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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8/07/11 고딩 시절 하루 몇 시간 공부해야? by 김진애
  2. 2008/05/16 MIT 대학에서 얻은 세 가지 깨달음 by 김진애 (6)
  3. 2008/05/15 '선생님 영화'가 대히트쳐야 한다 by 김진애 (3)
  4. 2008/05/04 우리 아이 잘 자라는 6가지 비결 by 김진애 (2)
  5. 2008/04/29 죽을 때까지, 자라는 단계들 by 김진애 (3)
  6. 2008/04/16 '고3 엄마’ 살아남기 by 김진애 (6)
나라 망신시키는 6가지 요령

요즘 시대에 우리는 누구나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다. 국제외교를 담당하는 외교관뿐 아니라, 해외비즈니스, 유학, 여행 뿐 아니라 해외상품에 대한 구매를 하고 인터넷으로.....

혁신도시, 적극적으로 승계하라

내 그럴 줄 알았다. 이명박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에 대해서는 참여정부의 맥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책 이름을 ‘균형발전’에서 ‘지역발전’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광역경제.....

기록해야 쌓이는 노하우

Document your own history. 자신의 성장을 가장 성의 있게 지켜보는 사람은 자기여야 한다. 자기 기록이란 자신의 책임이다. ‘자신의 역사가 바로 자신’이라는.....

'딸‘은 완벽하다

나는 딸딸 엄마고 나의 남편은 딸딸 아빠다. 아들만 있는 엄마 아빠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딸의 존재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다. 기를 때 ‘아.....

얼마 전 고등학교에 강연을 갔었습니다. 오랜만의 고교 나들이였습니다. ‘열정과 사랑’으로 똘똘 뭉친 ‘도서관 담당 선생님’의 성의 가득한 초청 덕분이었습니다. 전북대 캠퍼스 바로 옆에 붙어있어 분위기가 삼삼했던 전주 사대부고, 학생들의 에너지가 가득하더군요.

학생들 질문이 이어지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 질문.

“고등학교 시절에 하루 몇 시간 공부하셨어요?”

가방끈이 꽤 긴 저인지라 궁금했던 모양이지요? 아님, 요즘 학생들의 평소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말일 겁니다. “공부 더 해야 하는데, 나는 남들보다 공부를 적게 하는 게 아닌가, 몇 시간을 공부해야 맞는 것인가?” 이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요즘 학생들 참 안됐습니다.

그날 제가 한 얘기한 요점들.

1. 공부는 집중이 중요하다.

2.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6시간 정도?
(집중하는 시간은 전체 시간의 반 정도? 그렇다면 최대한으로 따져도 12시간 정도일 뿐. 실제 돌아보세요. 하루에 그 이상으로 공부하는 적이 있는지? 제가 하루 14시간씩 일하는 워커홀릭이지만,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람 만나기, 자료 체크하기, 회의하기 등을 포함해서입니다. 그런 주변 시간도 집중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마는.)

3. 학교 수업시간에 최대한 집중 공부해야
학교에서 자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어리석은 짓 하지 말자.

4. 자신의 공부 스케줄은 자기가 짜고 자기가 해야.
(선생님의 입력은 일정 수준이 지나면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이 말 하니까 학생들 와르르 웃더군요. 실제 그래요. 공부는 자기 수준에 맞추어 자기식으로 해야 합니다.)

5. 잠을 제대로 자야 합니다. 자면서 뇌에 새겨 기억하는 것 아주 중요합니다.(시간이요? 평균 6-7시간은 최소입니다. 실제 돌아보세요. 낮잠에 빠지는 것, 조는 것도 다 잠입니다. 제 경우 밤에 5-6시간, 낮에 1시간 정도로 구분함으로써 집중도를 높이지요.)

이 외에도 또 있습니다.

6. 진짜 공부란 호기심이 발동해야 한다.

7. 학교 공부 지나치게 잘하면 자칫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든다.
(실례를 불구하고 말하자면 기껏 의사나 변호사? 교수? 그렇게 선망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과연 자신에게 맞는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이며, 그 직업은 워낙 풀이 작다 등.)

선생님들에게 야단맞을 각오 하고, 학원 선생님들에게 야단맞을 각오 하고, 부모님들에게 야단맞을 각오 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 학생들에게 전달이 되었을까요?

*** 부모님, 선생님들께 드리는 말씀 ***

아이들, 너무 오래 공부 시키지 마세요. 너무 질리게 책상 앞에 붙들어 놓지 마세요. 어른들 하루에 일하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 공부한다는 게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효과도 없습니다. 집중이 안되잖아요?

아이들, 너무 학원 많이 보내지 마세요. 학원 시간이 지나치게 많으면 자기가 공부할 시간 줄어듭니다. 그러면 자기 것이 안 됩니다.

아이들, 꼭 성적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성적은 어차피 1등도 있고 꼴등도 있고. 하지만 이 세상에 해야 하는 공부, 이 세상에 해야 하는 일을 엄청나게 많으니까요.

 

*** 080711 김진애 생각.

고 2때까지 주로 놀았지만, 고 2겨울방학부터 딱 1년 동안 독하게 공부만 했었습니다. 제가 꽤 자랑하는 시절인데요.^^  돌아보면그 때도 하루 14시간 정도가 최대였지요. 자는 시간, 밥먹는 시간, 왔다갔다 하는 시간 들이 꽤 많이 들지요.

그날 강연 때 학생들 질문 중 인상깊은 질문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확실한데, 꼭 학교를 다녀야 할까?"라고 질문하던 똘망똘망 눈망울의 여학생 질문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도 다들 똑같은 과정만 밟지 않아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 풍부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0 교시 부활이다. 학원 자율화다, 학교 자율화다 하면서 아이들을 그저 책상앞에 붙들어놓으려 하는 요즘 세태, 이건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교육, 상업주의적 교육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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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소립자] 김진애 씨가 말하는 '고딩시절 하루 몇 시간 공부해야'

    Tracked from 스튜디오 판타지아 2008/07/11 14:15  삭제

    김진애 씨가 말하는 "고딩시절 하루 몇 시간 공부해야?" 1. 공부는 집중이 중요하다. 2.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6시간 정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전체 공부시간의 반 정도. 따라서 효율적인 일일 최대 공부 시간은 12시간. 3. 학교 수업 시간에 최대한 집중 공부해야 4. 자신의 공부 스케쥴은 자기가 짜고 자기가 해야 5. 잠 제대로 자기. 밤 5~6. 낮 1시간 6. 진짜 공부란 호기심이 발동해야 한다. 7. 학교 공부 지나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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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유학 첫날은 아주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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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한가운데로 큰 길이 통과해서 별로 캠퍼스 같지 않은 캠퍼스, 자꾸 덧대서 지은 캠퍼스라 미로처럼 얽히고 얽힌 복도를 따라 헤매던 중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더니, 글쎄, 남자 소변기가 주르르 늘어서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서 나왔다. 그런데 분명 여자 화장실’이라 표시되어 있는데... 황당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겨우 학과 사무실을 찾아가니 입구 위에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붙어있었다. 학교 안에 네온사인이라, 당시로서는 생각도 못할 유쾌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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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에 있는 내내 유쾌한 놀라움들이 벌어졌다.
아마 내가 잘 모르고 갔기 때문에 더 그러했으리라.
우선, MIT는 공대만이 아니었다.
경영대학원의 세계적 경쟁력이 아주 높았고, 그 유명한 언어학자이자 진보 지식인인 노엄 촘스키가 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위 사진: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이자 진보지식인인 노엄 촘스키, '살아있는, 미국의 양심'이라고 불불리는 촘스키 교수는  MIT의 '지적 양심,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할까. 베트남전쟁이후 미국의 패권주의적 외교정책과 인권에 대한 미디어비평으로 핵심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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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너무도 유명한 ‘MIT 미디어 랩’을 만든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라는 사람은 당시 학교 한 귀퉁이의 허름한 창고 건물에서 일하는 희한한 괴짜 인물로 여겨졌었는데, 어느새 미디어혁명의 핵심 트렌드를 주도하는 거물로 등장하였다.


(사진: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그 상상력 가득한 혁신적 실험으로 유명한 MIT 미디어랩의 창설자. MIT의 문제창조정신, 창업정신을 대표한다고 할까. '지나치게 기업적'이라는 비평도 달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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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은 MIT 마인드를 대표하며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인물이다. MIT 기계공학과 교수로 오래 재직하면서 미국 과학기술계를 주름잡았었는데, 과연 우리 사회에서 성공할 것인가. 최근 혁신 지향적 행보들로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과연 '서남표 쓰나미'가 우리 대학에 선순환을 만들어낼까?

오른쪽. 나는 서남표 총장과 함께 '도시에 대한 좌담'을 한 적이 있다. '정답은 세포처럼 자라는 자급 도시'라 말했던 서남표 총장. 그의 책 <카오스>를 선물로 받았는데, 이 시대 복잡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책. 만난 소감? 역시 '공격적일 정도로 적극적'이셨다.)



내가 처음 갔던 과정은 건축 석사였는데, ‘경제학’과 ‘인식론’이 필수과목이었다. 경제학이 필수라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인식론’이 필수라니 얼떨떨했다. 경제학 만큼은 나도 꽤 날렸지만(?), 인식론 과목에서 짧은 영어로 철학과 인류학과 사회학을 논하려니 진땀을 뺐다. 하지만  모든 인간 행위의 기본은 인문학 아닌가. 도시와 건축도 마찬가지다. 담당 교수(유대인 인류학자)가 되뇌었던, “Suspend your belief!(너의 믿음을 흔들어보라!)”라는 말은 나를 흔들었다. 고정관념, 선입견, 고정 틀을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이루라는 말로 지금도 나의 생각의 기본이다.  

건축 석사과정을 마치고 진학했던 도시계획 박사 과정에서 계획론 토론 코스를 이끌던 철학 출신 교수(Don Schon, 돈 션)가 제시했던 ‘성찰적 실무자(Reflective Practitioner)’라는 말은(책으로도 나왔다) 지금도 나의 실천 좌표가 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생각하며 행동하라’라는 것이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 행동일까, 생각일까? ‘생각 있는 행동, 행동을 전제한 생각‘만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

되돌아보면, 내가 MIT에서 얻은 것은 학위나 전문지식이나 네트워크가 아니었다. 그 어떤 ‘기본’이었다. 그 깨달음을 나는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한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MIT에서는 별로 생각지 않던 것들이다. 교수나 학교 측에서 특별히 강조한 적도 없다. 오히려 유학에서 돌아와 몇 년 일하고 나서 보니니 ‘아, 그렇구나, 그 때 그게 이런 뜻이었구나!’ 하면서 실감하게 되었다.

첫째는 문제 창조 마인드(problem-creating mind. Design your problem!).

많은 사람들이 문제 해결 능력을 강조하지만 문제를 잘 설정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문제 자체에 해결의 단서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창의적으로 문제를 풀려면 독창적으로 문제를 창조하는 것이 핵심 마인드다. ‘문제를 만든다, 문제를 디자인한다’는 정신을 가지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왜?’ 라는 핵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나온 호기심이 동기가 된다.

둘째는 현장 감각(sense of real life, sense of real world ).

굳건하게 현실에 뿌리를 내리는 정신이다. 땅에 뿌리를 박지 않으면 어떤 나무가 자랄 수 있으랴. 현장의 문제로부터 출발하는 사고에서 실천 방식과 해결 방법이 등장할 수 있다. MIT의 강의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항상 현실에 근거했고 모든 프로젝트들은 현장의 문제에서 출발했다. 수많은 사례들 중에서도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도시의 부도 사태’에 대한 것이었다. 지자체가 부도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거니와, 그런 위기로 인해 생긴 문제들과 그 위기를 극복하는 해결책들이 입체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흥미진진했다.

셋째는 창업정신 /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

창업정신(또는 기업가정신)이란 꼭 기업 경영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활동에서나 필요한 정신이다. ‘만들어낸다, 해낸다’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돈버는게 기업가정신'으로 잘못 해석되기도 하지만, 진정한 기업가정신이라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무언가 실제적으로 만들어서 인간과 사회에 유익함을 돌려주는 실천 정신이다. 기업가정신이란 말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 '창업정신'이 더 좋은 어휘일 수 있다.

유난히 벤처 활동과 프로젝트들이 많던 MIT는 조용한 가운데 끊임없이 무언가 만들어내는 게 신기했다. 앞서도 얘기했던 ‘미디어 랩’도 그렇거니와, 내가 일했던 ‘도시건축 랩’에서도 조용한 듯싶으면 여기서 차이나 프로젝트, 저기서 남미 프로젝트, 일본 프로젝트가 등장하는 것이었다. 그런 프로젝트들의 성과가 공공 정책으로, 프로그램으로, 벤처로, 기업의 혁신 노하우로 변하면서 현실 세계를 조금이라도 낫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 창조 정신, 현장 감각, 창업 정신의 뿌리는 ‘실천’이다.
‘성찰적 실천’이라 해도 좋다.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어떤 전문 지식 이상으로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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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정신이 꽃피기를 나는 정말 바란다. 비단 학교 교육 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행정에서도 정치에서도, 개인도 또 사회집단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원론주의, 총론주의, 관념론, 추상론, 서열주의, 정답주의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라 부르짖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고를 옥죄고 행동을 제약하는 프레임들이 알게 모르게 사회 곳곳에 엄연히 존재한다. 그 틀을 과감하게 뛰어넘는 동기란, ‘실천’을 해내고자 하는 의지다. 이것이 바로 ‘성찰적 실무자’를 움직이는 동기이기도 할 것이다.(그림은 MIT 엔블럼, 이 그림이 박힌 티셔츠를 입고 다시는 우리 학생들을 꽤 많이 보았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성찰적 실무자’가 되기를 꿈꾸었으면 좋겠다. 돈과 출세라는 세속의 성공 기준에 얽매이지 말고 생각하는 행동인으로서 세상을 바꾸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기를 바란다.

  • 자신이 문제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생생한 호기심,
  • 현실이라는 땅에 굳건히 뿌리를 박을 수 있는 냉철함과 애정,
  • 언제나 무엇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를 키워보자.

    우리도 유쾌한 놀라움을 만들 수 있다.


    *** 스승의 날 다음 날 새벽 김진애 생각:

    MIT 유학 첫 1년을 제 인생의 카메오라 부르곤 합니다. 머리 부풀고, 날개 돋는 듯, 가슴 뛰던 시간이었지요. 그 유쾌한 놀라움의 분위기를 우리 사회에서도 꼭 만들고 싶답니다. 우리라고 못할리 없으니까요. 제가 공식교육계에 종사하지 않으면서도 자라기에 관심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새 트렌드인 '학교를 기업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문제 있습니다.'기업가정신'을 독려하는 MIT지만 학교로서 MIT는 '공공성과 지적 모험과 사회적 양심을 중시하는 기본'을 지킴으로써 생명력이 길어지지요. MIT는 초기에 이른바 전쟁 기술로 큰 학교지만, 기술에 인문과 철학을 통섭함으로써 인류적 학교가 되었지요. 과학기술적 근거에 기반한 인문적 통찰. 또는 인문적 통찰에 근거한 과학기술 마인드...

    어떻게 보면 미국 패권지향적인 하버드 대학보다 MIT는 더 세계보편적 대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MIT 역시 미국대학임에는 분명하지마는요.

    '스승의 날'은 바로 '학교의 날' 아닐까요. 진정한 배움, 속깊은 자라기, 사회와 이웃에 대한 애정을 흠뻑 받을 수 있는 학교와 스승. '스승'이 굳굳이 버텨주는 학교, 우리 그렇게 되어야 하지요. 물론 이 세상은 가장 큰 학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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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촘스키 2008/05/16 11:00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서남표 총장 여러 적극적인 행보가 좀 이해되네요. 촘스키가 MIt 교수라는 것 잘 몰랐는데, 어떻게 공대인줄 알았더니 거기에 교수를 하게 되었는지? 아시면 좀 설명 부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2. BlogIcon 김진애 2008/05/17 06:1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촘스키가 왜 MIT 교수가 되었는지, 잘 모르는 것을 질문하셔서 인터넷 서치를 좀 해봤습니다. http://www.pabook.libraries.psu.edu/palitmap/bios/Chomsky__Noam.html
    정확하게 나오진 않지만 박사학위 받고 유펜/콜럼비아/프린스턴/MIT에서 여러 포지션으로 가르치고 있었는데, 당시 주류이론이었던 '행태심리학'에 대한 비판을 통해 논쟁의 중심에 서고 주류심리학자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게 되었고, 그러다 MIT 부교수가 되었다고 하네요. 아마 다른 주류대학들이 촘스키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아닌가 싶네요. 당시 50년대 MIT라면, 비주류대학인 편이었으니까요. 60년대 쿠바-베트남 전쟁 반대하고 체포도 되고했는데, 계속 MIT 교수로 남아있었네요.
    MIT는 이른바 비주류-혁신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는듯. 일종의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겠지요. 위의 네그로폰테는 거의 20여 년 그저 괴짜이기만 했는데도, 학교에서 꾸준하게 지원해주었거든요. 물론 MIT라고 해서 권위주의적 제도권적인 모습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사는 곳이니까요. 하지만, 근본적인 'progressive 철학'이 깔려있는 듯 합니다. 이상 공부한 결과보고 입니다. 앞으로 더 알아보겠습니다.

  3. 찐득이 2008/05/17 12:18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MIT,좀스키, 역신이라는 이미지가 있네요. 고딩이라면 도전해볼 만한 학교네요.

  4. 정혁 2008/05/19 10:54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잘 읽었습니다.~~

  5. BlogIcon rainyvale 2008/05/19 11:3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MIT는 역시 MIT이긴 하죠.
    단, 말씀하신대로, MIT는 초기에 전쟁기술 개발을 통해 도약한 학교죠. 그 때까지 대표적 사립 공대 중 하나였던 RPI는 군수 관련 프로젝트를 거부해서 학교가 좀 정체되었구요. MIT는 지금도 링컨랩 같은 곳에서 여전히 '검은' 연구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6. BlogIcon 양정훈 2008/07/13 03:03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문제창조마인드'를 지적하신 부분에서 ... 저의 연구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영화'는 '성장 이야기'다. 아이들도 자라고 선생님도 같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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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는 선생님 영화가 꽤 많다. 히트작도 무척 많다.

<<선생님께 사랑을(To Sir with Love)>>이 나에게 첫 선생님 영화였고(영국을 배경으로 한 흑인 교사 이야기),

<<죽은 시인의 사회>>는 청소년 시절의 선생님을 다시 생각케하면서 대히트를 쳤고,

<<굿윌 헌팅>>은 MIT가 배경이 되어 더 흥미로웠고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 학생의 재능을 발견해주는 선생의 역할에 감동을 먹었고,

<<파인딩 포레스터>>는 청소년 성장 소설로 50년 이상 베스트셀러라는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가 오랜 은둔생활을 했다는 것에 착안되어 만들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다 히트작들이다. 이 외에도 성장을 다룬 선생님 영화가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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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생님 영화'는 히트작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이 글을 쓰다가 깨달았다. 확 기억에 남는 선생님 영화가 없다.

재미있게 본 <<내마음의 풍금>>은 풋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고, 
<<선생 김봉두>>는 지나치게 코미디스럽다는 것이 좀 유감이었다. '섬마을 선생님'이라는 대중적 선생님 상에도 풋사랑 이미지가 덧칠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주역이고, 이른바 '꼰대스럽다'는 선생님을 조롱하는 장면이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것(예컨대 <친구>)을 보면, 우리 문화에서 '제도권 선생님'에 대한 존경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 아닐까? (일제강점기,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제도권에 대한 거부감이 뿌리깊다는 것도 작용할 터이고.)

이제는 달라질 때도 되었는데, 우리의 '좋은 선생님 영화'를 기다린다. 영화의 문화 영향력에 기대해보고 싶은데... 좋은 소재도 많을 터이다. 그 어려운 시대를 거쳐오면서 선생님이 없더라면 우리 사회가 이만큼 왔겠는가? 새로운 변화, 아이들 눈높이 맞우고 아이들 편에 서서 같이 자라는 '좋은 성장 영화'가 우리 사회에서도 인기 있었으면 좋겠으련만. 선생님과 아이들이 같이 성장하는 영화를 기다려본다. 선생님 영화가 대히트를 친다면, 우리 사회도 뭔가 내공이 깊어진다는 뜻 아닐까?




요즘 새삼 생각나는 선생님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5학년까지 3년 동안을 같이 했던 선생님이다.

‘과외 선생님’ 보다는 ‘그룹 리더’라 하면 맞을 것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네다섯 학생들과 만나서 반은 놀고 반은 공부했다. 공부를 잘 가르쳤는지 아닌지 당시 나로서는 판단이 안 선다. 3년을 계속했다면 잘 가르쳤기 때문 아니었을까.

홀로 외아들을 키우던 ‘열심 엄마’가 이 그룹을 만들었다. 단칸방 한켠에서 조용히 바느질을 하던 그 엄마는 우리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툇마루에서 선생님과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곤 하셨다.   

선생님이 나에게 남겨 주신 세 가지 특별한 기억.

첫째 기억, 우리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셨다.

말하자면 현장 교육이다. 많이 놀러 다녔고 영화도 보러 갔다. 그 중에서도 위문편지를 쓰라고 했던 군인 부대에 위문을 갔던 것은 무척 기억에 남는다. 버스 타고 타달타달 걸어서 고생은 죽도록 했는데, “아, 저 군인 아저씨가 선생님 애인인가 보다!” 하고 번갯불처럼 깨달았던 순간. 나에게 남녀 관계의 묘미를 일깨워주셨다고 할까. 

(*** 물론 우리들은 그 때 '얼래리 꼴레리'하면서 선생님을 놀려댔다.^^
연애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둘째 기억, ‘한자’를 배우던 각별한 분위기다.

한 획 한 획 마치 그림 그리듯 하고, 부수의 어원을 가르쳐주고, 한 부수 한 단어마다 관련 단어들을 뜻으로 찾아보던 기억. 마치 ‘퍼즐 조각 맞추기’ 하듯이 신났었다. 열 살 내가 너무 멋있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 덕분에 나는 그 또래에 비해서 한자에 상당히 능숙해졌는데, 이 실력은 언제 발휘되었나 하면, 10여 년 전 미국 친구들 30여 명과 중국 여행을 하면서 한문으로 된 메뉴를 보고 주문하던 때다. 그림처럼 생긴 한문을 보고 뜻을 풀이하는 나를 보고 그 미국 지식인들은 내가 마치 라틴어를 하는 듯, 존경스런 눈으로 봐줬다.^^)

셋째,‘초청 강사’를 수시로 부르셨던 기억이다.

아마 당신 친구들 아니었을까? 한번은 어떤 분이 오시더니 우리들에게 자기 왼손을 스케치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 어설픈 손 그림을 보고 하나하나 우리의 성격을 해석해주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냈다. 내가 뭔가 해낼 듯 싶어서 그 날 밤은 가슴이 두근두근 했었다.   

(*** 내가 그린 왼손을 보고, 그 선생님이 하는 말은 계속 기억에 남는다. '맺을 듯 말듯한 선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말... 5학년 학생에게 얼마나 근사한 말인가.^^  덕분에 나는 아직도 계속 무한한 가능성을 찾는 모양이다.)


                                          ***

왜 요새 이 선생님이 새삼 생각날까. 『자라기』라는 화두에 몰두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나에게 ‘끊임없이 자라기,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기, 이왕이면 재미있게 자라기’ 같은 비법을 스스로 깨닫게 한 것은 바로 이 선생님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아, 그 때 그렇게 같이 한 3년, 그런 의미였구나!” 


‘젊은 리더’로서 어린 나에게 스스로 뭔가 하도록 깨우쳐 주신 선생님. 지금은 어디 계실까? 그 군인 아저씨와 결혼은 하셨나? 전공은 뭘 하셨던가? 성함은 무엇이었을까?(성함도 모른다. 우리에게 선생님은 그냥 선생님이었다.) 지금은 누구에게 뭘 깨닫도록 하고 계실까?

당신에게 나 같은 어린 제자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실까?
무럭무럭 자라고, 지금도 열심히 자라고 있고,
또 젊은이들의 ‘자라기’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하게 만드는데
당신이 한 역할을 아시기나 할까?

선생님은 얼마나 소중한가? 특히 어릴 때의 선생님이란….  


*** 080515 스승의 날에 김진애 생각

요즘 선생님들 너무 힘드시지요. 예전보다 학생 수는 줄었지만 훨씬 더 힘들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군요. 초중고 학생들이 광우병 촛불문화제에 많이 참여하고, 학교당국과 교육청은 하지말라고 지도하라고 하고, 궁여지책 '교복은 입고 가지 말라'고 하신다고 하고, 혹시나 무슨 일 생길까 싶어 걱정하신다는 얘기를 주변에서도 많이 듣습니다. '같이' 참여한다면 더 좋을 텐데요.

선생님, 아이들이 현장에서 스스로 깨닫고 배우게 해주세요.
초교시절 저의 선생님, 오늘 각별히 더 생각납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같이 자라는 좋은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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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5 23:4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사실 진짜 가슴 떨리게 하고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 내는 교육은 단순한 것일텐데요..

    학교 현장에서 중학생들과 창의적 재량을 진행하며 부딪혔던 어려움은
    결정적으로 제 자신의 미숙함 탓이겠지만
    아이다운 천진함을 죽이며 지식을 주입해온 교육체계 탓도 무시 못하겠죠...
    진짜 중1때 저요,,저요, 하고 손들고 엉뚱한 질문을 해대던 녀석들이
    중3땐 입에 지퍼를 채웁니다...ㅜ.ㅠ

    상상력과 단순한 열정으로 아이들에게
    다양한 만남을 열어줄 수 있는
    그런 힘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 skyworker 2008/05/15 14:23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교육자가 소위 말하는 제도권의 대변자 역할을 하던 70-80년대에도 실력과 소신, 열정을 갖춘 멋있는 선생님들은 계셨지요.

    건방진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많지 않았던 존경하는 소수의 선생님들이 각 급 학교별로 떠올려집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분들도 계신데, 어쩌면 나이가 마흔에 접어드는 즈음에 큰 사고는 안치고 살도록 만들어 주신 분들에게 항상 감사하고 머리가 숙여집니다.

    말씀처럼, 진짜 교육자에 대한 영화가 한번 나와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부끄러운줄 모르고 똑똑한 국민을 오도하는 철없는 '政治者'들이, 자신들의 기회주의적이고 무책임한 태도에 본인들을 가르치신 선생님이 얼마나 가슴아파 하실지를 생각하게도 좀 되었으면 하구요.

    선생님들은 이 사회의 소금이고,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갈 젊은 국민들이 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분들입니다. 불신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래도 선생님들만은 신뢰하고 존중하는 대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BlogIcon 김진애 2008/05/1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생(앞서 태어난 분, 앞서 산 분)의 지혜'에서 배울 줄 알고 나눌 줄 알려면, 신뢰와 존경이 근본이 되얄텐데요, 우리 사회에서 신뢰가 자꾸 깨져서 걱정입니다. 촌지 얘기로 물들고 상품권 뉴스가 나오는 스승의 날, 이래서 되겠습니까? 오늘 몇 분들과 점심하는 중에 우리 영화 중에 좋은 성장 영화가 없다는 것, 좋은 역사 영화도 없다는 것, 너무 시장사회에서 코미디물이 많아지는 것이 지나치다는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최근 중국 영화 <Still Life> 가 그렇게 좋다면서... 우리 사회에 '돈, 돈, 돈' 만하지 말고, 건강한 가치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하는데, 선생님의 역할이 크지요. 스카이워커님.

친척 아이가 자폐증이 있다. ‘꽃 미소년’에 말이 없어 우리 가족에게 아주 인기 높은데 엄마 아빠는 고민이 많다. 그런데 나는 이 여섯 살 소년과 은근히 통한다. 마치 그 시절 나를 보는 것 같다. 자기 세계에 흠뻑 빠져 ‘금지된 장난’을 하는 듯하던 그 시절.

요즘 이 소년이 매혹된 것은 고래와 상어 등 바다 속 이야기란다. 설날에 만두를 빚다가 만두피 두 장으로 물고기를 만들어 비늘과 지느러미도 만들고 눈과 입과 콧구멍을 만들고 바람을 넣어 주니 이 소년의 빛나는 탄성, “우와!”

언젠가 이 소년은 자기 세계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 자기 세계에서 길어 올린 그 무엇으로 더 큰 세계와 통하리라. 그런 믿음으로 내가 쓰는 여섯 가지 자라기 방법들.

하나. 아, 궁금해! 묻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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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은 모든 자라기의 원동력이다. 질문은 호기심의 표현이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을 맘껏 하면 오죽 시원한가.

어릴 적 질문 꽤나 많은 나를 어른들은 질색을 했던 모양이다. “넌 참 이상하구나” 라는 어른들의 말에 질려서 나는 한동안 입을 꽁꽁 닫았다. 답을 못하겠으니까 나를 이상한 아이로 몰았던 거라는 건 나중에 커서야 깨달았다. 나를 포함, 모든 어른들은 반성할 일이다.

내가 책 세계로 도망갔던 것은 마음껏 질문하고 답을 들을 수 있어서였다. 열 살 무렵 세 권을 달달 외우도록 수십 번 읽었다. 『그리스로마신화』, 『플루타르크 영웅전』, 『공자일대기』. 글자 빽빽이 박힌 어른 책들이었다.

나는 요새 아이들이 왜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에 열광하는지 알겠다. 아이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복잡다단한 스토리를 기막히게 소화한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을 잇고 답을 찾을 수만 있다면.

둘. 아, 멋져! 나도 해 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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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쪼록 팬이 되어야 한다. 팬은 마니아로도 통한다. 팬이 되면 스타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싶어진다. 노래만 잘 부르는 가수 보다는 작곡도 하는 음악인이 좋고, 몸짱 배우보다는 연기짱 배우가 좋고, 이왕이면 상상력과 창조성 넘치는 복합적인 인물이 좋다.

나의 첫 스타는 괴도 루팽이었다. 『기암성』 추리소설을 초교 3년 시절 ‘내 돈’으로 혜화동 로터리 서점에서 샀던 것은 아주 행복한 추억이다. 루팽은 상상력 넘치는 도둑이었고 스타일도 멋졌고 사랑도 잘 했다. 과학적으로 암호 해독도 잘하고 문학적인가 하면 무기도 잘 다루고 투자도 잘하고 정의감도 있었다. 또 나는 우리나라 SF 만화 첫 세대를 개척한 『라이파이』(김산호 작) 마니아였다. 고구려 무인처럼 두건 질끈 동여맨 ‘라이파이’도 근사했지만 나는 악인으로 나오는 ‘녹(綠)의 여왕’에 매혹되었다. 으음, 여자도 아주 근사한 악인이 될 수 있구나! 멋지잖은가.

그렇다고 내가 커서 괴도나 악인이 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괴도 루팽과 녹의 여왕의 멋진 능력에 반했던 것은 아주 좋은 자극이었다. ‘나만의 스타’를 만들어보자.

셋. ‘잘’놀면 잘 큰다!

모르는 사이에 공부 되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나.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는 공부는 지겹고 기억도 잘 안 나지만 한 건지 아닌지 모르게 쌓이는 공부는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나의 영어 실력은 순전히 AF(K)N 라디오 덕분이다. 중고교 내내 끼고 살았다. 우리말 방송은 너무 잘 들리므로 방해가 되어서 생각해낸 방식인데, 어느 날 갑자기 라디오 드라마 내용이 귀에 들려서 깜짝 놀랐다. 다음 프로를 기다리는 내가 어떻게나 기특하던지.

MIT 유학 중 큰 딸은 두 살부터 여섯 살 까지 공립 유아원(Nursery School)에 다녔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얼마나 잘 놀던지. 그렇게 놀면서 영어는 물론, 글짓기와 만들기는 물론, 무엇보다도 친구들과 팀워크 하는 방식을 깨쳤다. 엄마인 내가 놀아 준 것보다 훨씬 더 유효했던 유아원 놀이공부, 주말이면 나는 각종 놀이를 실험해 보는 어린 딸의 실험 모르모트 노릇을 하곤 했다.(가장 기억나는 놀이는 낚시 놀이. 같이 목욕을 하면서 나는 고기, 딸은 낚시꾼. 입벌리고 낚시에 걸려주는 묘기를 발휘해야^^. 물 속에서 발가벗고 하는 놀이라 더욱 신나는 놀이.) 우리는 놀면서 무럭무럭 자란다.

넷. 아, 발표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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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만큼 긴장되는 것은 없다. ‘공적인 자리’에 서는 경험은 빨리 시작하고 많이 해보는 것이 최고다. 땀 뻘뻘 나고 얼굴 빨개지는 경험이 우리를 키운다.

나는 중 2 시절 이혜성 국어 선생님(나중에 대학 교수와 청소년상담원장을 역임하셨다)께 정말 감사드린다. 매 시간마다 3분 발표를 시키셨던 것이다. 한 학기가 지나자 모든 학생들에게 한차례씩 돌아갔다. 그 3분 발표 체험이 어떻게나 두고두고 남는지 모른다.

엄마아빠 앞에서 발표하자. 친구들 앞에서 스피치를 하자. 방학 계획서도 입 밖으로 발표하자. 생일 파티에서 멋진 감사 인사를 해 보자. ‘건배’ 말도 해 보자. 어른들께 절할 때 자기 색깔 나는 창조적인 인사말을 하자. 입 밖에 내면 진짜 자기 것이 된다. 사람들의 반응을 느끼면 무언가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은 사람과 기를 나눌 때 가장 살 맛 난다고 느낀다. 발표를 위한 긴장은 아주 요긴한 긴장이다.
(사진. 대학로 골목에서 만난 중학생들. 외국인과 만나서 했던 대화의 긴장, 그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

다섯, 홀로 설 거야! 독할 때는 독한 결심을!

열여섯 살 나의 결심. “1년 동안 소설 안 보고, TV 안 보고, 영화 안 보고 오직 공부만 하리라!” 그리고 독하게 지켰다. ‘홀로 서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해내리라는 결심이었다. ‘내가 벌어 내가 살래’는 그 시절 나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