거기에는 온몸을 쌀 수 있는 다라니경이 들어 있던 것이다.

결국은 절충식이 되었다. 장례 중에는 꽃 바치고 싶은 사람은 꽃 바치고, 절하고 싶은 사람은 절한다. 발인에는 스님과 목사님을 같이 모신다. 장례 중 제상은 올리지 않도록 한다. 사십구재는 엄마가 다니던 절에 모시도록 한다. 아, 이 모든 것을 타협하는데, 가족 일가 간의 신경전은 오죽하던지. 종교 분쟁의 실체를 피부로 느낄 만했다. 한 분 계신 목사 친척이 스님과 공동 주관할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떨떠름해졌는데, 결국 오빠의 친구 장로가 대신 기도를 올려 주었다.

그 와중에 있던 에피소드. “왜 남자를 찾으세요?”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상황을 알려 주려 나온 남자 의사가 여자들만 있자, “남자 가족은 없나요?” 묻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어찌나 화가 나던지, 아니 남자 아니면 가족도 아닌가, 가족회의 후 알려 달라고 하면 되잖아? 그 남자 의사도 내 반응에 멈칫했다. 울 엄마가 보셨으면 “그래, 맞다 맞어.” 할 일이었다.

딸 하나는 장례 중 제상을 안올린다고 내내 툴툴댔는데, 드디어 울면서 하는 말이라니,엄마가 사흘 동안 쫄쫄 굶었단 말이야.” 나는 그 와중에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통 제례에 익숙한 동서와 고모들도 “니 엄마가 얼마나 조상을 잘 모셨는데...” 하며 영 못마땅해 하신다. 묘소에 가시며 “내가 여기 물통 하나 준비했다. 니 엄마가 지금 얼마나 목이 타겠니?”
아, 제사란 참 중요한 거구나!

***

엄마의 입관. 온몸을 씻기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드러내니 뇌수술을 하느라 삭발한 머리가 드러났다. 평소 그렇게 수술을 무서워했던 엄마의 머리에 난 수술 자리에 모두 통곡을 한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삭발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평안해졌다. “엄마가 드디어 출가를 하는구려. 보살이 되는구려. 열반에 드는구려. 그 모든 고통을 뒤로하고...” 엄마가 이제야 평안해진 것 같았다.

절에 모셨다. 엄마 앞에 잘 차려진 제상, 스님의 염불, 엄마의 웃는 얼굴, 엄마는 이제야 자연스러워 보인다. 가장 엄마다워 보인다. “항상 혼자 오시더군요.” 스님의 말씀에 눈물이 솟았다. 왜 나는 엄마와 함께 절에 가 주지 못했을까? 엄마가 가족을 위해 절을 올릴 때 왜 나는 그 옆에 있어 주질 못했을까?

“엄마만 빠진 잔치구나. 엄마가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내 말에 온 가족이 고개를 끄덕인다.

장례는 잔치다.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평생의 업보를 돌아보는, 나도 언젠가 같이 할, 사랑하는 사람들이 안녕을 하는, 평생의 수고를 도닥여 주는 잔치. 내가 기독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은 “수고하라”다. 엄마는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평생 수고하셨다. 그 수고에 고마워하는 기념 잔치.

“참 좋은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단순한 한마디에 그동안 무덤덤했던 아버지에게 서운했던 모든 감정이 단숨에 털어졌다. “인마, 나한테도 엄마야!” 계속 빈소를 지키는 머리 허연 오빠 친구에게 가서 쉬라고 하니까 하는 말이었다. 아들의 여섯 친구를 당신 아들처럼 만들었던 엄마. “딸들보다 아들 친구들한테 더 잘해 줬나 봐.” 딸들의 흉은 사실 그대로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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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은 결국 아들의 친구가 쓰기로 하여 나는 씁쓸해했었다. 대신 나는 오빠 친구에게 몇 년 전에 썼던 “엄마의 배는 크디크다”라는, 엄마에게 쓴 연애편지 같은 긴 글을 주었다. 나중에 비문을 보고 나도 흡족했다. ‘무거운 짐을 가볍게 지셨다’는 그 비문의 한 구절이 정말 엄마다웠다.






엄마 떠나는 떠들썩한 잔치 이후, 이젠 엄마의 묘소 앞에 모일 것이다. 일가친척 중 유일하게 무덤이라는 집을 가지게 된 엄마. “니네 엄마는 복도 참 많구나.” 하는 친척들의 말답게, 항상 모이기 좋아했고, 거둬 먹이기 좋아했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그 자체가 즐거웠던 엄마는 떠난 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물론 종교 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제례 형식에 대해서 온갖 분란도 있겠지만, 그것도 살아가는 과정의 한 부분이다. 엄마, 걱정 마세요. 엄마 굶게 하지 않을게요. 아들딸 가리지 않고 돌아가며 제사를 지낼게요.

엄마에게 이별 편지를 쓰는 지금, 엄마가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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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버이날 생각:

'울 엄마', 4년 전 5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린이날 하루 전. 가정의 달이라서 더 그립답니다.

왜 ‘엄마’는 이렇게 언제나 ‘엄마’인가요? ‘어머니’ 보다 언제나 ‘엄마’지요. 홀로 남으신 울 아버지, 넷째 딸과 함께 사시는데, 최근 부쩍 약해지셨습니다.

부모님 살아생전 같이 시간을 보내는게 가장 좋은 효도지요. 각별한 어버이날 보내세요...

(엄마만 빠진 엄마의 장례 잔치.
하지만, 엄마는 거기 계셨다.
지금도 엄마는 여기 계신다.)

  박경리 선생님이 어린이 날 별세하셨지요. 우리 엄마는 5월 4일에 돌아가셨답니다. 이제 5월의 어린이날에서 어버이날에 거쳐 두 분을 같이 기억할 것 같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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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CeeKay 2008/05/08 01:4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장례 잔치'라는 표현이 눈물과 슬픔만 있을 것 같은 죽음을 새롭게 보게 하네요. 처음 글 읽을 때는 이번에 돌아가셨다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지난 '잔치' 이야기군요.^^;
    가정의 달, 미국에 있다는 이유로 그냥 전화로만 때우는 데 이번에도 저는 '엄마'한테 그냥 전화로 때울 수 밖에 없겠네요.

  2. BlogIcon 김진애 2008/05/09 06:2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엄마의 장례에서 또 많은 걸 배웟지요... 죽음이 있어 삶이 뜻있는 것 같아요. 오늘 박경리 선생님 흙으로 돌아가시지요. 통영 미륵산에 가신답니다. 엄마와 박경리 선생님 같이 기억할 것 같아요. 저도 엄마 생전에 '전화로만' 한 적이 많답니다. 그래도 엄마는 좋아하세요.

  3. BlogIcon 김진애 2008/05/09 14:15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가있는 딸에게서 오늘 아침 전화가 왔습니다. 거기는 오늘이 어버이날이니까. 블로그에 들어와 '엄마만 빠진 엄마의 장례 잔치'를 읽고 할머니 생각에 펑펑 울다가 잠을 설쳤다고 하네요...

    '미국 쇠고기' 얘기도 한참 했지요. 거기서도 학생들 사이에 얘기 많이 된다고 하네요. 걱정들이 많더군요.

박경리 선생님, 결국 떠나셨군요. 어린이날 가시다니, 참 박경리 선생님 답습니다.

박경리 선생은 어릴 적부터 저의 위대한 여인이었지요.
처음에 남성으로 알았던 박경리, 나중에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아주 기뻤했답니다.
여인(女人)을 여성인간(女性人間)의 줄임말로 이해되는 거인 박경리,
저는‘주름 많은 치마폭을 두른 큰 산, 박경리’
 ‘뿌리인간 박경리’라 표현하곤 한답니다.

제가 썼던 박경리 흠모의 글들을 모아봅니다.
 한번도 못뵈었지만 항상 곁에 있는 듯, 떠올리면 든든한,
같은 시공간에 계시다는 것이 그저 좋던 박경리 선생님,
가셔도 여전히 계시겠지요. 그 생명력으로 우리를 다시 생생하게 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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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무대인 평사리를 내려다 보는 최참판 댁 사랑채 마루에서.

기실, 평사리와 최참판댁은 모두 박경리 선생님 머리의 상상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세요?

저도 실제의 무대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지금 있는 곳은 재현한 평사리 마을이랍니다. 그런데도 가보면 정말 평사리 같아요.

섬진강변의 풍요로운 평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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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에게 다가온 첫 위대한 여인은 ‘박경리’ 선생이었다. 나는 첫 책으로「시장과 전장」을 보았는데 그 후 「김약국의 딸들」「가을의 여인」을 찾아보면서 참 기분이 괜찮아졌다.

우선 그 긴장감이 좋았다. 내 어렸을 시절 문학으로 많이 읽힌 것은 소위 고전이었고 근대문학이 많았는데, 서정성이 강한 근대문학을 권장하는 분위기여서 솔직히 그리 역동감이 없던 기억이다. 그런 나른함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 1960년대의 치열하고 고민 가득하고 딜레마를 제기하던 전후문학들이다. 예컨대 최인훈의「광장」같은 소설은 사실 당시 나이로서 이해하기 어려웠어도 여전히 그 치열한 박동감을 즐겼던 기억이다. 숱하게 많은 책들을 접했던 이 시절에 박경리 선생을 발견했을 때의 행복감이란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게다가 처음에 나는 박경리 선생을 남자로 알았었다.
여자 작가가 귀한 시절이었고 요새처럼 작가들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신문 광고에 등장하는 시대도 아니었으니 나는 당연히 남자로 생각했었다.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나는 남자로 생각했다. 함자 석자마저도 ‘남자스러운’ 데다가, 책의 내용 역시 전혀 여자가 쓴 것 같지 않았으니, 어린 나의 고정관념이 작용했던 셈이다. 나중에 언니 오빠들의 대화를 듣고 여자임을 알고는 너무도 신기하게 생각되어 다시 한번 책을 읽던 기억도 난다. 여자가 쓰는 글에서 여자를 알아낼 수 있는 단서를 찾아보려는 어린 마음에서 였다. 나는 당시에 전혀 알아 낼 능력이 없었고, 사실은 지금도 잘 모른다.

글을 보면 분명 여자가 쓴 글이라는 냄새가 물씬한 글이 있고, 분명 남자가 쓴 글이라는 냄새가 물씬한 글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렇게 두드러지는 글이란 어차피 별로 재미없는 글 아닐까? 진짜 괜찮은 글이라면 여자, 남자를 그 글에서 알아낸다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분명 위대함이란 여자, 남자의 성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성을 초월하는 그 어떤, 사람됨의 위대함이라는 것이 있는 것 아닐까?”

               『여자, 우리는 쿨하다』 책 중, “어린 시절, 나의 위대한 여인” 중에서
              (김진애, 한길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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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에 대한 어린 시절 나의 발견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었는가는 이미 앞에서 얘기했다. 그러다, 대학 시절 드디어「토지」를 만났을 때의 내 감격은 참으로 컸다. 지난 역사가 비로소 나에게도 살아있는 의미로 다가왔다고나 할까? 아마도「토지」는 다른 어떤 문학보다도 ‘역사적 의미’와 ‘역사의 개인 의미화’를 교차시킨 문학으로서 언제나 생생한 의식을 일깨우는 작품으로 후대에도 기록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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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공부하던 나에게 특별한 의미도 있었다. 나는「토지」를 보며 우리 강산, 우리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고 과언이 아니다. 하동(河東), 화개장터(花開), 평사리, 어찌 이름도 그리 예쁜가. 그 구비구비 섬진강과 그 비옥한 옥토들, 그 대문 높은 집, 그 담장 펼쳐진 집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게다가 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삶의 이야기는 얼마나 입체적이든지. 나는 우리 전통 집의 심성에 대해 그 무엇을 알 것 같았다.

제가 우리의 한국 옛 집, 마을, 땅의 아름다움과 뜻에 대해 눈뜨게 만든 책이거든요. 사진이나 답사나 건축 책이나 사진 책이나 영화보다 더 절절하게 그 ‘관계’들을 느끼게 되었던 소설입니다. 아름다움도 있고 처연함도 있고 안타까움도 있고…….

윤씨 부인의 기품이 배어 나오는 모습에서 ‘안채의 품위’를 알았고, 아름다운 별당 아씨의 모습을 그리는 남자의 모습에서 ‘담의 의미’도 알았고, 자의식을 떨치지 못하는 아들의 처절한 자기 정체성 고민을 보여주는 ‘사랑채의 외로움’, 무당의 딸과의 사랑이 펼쳐지는 사당, 절도와 미래 구상과 포용이 펼쳐지는 절, 그 묘향산의 진달래 꽃, 섬진강의 구비구비 아름다움 등 ……. 참 박경리 선생님의 힘있으면서도 안타깝고 절절하게 그리시는 필력에 가슴을 울리며, 비로소 우리 건축, 우리 강산,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느꼈던 그런 문학이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건축과는 그렇게도 달라요…….

지금도 박경리 선생을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뵈면 든든하기 짝이 없다. 그냥 좋고,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살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 여전히 가장 좋은 모습은 땅을 일구는 모습이다. 든든한 가이아의 모습을 느낀다. 홀로 글을 쓰는 외로움을 찾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고집도 좋고, 땅을 일구며 오히려 글을 쓸 에너지를 찾는다는 모습도 너무 좋다. 정말 용기 있게 보인다. 그의 혼이 그대로 느껴진다.     ....................

이들 위대한 여인들을 나는 나의 혼의 친구라 일컫는다.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그저 팬일 뿐이다. 한번 사람을 발견하면 나는 그냥 팬이 된다. 다만, 조용한 팬이다. 그들의 작업, 그들의 행적을 찾아보고 밟아보곤 한다. 그들 얘기가 여기 저기에서 나오면 반가워하고 뿌듯해 하는 정도의 조용한 팬이다.”

        『여자, 우리는 쿨하다』 책, “성찰기, 나의 위대한 여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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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인터뷰 중에서 “다시 태어나면 건축가를 하고싶다”는 대목이 있다. 분명, 박경리는 ‘자연 파괴’라는 건축가의 운명적 속성을 뛰어넘는 건축가가 될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생에서 박경리는 글로 건축을 한 것 아닐까? 나는『토지』에서 우리 한옥과 마을의 생생한 아름다움과 뜻을 언어를 통해 먼저 깨우쳤다. 나중에 소설 속의 공간이 온통 박경리의 상상 공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 속아버린 것에 아주 기분 좋아졌던 것은 물론이다. 최근 지어졌다는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 댁’이 과연 소설 속의 공간 상상력만큼 실제로 살아났을까?                  ..........

박경리는 심플하다. ‘원초적’이라는 말이 더욱 맞을 것이다. 말이 별로 필요 없다. 눌변은 아니지만 부끄럼을 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공적인 자리에 나서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의 메시지는 ‘수사’가 필요 없다. 생명, 염치심, 수고함의 가치, 보잘 것 없음에 대한 감사함.   ......

박경리가『토지』의 최치수를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한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아하!” 했었다. 자신의 태생의 비밀을 막연히 짐작하면서도 감히 입에 내지도 못하고 배신의 배신을 거듭 겪으면서도 꼿꼿이 자신을 지키는 것. 박경리의 깊은 콤플렉스, 그리고도 버텨나는 자존심은 뿌리 인간을 지켜내는 힘이 아닐까?”

『남녀열전』책, “뿌리인간 박경리 vs. 날개인간 이어령” 중에서

 (김진애, 샘터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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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만나보고 싶은 인물은 작가 박경리다. 별로 말은 필요 없을 듯싶다. 꼭 같이 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나란히 밭을 매는 일이다. 아무 말 없이 시골 아낙네처럼 머리에 수건 쓰고 같이 땅을 만지면 그 자체만으로도 무언가 통할 듯싶다. 큰 산 같은 박경리, 그 큰 산은 마치 우리옷의 치마처럼 주름이 철렁대고 주름 잡힌 치마처럼 깊은 주름을 안고 있는 큰 산 같은 박경리, 그 주름 사이사이에 숨은 이야기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듣고, 그를 만나서는 그저 감이 통했으면 좋겠다.”

              『남녀열전』책,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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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 박경리 선생의 아름다운 자태 사진을 찾다 못해 이 사진첩을 넣는다. 젊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어찌나 근사하신지. 우리가 기억하는 박경리 선생은 이미 유쾌하게 나이 드시고 난 후의 모습이다. 얼마나 멋진가. 오른쪽 아래 사진은 그 사진 하나로서 파워가 뿜어나온다.)

*** 박경리 선생님이 뇌졸증으로 혼수상태에 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지난 4일에 입원하셨다네요. 다행히 25일 뉴스에는 의식이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올해 82세. '뿌리깊은 큰 산 박경리'의 힘을 차려주시기를... 완쾌를 기원합니다.

*** 의식이 돌아오셨다는 뉴스는 오보였네요. 27일 일요일에도 계속 의식불명이시랍니다. 걱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지고 있네요. '생명의 존엄'을 생각하게 됩니다.
 
*** 오늘 어린이날, 드디어 떠나셨습니다. 그의 생명력은 계속 그의 책을 통해 뿜어져 나오겠지요...

*** 0506 새벽에:
어젯밤 MBC 뉴스에서 박경리 선생님의 짧은 일대기를 보면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과 더불어 그랬던 것 싶습니다. 5월 4일 울 엄마 기일, 5월 5일 박경리 선생님.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연상될 듯. 연세도 비슷해서 한 살 차이세요.
 
뉴스 중에 제가 그렇게도 반했던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자태 사진이 나와서 어찌나 반갑던지. 서재에 있는 사진인데, 아마 40대 시절인 듯 합니다.  단아한 자태에 올곧은 풍모. 젊을 때는 '서희' 같기도 하고 '윤씨부인'일 듯도 싶고. 우리 남편은 박경리 선생님은 늙은 모습일수록 더 멋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힘'있게 나이 들어가면 오죽 좋을까요. 박경리 선생님의 힘은 '뿌리 깊은 힘'이라 오래가고 계속 자랐던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뿌리도 그렇게 깊어지기를.

아래 누리꾼의 '소풍'이라는 말씀이 너무 좋군요. 이생에 잠시 '소풍' 나오셨다는 말씀. 소풍을 끝내고 발 가볍게 집에 돌아가셨기를.  마지막 남긴 시의 마지막 구절이 '홀가분하다'인데,
'이제 버릴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라는 구절. 참 박경리 그래로의 시구입니다.  

***  박경리 영정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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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님의 영정으로 위의 오른쪽 아래 사진을 써서 아주 좋더군요.

이 사진이 가지는 이미지 파워는 굉장한 것 같아요. '단순'하면서, '성찰'적이고, '지혜'로우면서 '열정'적이고, 그윽하게 관찰하면서 내 눈을 깊이 들여다 보는 듯한 이미지...
사실은 전체 사진을 다봐야 하는데... 오른쪽 아래에 고추 보이시지요. 고추 따고 다듬는 모습이랍니다.
영정에서는 얼굴 중심으로만 보여주지요.


*** 박경리와 한나 아렌트
트랙백 기사를 보니 '박경리의 존엄'을 얘기하시는데, 바로 이 점에서 저는 박경리와 한나 아렌트를
'존엄'의 틀에서 두 위대한 여인으로 꼽는답니다. 두 여인 모두 고통의 역사를 살아오시면서 인간의 존엄을 각기 문학으로, 철학으로 세상과 소통해 내신 분들이지요. <토지>를 읽는 김에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도 읽어보세요.  
 
*** 박경리의 명언

"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토지>> 서문 중에서(1973년 6월 3일 밤)

위 말이 너무 좋아서, 제 책에서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 5월 9일 아침,
박경리 선생님 오늘 드디어 고향 통영의 미륵산 흙으로 돌아가십니다.
불행과 고통에서 길어올린 뜻과 의지를 후시대 사람들에게 남기셨으니
고이 잠드소서.
그리고 앞으로의 역사에서 생생하게 살아 계셔주소서.
 삼가 절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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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환경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근본 : 박경리

    Tracked from 오선지위의 딱정벌레 2008/05/05 20:28  삭제

    4월 25일 "박경리선생의 의식불명 소식을 듣다. 또 한세기가 흘러감을 느낀다. 다시 박경리선생이 바라본 청계천 복원을 읽어 본다. 선생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고 했는데 오늘 선생의 부음을 듣게 되었다. 생명운동에 있어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활을 해왔다. 사위인 김지하의 생명사상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작년(2007년) 6월 인터뷰에서 '환경'과 '생명'에 관하여 한 말씀은 과거와 현재의 시대상에 대한 정확한 지적이다. 환경과 생명 생각하는 대통령..

  2. Subject: 박경리의 화두 '존엄'과 대운하에 대하여.

    Tracked from 언어노동자 2008/05/06 07:30  삭제

    박경리선생이 타계하셨다. 1969년 부터 1994년까지 무려 26년이상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며 국어와 우리 문학의 자존심을 외롭게 지켜준 노(老) 작가를 우리는 이제 아쉽지만 안식으로 보내드려야 하는 순간인 것이다. 박경리의 문학이 탁월했던 이유는 그가 단 한번도 '사람'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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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e-zoomin 2008/04/29 02:24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원주 근교에서 지내고 계섰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고등학교를 원주에서 나와서 박경리 선생님에 대한 말씀을 종종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짓말처럼 쾌차하셔서 좋은 글 조금 더 오래오래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2. BlogIcon 김진애 2008/04/29 06:12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계속 의식불명 상태라고 하시네요. 저의 엄마가 4년전 바로 이맘 때 뇌졸증으로 사흘 동안 의식 없다 돌아가셨습니다. 의식을 못차리고 떠나시니까 어떻게나 가슴 아프던지요. 준비못한 이별이었답니다. 박경리 선생님, 꼭 의식차리시기 바랍니다. '거짓말처럼' 쾌차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e-주민님.

  3. BlogIcon 김진애 2008/05/05 16:1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의식불명으로 계시다가 오늘 어린이날 떠나셨다고 합니다. 꼭 울 엄마 돌아가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우리 어머니 딱 이맘 때, 5월 4일 돌아가셨었거든요. 성묘도 다녀왔는데... 오늘은 '죽음'이 '삶'을 생각하게 하는 날이군요. 고통 속에서 작품을 피어올리신 박경리 선생님, 애도합니다.

  4. BlogIcon 바실리카 2008/05/05 16:5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큰 별이 지샜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5. BlogIcon 로카르노 2008/05/05 17:02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위대한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은 영원할 것입니다..
    진심으로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6. 소해 2008/05/05 17:15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7. 김영남 2008/05/05 17:3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통영의 거목 대한민국의 거목 되시는 선생님!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우리의 큰 자랑이 되셨는데...가슴 뿌뜻한 분이셨는데...
    평안이 잠드소서.영원히 잊지 못 할 겁니다.

    • BlogIcon 김진애 2008/05/05 1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영에 가셔서 사시면 했었는데요. 원주라는 새로운 땅의 고향을 만드신 것도 좋지만, '통영, 그 숨막히게 아름다운 고향'에 사시는 모습을 뵙고 싶었는데요, 왜 안가셨을까? 어린 시절의 고통의 기억 때문일까, 궁금하곤 합니다. 바실리카, 로카르노, 소해, 김영남님, '위대한 여인'은 떠나셔도 위대함은 남겠지요. 토지-1권 다시 읽어야 겠습니다. 저, 거의 초판본 갖고 있거든요. 위아래로 쓰여진 책. 한 쪽 넘기기가 막 아까운 책.

  8. dream 2008/05/05 18:24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가 박경리 선생님을 다시는 뵙지 못한다는 것이 서글퍼지네요
    이 시대 의 존경받는 큰 스승 이셨습니다 토지 처음부터 다시 읽어 봐야 겠습니다.

  9. BlogIcon 머쉬룸M 2008/05/05 19:3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0. Korean 2008/05/05 20:5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어쩌면 나하고 그렇게 똑 같은 생각을 ㅋㅋㅋ...이름도 그렇고 정말 책에서 여자라는 점을 느끼기가 너무 힘들어요. 30년전 학생이었을때 박경리님이 남자인줄 알았답니다. ㅋ

  11. 김진예 2008/05/05 21:00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예전에 '토지'에 푸욱 빠져서 꿈도 사투리로 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그당시 컴을 배우면서는 ID도 'tojiya"(토지야~)로~~아~~님께서 가셨군요~~소풍을 끝내셨군요...훗날 다시 뵙지요~~~

  12. 이수연 2008/05/05 22:4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김약국의딸들인지김약국네딸들인지제목에 혼자서 고민했던중1읽으면서도 무슨내용인지이해하지못했던 그시절부터 책읽기엔힘들었던고3시절 2번을 연이어 봤던 토지 편히가셨기를 빕니다

  13. 김용귀 2008/05/05 23:44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슬픕니다 슬픈 한국의 역사를 잊지않토록 하셨습니다 존경하는 박경리님 편히 잠드소서

  14. BlogIcon 김진애 2008/05/06 04:40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Korean님, 저랑 같은 분이 있어서 반갑군요. 아마 많은 어린 독자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은데... 본명이 '박금이' 아니었던가요? 여성스러운 이름에서 필명을 '경리'로 바꾼 것이 너무 좋아요. 박경리 아닌 박경리는 상상할 수가 없어요.
    김진예님, '소풍'이라는 말 깊이 담겠습니다.
    이수연님, dream님, 우리 '토지' 다시 읽기 해보지요.
    김용귀님, 슬픔 속에서도 뿌리 깊게 살아가는 우리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셨지요. 감사합니다.

  15. 전효숙 2008/05/06 09:1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당신의 혼이 담긴 [토지]를 다시 펼쳐들었습니다.

  16. 도화영 2008/05/06 11:25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시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을 빛내주실 거라 믿습니다.
    사랑했습니다.

  17. 박지영 2008/05/06 20:42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자꾸 눈물이 납니다.
    한번도 직접 뵌적은 없지만, 당신의 글을 사랑했나봅니다.
    자꾸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납니다.

  18. 글쎄올시다... 2008/05/06 22:4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글쎄올시다....할말은 많지만...글쎄올시다....글쎄올시다...

  19. BlogIcon 김진애 2008/05/07 05:03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박경리 별세 소식에 대하여 세대에 따라 절실함이 다른 것 같습니다. <토지>를 책으로서가 아니라 드라마로 접한 세대도 많고, 세대의 역사 체험이 다른 것도 있겠지요. '단편'도 많이 쓰신 박경리 단편집도 다시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책 안 읽는 세대라서... 전효숙, 도화영, 박지영, 글쎄올시다님... 9일 발인이라고 합니다. 박경리 선생님을 각별히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이 드는 것은 결코 유쾌할 수 없다. 방년 십팔 세를 넘고 나면.
그러니, 이 글을 읽을 만한 독자들은 모두 불가피한 불쾌함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쾌한 척’ 해야 한다.
왜? 나이 먹는 건 운명이니까. 운명은 빨리 받아들일수록 훨씬 더 근사한 전략이 생기므로.
‘유쾌한 척’ 하면 유쾌해질 수 있으므로.

매일매일 나이와 함께 살아가는 당신은 다음 중 어떤 전략을 쓰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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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리언 그레이’ 전략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처럼 악마와 거래를 해서 초상화에 자신의 모든 추함을 담아놓고 실제 자신은 젊음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그야말로 ‘악마스러울’ 정도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흠이다. 부지런하고 바지런하고 치밀하고 꼼꼼해야 한다. 자연 기법이건 인공 기법을 쓰든 간에, 돈도 적잖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런 도리언 그레이들도 어느 시점에 바싹 늙는다. 하늘은 참 공평도 하시지, 야들야들한 베이비 페이스들은 신데렐라처럼 예쁘다가도 어느 시점에 바싹 시든다. 도대체 언제까지 도리언 그레이 전략을 쓸 것인가 고민되는 대목이다.





이 아름다운 그레타 가르보는 어느 시점에 자취를 감첬다.(이것도 '도리언 그레이' 전략?)
나중 사진을 싣지는 않으련다. '도리언 그레이'는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여러번 영화화, 연극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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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파워 갖추기 전략

나이 하나 더 먹는 건 힘이 하나 더 붙는다는 뜻이다. 이른바 밥그릇 수가 주는 힘이란 대단한 것이다. 그러니 그 나이에 걸 맞는 파워를 갖추는데 중점을 둔다. 체력, 경제력, 교양력, 대화 능력, 유머 감각, 자기표현 스타일이 그것이다. 한 살 한 살 먹을 때 마다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백범 김 구 선생의 ‘내가 살고 싶은 나라’의 표현 방식을 빌려서 풀어보자면,
‘체력은 같이 여행할 정도여야 하며,
경제력은 독립을 유지할 정도여야 하며,
교양력은 자신의 견해를 세울 정도여야 하며,
대화 능력은 만나고 싶을 정도여야 하며,
유머 감각은 자리를 유쾌하게 할 정도여야 하며,
자기표현 스타일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을 정도여야 한다.’

파워 갖추기는 금방 효과가 잘 안 난다는 것이 흠은 흠이다. 오랜 시간 자신과 대적해야 하니 내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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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음 비우기 전략

신경 쓰지 않는다. 갖은 화장과 패션으로 살려보더라도 기껏해야 서너 살 어려 보이는 것이 ‘끽’이니 마음을 비운다. 파워 갖추기 역시 쉽지 않은 것이니 마음을 비운다. 이 전략은 ‘도인 같은 마음, 보살 같은 마음’이 필요하니,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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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홀로 놀기 전략

내가 멋지게 늙은 남자를 예찬한 글에서 ‘솔로성’은 곧 ‘청년성’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자유족’, ‘독립족’, ‘홀로족’이라는 것, 혼자 있을 줄 아는 남자, 혼자 있을 때 자신을 찾을 것 같은 남자, 홀로 있을 때 가장 빛나는 남자 등.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다. 홀로 놀 줄 아는 남녀는 같이 놀고 싶게 만든다. 가장 쉬운 실천 작전은 ‘홀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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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피 바꾸기 전략

‘20대의 피가 흐르는 김진애’라는 상찬을 들은 적이 있었다.(상찬인지 은근한 비판인지 괘념 않는 것도 필요하다.) 내가 30대에 쓴 글을 보고 50대 남자일 것이라 생각했다는 평을 듣곤 했었는데(물론 전문 주제의 글이었지만), 나는 그만큼 중후했었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을 보고 내 나이를 어떻게 짐작하실까? 이제 나는 내 나이에 걸 맞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이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한다. 이것이 바로 피 바꾸기 전략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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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대 넘는 친구 스킨십 전략

친구란 모쪼록 세대를 건너뛰어야 맛이 난다. 동년배 친구는 물론 언제나 우리를 편하게 해준다. 그렇지만 세대를 건너뛰면 체험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10년 위아래, 즉 20년 차이가 나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당신이 2030세대라면 4050세대 친구를, 당신이 3040세대라면 5060세대 친구를 사귄다. 물론 흠이라면 405060세대가 203040세대 친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지만, 어려우니까 더 열심히 하자. 위 연배 친구는 나를 자극해서 좋고, 아래 연배 친구는 나에게 도전해서 좋다. 모쪼록 멋지게 기어오르고 멋지게 기어오름의 대상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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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성 매력 찾기 전략

죽을 때까지 남자의 매력을 탐험하고 여자의 매력을 탐구할 것, 또한 매력 남자, 매력 여자를 발굴하는 노력을 그치지 않을 것. 당신이 싱글이건, 결혼했건, 이혼했건, 재혼했건 간에. 이성의 존재는 나의 존재를 풍요롭게 해준다. 이성의 존재는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편을 남자로 대할 것, 아내를 여자로 대할 것’이라는 아주 평범하고도 실천하기 어려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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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전략을 택할 것인가?

한 가지 전략만으로 유쾌하게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아실 것이다.

일곱 가지 씩이나 전략을 열거하는 이유다.

‘유쾌한 척’ 나이 먹어보자.

 








(박경리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