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미겠지만 나는 갈등이 많은 사람을 은근히 좋아한다. 굳건한 의지, 흔들리지 않는 감정, 딱 부러진 행동으로 똘똘 뭉친 사람은 영 재미없다. 그런 사람이 미덥다는 통념이 있지만 나는 별로 믿음직스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저러다 언젠가 부러지지.” 하고 꼬나본다고 할까? 이른바 다층적인 인간, 복선적인 인간을 좋아하는 성향이다.
이런 점에서 30대 남자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유형이다. 모든 남녀가 인생의 각 단계에서 갈등 때리는 삶을 살게 마련이지만 30대 남자의 흔들리는 갈등을 보는 것은 각별한 재미다. 흔들리는 남자의 대표 격이라는 중년 남자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흔들리는 중년은 매력보다는 연민을 느끼게 되는데, 연민을 느끼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기란 어렵잖은가.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30대 남자가 매력적인 것은 여러 이유일 것이다.
그 흔들림이 또 다른 성장으로 비약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둘째, 아직 ‘초짜’의 정열이 남아 있다는 것.
무언가 변화를 모색해 보겠다는 안간힘이 가상하다.
셋째, 뭔가 ‘첫 경험’의 떨림이 있다는 것.
지나친 자신감도 아니고 멋모르는 불안감도 아니라는 상태가 매력적이다.
30대 남자. ‘결혼 프로젝트’를 끌어 가는 것만 해도 어른이 된 듯싶고, 내 집 마련을 못했더라도 거의 그 문턱에 이른 듯싶고, 경력 10여 년차를 바라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게 손에 잡힐 듯싶고, 그러니만큼 프라이드가 높은 반면 아직 ‘자기 것’이 확실치는 않고, 아직 그리 권력에 물들지 않고 사회적 순수성을 지키고 있는 아슬아슬한 때다. 여기서 잘하면 아주 근사한 남자가 될지도 모르고, 여기서 삐끗하면 자기 인생 망치는 일을 벌일지도 모르고, 여차하면 남의 인생까지 망칠지도 모른다.
물론 30대 초, 중, 후반의 남자는 무척 다르다. 이때만큼 한 달, 반 년, 일 년의 변화가 클 때도 없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일 하나’ 해낼 때마다 사람이 달라진다. 외면적 변화는 물론 내면적인 변화도 심하다. 같은 남자도 일 년 지나 다시 보면 또 다른 단계에 가 있다. 체험의 폭이 넓기도 하거니와 아마 속 깊이 체득하는 절실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흥미롭다.
흔들리는 30대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나의 개인적 체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30대 중반에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이 연배 남자들을 동료 또는 후배로서 가장 가깝게 접하면서 이들의 속내를 들어 주는 역할을 하면서 톡톡히 재미를 봤다. 남자들이 자신의 감정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로서야 여자가 더 적격 아니던가. 감성적으로 미성숙한 남자들 사이에서 영 일어나지 못하는 감성 역학이 남자 여자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나는 이것을 ‘고해성사’라 부른다. 성숙한 여자의 의무로 여기기도 한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구원하려면 필요한 사회봉사로 여기기도 한다. 물론 ‘누나, 누님’이라는 칭호는 사절이다.(나에게 감히 그렇게 부르는 남자도 없다마는.^^) 물론 패트론과 프로테제의 관계도 사절이다.(그런 역학을 기대하는 남자라면 고해성사를 들어줄 가치도 없다.)
이 기회를 통해서 밝혀 두자면 이런 고해성사를 받는 것은 순전히 나의 재미 때문이다. 사람의 내면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채운다고 해도 좋다. 이런 이기적인 행위가 내 인생을 흥미롭게 해 주는 것은 물론이요, 그나마 ‘남성’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을 잃지 않게 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흔들리던 30대 남자들 중에서 아주 근사한 남자로 넘어간 경우가 적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흔들리는 남자의 그 흔들림을 보는 것 자체만도 아주 매혹적인 경험이다.
***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30대 남자를 매력적으로 흔들리는 남자로 짚을 수 있을까? 이건 영 쉽지 않은 일이다. 30대 남자치고 독자와 내가 함께 공유할 만한 남자란 별로 없다. 현실적으로 30대 남자가 대중에게 알려지려면 연예인이나 스포츠인이 되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남자 30대는 바늘구멍을 통과하고 있는 세대다.
반면에 우리 일상이나 사회 조직에 가장 널려 있는 세대가 30대다.
20대의 어설픔을 어느 정도 벗고 역량으로 근육이 단단해지고
야심으로 심장이 뜨거우면서도 머리를 차갑게 굴릴 줄 아는 30대,
육체적 욕망과 정신적 욕망, 물질적 욕망과 혼적 욕망, 가족성과 개인성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자신을 지키려 애를 쓰는 30대 남자를 아마 당신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남자들의 고해성사를 끌어 줄 용기나 하해와 같은 관대함이 있다면 당신의 인생과 그들의 인생은 훨씬 더 풍부해질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고해성사에서는 당신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공연히 연민을 갖거나 공연히 시샘을 하거나 공연히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사제’의 마음을 가져본다고 할까?
***
비록 독자와 같이 공유할 흔들리는 30대 매력 남자를 거명하지 못해 아쉽지만, 한 가지 반가운 것이라면, 요즘의 ‘영화인’중에서 그럴듯한 30대 남자들이 떠오른다는 현상이다. 영화 속 남자도 그렇고 배우 자체도 그렇고 감독도 그렇다.
나는 30대가 주역이 되는 영화가 많아져야 근사한 영화가 많아지고 사회도 성숙해진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데, 요새 우리 영화를 보면 바로 그렇게 되어 갈 징후가 보인다. 배우를 봐도 그렇다. 살기 어린 눈과 푸짐한 순수함을 오가는 송강호, 극도의 무심함과 살인적인 독기 사이를 오가는 설경구, 망가질 대로 망가질 줄 아는 최민식, 우직한 바보와 세련된 도시인 사이를 넘나드는 황정민, 정교한 치밀함이 놀라운 봉준호, 스캔들에 숨은 인간성을 파악할 줄 아는 이재용, 비열함과 숭고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박찬욱 등 등, 이들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관심에 관계없이 자신의 일을 해내는 것이 정말 괜찮다. 생기기도 배우의 면모는커녕 보통 기준으로도 영 안 생긴 남자들이라 더욱 뿌듯하다. 이들은 별로 고해성사를 필요로 하지 않게 보이지만.(물론, 필요할 게다.^^)
30대 감독이 만드는 영화에서 30대 남자의 흔들림을 아주 잘 표현한다는 것도 아주 매력적인 사회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박하사탕>,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해피엔드>, <파이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와이키키 브라더스>, <스캔들>, <올드보이> 등, 욕망의 충돌 사이에서 흔들리는 남자들의 면모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 남자들의 자의식은 커지고 세상은 좋아질 징조다. 기대해 보자.
요새 30대 남자의 고민은 훨씬 더 커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사오정’의 공포를 미리부터 알고 있는 지금의 30대는 이전의 30대보다 훨씬 더 빨리 또 깊이 흔들린다. 30대 초부터 조바심을 치고, 30대 안에 무언가 이루지 못하면 인생은 종친다는 강박관념도 안고 있다.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어떤 40대, 어떤 늙은 남자가 될까?
30대에 한창 주목을 받던 386세대가 이제 40대를 넘어서고 있다. 그들은 흔들리는 30대를 잘 겪어 냈을까? 30대에 충분히 흔들림을 겪어야 근사한 40대를 기대할 수 있음을 그들은 증명해 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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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익후 며칠 전에 '30대 여자'...에 대한 글을 읽었을 때만 해도 아내에게 일독을 권했을 뿐 그냥 무덤덤했는데 본인이 해당하는 (저는 30대 중후반) '30대 남자'에 대한 글을 적어 주시니 뜨끔합니다요
남자 품평회, 여자 품평회. 남성들은 속내 갈등을 드러내기 힘들어하지요? 읽은 분들은 많은데 댓글이 별로 없어서 흥미로워 하는 중입니다. 후후. 용기 있는 Vincent님, '뜨끔하시다' 고백하시니, 오늘 부부 남녀 사이에 좋은 기분 가득하시겠어요.
여성들 역시 공개적으로 남성 애기하기 쑥스러워 하지요? 남녀 모두 사석에서는 남성-여성 얘기로 가득한데... 남자 품평회, 여자 품평회, 격을 높여서 하면 인생 맛도 더해집니다... 오늘 '여성의 날'을 축하하면서. '남성의 날'을 기대하면서...
이제 막 30줄에 들어섰지만 저 역시 '뜨끔합니다'. 관찰력이 뛰어나신 분 같네요. 영화등 연예계 쪽 분들은 워낙 특수한 케이스라 같은 방식의 해석이 적절한지는 의문입니다만 잘 읽었습니다. '고해성사' 할 상대가 아쉬운 아침입니다.
참 재밋는 여자네...010,5432.6783 맹랑하고 ..
이제 세는나이로 30, 만으로 29살에 접어드는 청년입니다.
글쓴분처럼 눈썰미가 있는 분을 좋아합니다.
눈썰미 있는 분이 쓴 글은 읽다보면 자신의 생각을 대신 정리해주는것 같아서
글이 어렵고 쉬움과 관계없이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지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읽으면서 뜨끔해어요.. ㅋㅋ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격
잘 적어 주셨네요. 갈등이 한참 되고 있습니다^^;
저도 이제 우리나이로 30세입니다.
무언가 새롭게 시작해도 너무 늦은 나인 아니겠죠?
비밀댓글 입니다
서른중반백수미혼.. 마구마구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는 사내남 왔다 갑니다 ㅋㅋ
이제 40에 막 접어든 한 남자입니다. 글 잘 보고갑니다. 주위에 30대 여자중 괜찮은 사람이 많습니다. 정말 치열하게 살고있더군요. 그들의 심정이 읽혀지네요.
머리를 차갑게 굴린다....
이 대목에서 걸리네요....
남자든 여자든.. 그냥 조용하게.. 평범하게 살게 놔두지를 않는군요.. 30대 초반이구요.. 이글을 읽으면서 현기증을 느낍니다... 가슴이 답답해 지네요.. 한편으로는 그러한 모습들을 "한번 똥줄좀 타봐라~" 라고 조롱하는 듯이 느껴지는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비밀댓글 입니다
참 글을 잘쓰시네요 시원하게 ..... 아주 멋스러우실거같은........
우리나라의 30대는 민주화 진전 이후에 태어난 세대라 비교적 자유분망함을 가지고 있는 세대지요..
그대 이름을
아키텍쳐 초보인 시절에 포럼을 읽으며
실무에 능하려고 몸부림하엿지요... 반갑네요^^**
결혼해서 애기 둘 낳고 살고 있는 삼십대 초중반의 남자입니다.
정리해서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사회에 진출한 시점으로부터 7~8년간 살아오면서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던것을 마치 내 일기처럼 잘 정리해서 쓰신것을 보고 뿌듯했습니다. ^^
마치 큰 누나에게 고민과 포부를 잔뜩 얘기하고 난 후, 우리 현명하고 자상한 누나가
간단명료하게 해주는 상담과도 같다 할까요?
어떤분인지 프로필을 보고 짐작만 할뿐 오늘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첨엔 남자분인줄 알았는데, 여자분 이신것 같구요..
기회가 되면 모시고 앉아 밤새도록 고해성사를 드리고 싶네요..^^
아직도 남아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잘 살려서 또다른 성장으로 비약시킬
방법을 알려주실것도 같구요..^^
대운하 관련글도, 새벽형 인간에 대한 글도 많이 동감합니다.
앞으로 새벽정신처럼 맑은 글 읽으러 많이 들르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비밀댓글 입니다
멋지십니다.. 30대의 마음을 절묘하게 표현하셨어요
흔들리는 30대 남자의 속성을 파악하실 기회가 많으셨군요. 그렇죠. 성숙하다고 하기엔 몬가 20프로 정도 부족하고, 그렇다고 청년이라고 하기엔 좀 더 현실에 눈을 뜬 그들.. 그러나 의식 놓지 않고, 계속 반추하는 삶을 살아 온 이들이라면 좀 더 휴매니스트인 40대, 50대의 멋진 늙은 남자가 되지 않을까요. 그들의 시간을 기대합니다.
30대의 강박관념을 제대로 보셨네요 386과 Y세대 사이에서 나름대로 도덕적 가치관을
지켜내가는 아름다운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고해성사 찾기 보다는 친구를 먼저 찾는 세대가 아닐까 합니다 조은글 감사합니다
스크랩 좀 해가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그러시지요. 출처만 확실하게 해주시면 공유하면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