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공간 그리고 정치 :: 인사동 길을 만들면서 느낀 행복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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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2007년 5월 월간 중앙에 제가 기고했던 글을 재 편집한 글입니다.

내가 행복해할 때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할 때, 그리고 남들이 내가 한 일로 즐거워할 때다. 필연적으로 나는 공공적인 일을 좋아한다. 예컨대, 사적 건물 짓기보다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도시 만들기와 도시공간 만들기가 더 좋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한편, 더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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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2000년 인사동길 설계를 내 인생 중 인상적인 행복 순간 중 하나로 꼽는다. 설계부터 완공까지 2년 동안 긴장하고 애태우고 치열했던 매 순간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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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모에 당선된 날은 밤잠을 설쳤다. 인사동이란 이 중요한 서울의 공간, 내가 흠모해왔던 공간을 다루게 되니 얼마나 설레던지. 서울시에서는 길 위만 가꾸기를 주문했지만, 봄철이면 몇 곳씩 수도가 터짐을 알고 있던 나는 몇 달 동안 서울시를 설득하여 드디어 길 밑의 상하수도, 가스, 전기를 정비하게 했다. 중간에 욕 잔뜩 먹었고 남들이 몰라줘도 나는 뿌듯하다. 

사람들은 그 내막을 잘 모르지만, 바닥의 기왓장 색깔의 전벽돌을 깔게 하는데 얼마나 힘들었던지. 돌 깔자는 사람, 흙 깔자는 사람 등 갖가지이고 12가지 옵션을 검토한 후 내가 제안한 전벽돌은 깨져서 안 된다고 말도 많았다.


보고 시 당시 고건 시장이 외국도시에서는 벽돌이 깨져도 자연스럽다면서 설계자 제안을 받아들이자 해서 안심했던 순간도 잠깐이었다. 공사 시작하며 벽돌 샘플을 깔아놨는데, 전벽돌은 안 보이는 게 아닌가. 구하기 쉬운 유럽풍의 적벽돌이나 갈색 벽돌만 샘플로 깔린 거였다. 다시 동분서주해서 겨우 관철해냈다. 지금도 찻길 위에는 전벽돌이 꽤 깨졌지만, 여전히 인사동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남인사마당’ 만들기도 행복했다. 인사동길 자체는 워낙 폭이 좁은 편이고, 쓸 만한 광장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이곳이었다. 문제는 종로구청에서 이미 리노베이션을 했다며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두 방향으로 설득했다. 한편으로는 영 폐쇄적인 공간이어서 낮에도 술판이 곧잘 벌어진다는 문제를 제기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중화장실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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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만든 남인사마당은 종로와 바로 붙어 있어서 사시사철 사람들이 끓고, 거의 모든 인사동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별로 크지 않지만 쓸모 있는 마당이다. 내가 만든 공간 중에 가장 잘 쓰이는 공간이라 할 만하다. 행사가 열리는 남인사마당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그냥 행복하다.

공사 중에 조선일보에서 대문짝만하게 인사동길에 띄엄띄엄 놓은 물확 돌을 ‘세상에서 제일 커다란 재떨이’라고 비판하는 기사를 실어서 한동안 곤혹스러웠는데, 지금은 물확 돌 하나하나마다 관리하는 가게 이름을 박아 넣고, 여름이면 물옥잠화를 곱게 피우고 있다. 도시란 사는 사람들이 직접 가꾸어야 한다는 내 소신이 맞아들었으니 나는 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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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행복하지 못했던 사건도 있다. 공사 중에 차도 폭이 넓어져서 계획했던 나무 심기가 대폭 줄었고, 중간 중간 만든 작은 ‘텃밭’은 준공 몇 년 후에 결국 사라져 버렸다. 인사동 깊은 골목 속의 작은 텃밭들처럼 큰길에도 텃밭이 있다면 얼마나 좋은 도시겠느냐 하며 겨우 몇 개 만들었는데, 결국 관리 문제 때문에 사라져버렸으니 속상하다. 하지만 언제나 완벽하게 행복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 글을 읽는 블로거들은 짐작하시리라. 인사동길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어렵게 도전하고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미리 찾아내서 남을 설득하고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러니 사실 나는 언제나 행복하다고 해도 좋다. 일하는 과정 자체가 행복하다.

세속의 성공 잣대가 아니라 ‘행복 순간’의 성격에 따라 일을 선택하고 그 일에 전념할 때가 가장 행복한 것 아닐까. 가능하면 더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싶고,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하고 싶다. 그래야 나도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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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썬도그 2008/01/21 12:5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인사동 벽돌은 참 인상적입니다. 다만 자동차 안다니게 할순 없나 모르겠네요. 인사동가면 차 피하느라 짜증만 납니다. 벽돌도 차가 지나가면 깨지고요. 차좀 돌아가게 하면 하지 그리고 건축가님에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사동이 예전의 그 분위기가 아닌것 같습니다. 너무 현대화되었어요

    • BlogIcon 김진애 2008/01/21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차가 안다니길 바랬는데 그리 쉽지가 않네요. 설계 이후에 관리는 서울시의 몫이 되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하죠

  2. BlogIcon 썬도그 2008/01/21 12:58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참 김진애건축가님 티스토리 입성 축하드립니다. 바로 rss추가했어요.
    글 자주좀 써주세요. 건축이야기 듣고 싶어요 ㅎㅎㅎ

  3. BlogIcon 비트손 2008/01/21 13:2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여자친구가 서울에 올라온다고 했을때 데이트 코스로 다들 인사동을 추천해줬습니다.예술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에서 좋은 추억거리들을 많이 만들수가 있었죠. 그 곳에 바로 건축가님의 숨은 노력이 깃들어 있는 공간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