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단’ 한 사람만 꼽는다면 단연 엄마다 엄마.

엄마는 “짐은 질 수 있는 사람한테 온단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엄마의 수많은 명언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말이다. “아래 보고 살아!” 라고 아버지가 저녁 밥상에서 되뇌던 명언이 검약과 절제의 미덕 보다 어쩐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엄격한 계율로 다가왔던 반면, 엄마의 명언은 어쩐지 용기를 줬다. “그래, 질 수 있어! 나는 어떤 짐을 지어야 할까?” 하고 스스로 용기를 찾게 만드는 말이었다. 

말이란 그 사람의 삶이 바탕이 되어야 힘이 실린다. 엄마의 묘비에 적힌 문구처럼 엄마는 ‘무거운 짐을 가볍게 지셨다.’   

자식 열을 낳아 셋을 잃고 아들 하나와 딸 여섯을 키운 엄마. 지금 같은 저출산 시대라면 훈장이라도 받아야 하겠지만, 그 당시엔 ‘자식 많은 짐’에 더하여 ‘딸 많은 죄’까지 져야 했다. 나는 사춘기 시절에 엄마가 딸 많은 죄를 자처하는 게 영 못마땅했지만, 이제는 너무나 잘 이해한다. 그 역할이 일취월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딸들은 여전히 여자라는 원죄를 지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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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둘째 며느리임에도 불구하고 큰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큰며느리 역할을 하면서 대가족의 대소사를 돌보며 평생을 사셨다. 차라리 엄마가 애당초 큰 며느리였다면 의무에 더하여 권리까지도 누렸으련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역할은 하되 나서지 못하고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역할을 해야 했다. 엄마의 그런 위상이 안쓰러운 적도 많았지만, 그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일을 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엄마의 사전에는 ‘희생’이나 ‘봉사’라는 단어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필요한 그 일을 했다. 필요한 그 역할을 자청해서 했다. 이왕 해야 하는 일이라면 스스로 맡아서 그 일을 잘 하고 그 일을 즐기는 게 보람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나는 엄마를 믿었고 엄마는 나를 믿어주었다. 나는 엄마가 꿋꿋하게 그 자리에 항상 있을 것을 믿었고 힘들 때 기댈 수 있음을 믿었다. 엄마는 내가 꿋꿋하게 홀로 설 것을 믿었고 내 판단에 따라 짐을 질 것을 믿어주었다. 믿음을 받는 것만큼 큰 힘이 되는 것은 없다.

서울공대에 원서를 넣을 시절. 엄마는 남들이 그렇게 말리고 하물며 담임선생님도 말리고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셨음에도 불구하고, “니가 판단한 일인데.”하며 혼자 가서 원서를 넣고 오셨다. 나는 엄마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엄마는 정말 뭘 믿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도 나를 못 믿을 시절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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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대 시절



엄마는 내가 미국 유학 갈 때 큰아이를 열 달 동안 맡아주었는데, 엄마가 했던 말은 간단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니까.” 딸의 아이까지 열 달을 키워주었으니 엄마의 배는 정말 크디크다. 엄마는 내가 큰 배를 안고 임신 막바지에 일할 때도 “자기 하고 싶어 하는 일인데 뭘. 뱃속에 있을 때가 더 편하단다.”하고 간단히 정리해 주셨다.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교수를 하든지 연구소에 가서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할 시절에 내가 창업이라는 힘든 길을 택할 때에도 걱정이 태산 같으면서도 엄마는 “니가 선택한 길이니까.”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다. 누구도 흔쾌히 도와주지 않을 때 엄마는 쌈지돈까지 털어서 도와주셨다. 물론 엄마는 “잘해서 갚아야 해.” 라는 말을 빼놓지 않으셨다.  
  
남들은 당연히 비례대표를 해야 한다고 했을 때, 내가 2004년 정치 입문하자마자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고 하자, 엄마는 “네가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이니까.” 한마디 하셨을 뿐이다. 하지만 낙선한 뒤 보름 뒤에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에, ‘엄마가 속으로 은근히 힘드셨나 보다.’ 싶어서 나는 더 펑펑 울었다.   

지금도 사이사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힘들지? 잘 먹고 해라. 짐은 질 수 있는 사람한테 온단다.
그 어려울 때마다 엄마가 나를 안 믿어주었더라면 나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선택한 길, 내가 선택한 방식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가장 큰 믿음이다.

나는 나의 두 딸들도 믿어주려 한다. 딸들의 성공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딸들의 선택에 대한 믿음이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모든 딸들도 믿어주려 한다. 짐은 질 수 있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 믿는다. 성공이 아니어도 좋다. 네가 선택해라. 너의 선택을 믿어주련다. 너는 네가 선택한 짐을 짊어질 수 있단다. 짊어질 수 있기 때문에 너는 그 짐을 선택하는 것이란다.


짐은 질 수 있는 사람한테 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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