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한 남녀관계 7계명
- Posted at 2008/04/19 17:49
- Filed under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남성여성인생가족
“남녀관계 행복해야 우리나라 행복하다”는 주장을 펴는 나를 보고
회의석상에 있던 남자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이 무거운(?) 여자가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나,
깜짝 놀라는 눈빛, 신선하다는 눈빛들이었다. 내가 너무 나갔나?
그런데 나는 이 나의 주장에 점점 더 설득된다. 물론 깨끗하고 믿음직한 정치, 활력 있는 경제, 경쟁력 높은 산업, 보람찬 교육, 기댈 만한 복지, 혁신적인 기술, 즐거운 문화, 의미 깊은 예술, 인간적인 도시환경 모두 중요하지만, 역시 인간살이 중에서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하고, 인간관계 중 으뜸이라면 남녀관계다.
일상생활을 둘러보자면 문제의 발단은 원천적으로 남녀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짝을 못 찾는 비애는 차라리 아직 기다리는 맛이라도 있다고 치자.
짝을 만난 후의 문제들은 도대체 끝이 안 보인다. 기대의 차이로 벌어지는 소소한 다툼, 역할의 충돌로 빚어지는 신경전,
권태로 빚어지는 지루한 소모전, 책임 충돌로 깊어지는 배반감, 성적 배신으로 빚어지는 증오 등, ‘웬수야 웬수’ 소리가 어찌 나오지 않겠는가.
(우리 집의 쿨한 남녀 고양이, 노깜과 흰재)
정말 남녀관계란 가장 원초적인 권력게임인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남녀의 권력게임은 가장 유치하고 또 가장 치명적이다.
***
사회적 문제의 발단 역시 남녀관계로 인해 빚어지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네온사인 휘황한 유흥업, 낯 뜨거운 대낮 러브호텔, 깊이깊이 구중궁궐 방으로 들어가는 은밀한 카페가 이토록 성행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남녀 사이란 뭐가 곪아도 한참 곪았다. 도대체 우리나라 남자 여자들은 집 밖에서 무엇을 찾으며 따로따로 헤매는 걸까?
만약 우리나라 남녀관계가 건강하다면 나는 우리의 업무 문화도 엄청나게 생산적이 될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나의 여자, 나의 남자와 같이 할 시간, 우리가 같이 만든 아이들과 같이 할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하는 시간 생산성을 엄청나게 따지게 될 것이다. 불필요한 업무는 줄이려 들 것이고, 원론만 맴도는 회의는 폐기할 것이고, 길에 버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온갖 아이디어를 짜낼 것이고, 9∼6 업무 시간 내에 일을 끝내기 위해서 남녀 공히 협력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시간 생산성이 낮은 이유 중 하나가 집 밖에 나간 남자들이 자기 맘대로 시간을 쓰는 관행 때문 아닌가 나는 의심한다.
만약 우리나라 남녀관계가 건강하다면 지금처럼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주려 드는 맹목적인 자식 사랑도 줄어들 것이다. 당연히 아이 돌보기보다 부부 같이 놀기가 더 즐거워야 하지 않은가. 부부 관계는 부모자식 관계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맹목적 보호가 결코 우리의 아이들에게 좋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 튼튼치 않은 남녀관계는 결국 잘못된 아이 섬김으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만약 우리나라 남녀관계가 건강하다면 과소비로 치닫는 성향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쓸데없이 폼 잡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소비행위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심리 역시 훨씬 줄어들 것이다. 아마도 광고에서 동성 간의 질투를 자극하는 광고 내용도 줄어들지 않을까, 물론 이성의 환심을 사는 ‘당신의 능력을 보자’는 광고 또한 줄어들 것임에 틀림없다. ‘아파트 값 경쟁’에 목을 매는 현상도 줄어들 될 것이다.
***
그렇다고 나는 남녀관계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생리학적 연구 결과와 개인적인 체험에 근거하여 이른바 통속적인 뜨거운 사랑이 그리 오래가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남녀 뜨겁게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회의와 믿음은 모순된 것이지만 그것이 남녀관계의 묘미 아닌가.
그래서 ‘쿨한 남녀관계 7계명’이 필요하다.
1. 서로 믿을 것.
2. 서로 기댈 것.
3. 서로 나눌 것.
4. 서로 안아줄 것.
5. 같이 일할 것,
6. 같이 놀 것.
그리고
7. 남녀 공히 홀로 설 것
이런 7계명이라면 정열적이지도 않고 화끈하지도 않고 뜨뜻미지근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쿨한 남녀관계는 이 시대에 각별히 필요한 정의 아닐까?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고 독립하기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고 스트레스 엄청 쌓이고, 반면 나눔과 신뢰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남녀관계는 가장 원초적인 관계다.
***
당신은 일곱 계명 중에 무엇에 가장 중점을 두는가? 자신의 성향이 나타나는 우선순위일 것이다.
나라면, 일곱 기준의 역순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홀로 서기’는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 의・식・주 제대로 못 챙기는 인간이란 남자건 여자건 영 탐탁지 않다.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에게 신경 쓰이게 하거나 부담감을 주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기대는 것’만큼 부담스러운 관계가 어디 있을까. 모쪼록 여자도 홀로 서고 모쪼록 남자도 홀로 서야 할 것이다.
나에게 ‘같이 놀기’는 아주아주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노는 궁합의 기본이 맞아야 하고, 같이 놀기가 점점 싫어진다면 이건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노는 방식이야 천차만별, 무엇도 가능하다. 남녀가 같이 하는 놀이로야 ‘섹스’가 최고지만, 이것 한 가지만으로 어디 뜨거운 남녀관계가 가능한가. 전희건 후희건 남녀가 같이 노는 방식은 무궁무진하게 개발되어야 한다. 나와 나의 남자처럼 ‘토론’이 최고의 놀이이고, ‘땅 만지며 식물 키우며 놀기’, ‘불 피우기 장난’, ‘수산시장 같이 가기’, ‘맛집 탐험하기’를 즐기는 남녀도 있을 터이고, 다른 남녀는 또 다른 최고의 놀이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이 하는 프로젝트를 계속 만들면서 같이 일하고, 때때로 마음 열어 안아 주고 만져 주고, 서로 힘든 부분 털어놓고 서로 합당한 기준을 세워 나누고, 힘들 때 무게 실어 맘껏 기대다 보면, ‘믿음’ 적어도 ‘최소한의 인간적 믿음’이란 어차피 따라오게 마련일 것이다. “믿어, 못 믿어?” 하는 의심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게끔 되는 것, 이것이 종국적으로 쿨한 남녀관계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에 ‘남녀관계 행복 정책 프로그램’이라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
정책 프로그램으로 풀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TV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풀릴 일도 아니잖은가. 남녀관계는 가장 중요한 행복 소프트웨어다.
어떻게 우리 대한민국 남녀가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을까?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기본 아젠다가 될 만하지 않은가.
남녀여, 부디 뜨겁게 사랑하라!
*** 새벽 생각
나는 이명박 정부가 단행한 ‘여성가족부의 여성부 축소’에 대해서 아주 유감이다.
‘가족은 남녀관계의 기초’이니, 가족부 기능을 같이 가짐으로써 건강한 남녀관계의 초석을 다룰 수 있는데 말이다. 정히 필요하다면, ‘양성평등가족부’라고 바꾸어도 괜찮은데, ‘여성부’만 달랑 남긴 것은 정말 유감이다. 거대한 공룡 부처들이 으르렁대는 요즘, 그야말로 ‘새우등’이 되어버린 여성부는 요즘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안 보인다. 안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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