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무엇인가? 보통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이렇게 한번 물어보자. "이 집은 누구인가" 하고.
다른 느낌, 다른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집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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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한 책을 쓰면서 내가 <이 집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다. 통상 집을 창과 문과 벽과 지붕이 있는 물리적인 실체로 생각하지만, 부디 우리네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 보자. 정말, 집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또 사람을 보면 집이 그려진다.

우리 시대가 지어내는 집들이 마땅찮은 것은 아무래도 별로 사람 같은 모습의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파트들은 너무 모델하우스 같거나 호텔 같다. 잡지에 소개되는, 이른바 잘 지었다는 집들을 보면 너무 박물관이나 전시장 같다. 너무 폼만 잡는다.

이건 영 아니다. 너무 남의 눈을 의식한다. 남들이 어떻게 볼까에 너무 신경을 쓴다.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칭찬받을까에 신경을 쓴다. 자신만의 삶, 가족만의 모습을 집에 표현하는데 너무 주저한다. 나의 집이 나다운가, 우리 집이 우리가족다운가 생각해보자. (한옥이면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집은 층층이 쓴다.) 

..............................................................................집은 ‘추억’이다.

<이 집은 누구인가> 독자들이 책을 보고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옛날에 살던 집을 찾아다녀 봤어요!”였다. 왜 살던 집을 찾아보게 될까. 지나간 삶을 찾으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더듬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옛날에 그 풋풋한 추억을 떠올려보고 싶고, 지금 사는 집의 편리하기는 하지만 뭔가 아쉬운 부분을 달래보고자 하는 것이다.

추억은 우리를 만든다. 어떤 추억거리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아주 멋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별 맛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우리 가족이 아주 정겨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무덤덤하거나 냉랭한 가족이 될 수도 있다. 나만의 추억거리, 우리 가족의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집에서 산다면, 우리는 마음이 큰 부자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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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갑자기 나이드신 부모님께서 옛날에 살던 집을 가보시자고 했다. 다 없어지고 유일하게 인천 송화동의 한옥이 남아있었다. 부모님이 60여년 전 처음으로 갖게 된 '우리 집'이었단다. 옛 살던 집을 찾아보는 재미, 우리 사회에서도 계속되어야 할 터이다. 사진속의 동네는 한옥보전동네로 지정되어 지켜지고 있단다. 집에 새겨진 기억은 우리를 우리답게 한다. 마침, 그날 집에 있던 젊은 아들내미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집을 열어주어, 부모님은 모처럼 옛 추억에 잠기셨었다.)  


..............................................................................
집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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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를 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모습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 어떤 의미 있는 이야기, 어떤 정겨운 이야기, 또한 어떤 아픈 이야기, 어떤 힘든 이야기들이 담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집에는 우리 인생에서 겪는 모든 기쁨과 아픔, 그리고 괴로움과 슬픔이 담담히 녹아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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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빨강머리 앤> 시리즈 책을 그리 좋아했던 것도 그것이 인생 이야기이자 집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소설을 그리 좋아했던 것도 그것이 가족 역사의 이야기이자 그것이 펼쳐지는 집의 판타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박경리의 <토지>를 그리 좋아했던 것도 우리 전통 동네와 한옥이 빚어내는 무한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은 세가족집의 옥상에는 이야기들이 많다. 세상에, 무지개도 뜬다. 아래 사진)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집을 꿈꾼다

부엌은 ‘물과 불로 황홀한 장난’을 하는 ‘당신과 나의 놀이터’로 보자. 그렇게 생각한다면 부엌에 모든 가족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드나들게 부엌을 가족 사교장으로 중심에 놓고, 아무리 돈이 없어도 부엌에만큼은 우선적으로 투자할 것이다. 부엌이 행복하면 부부가 행복해지고 아이들이 행복해지며 우리 집이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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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는 모쪼록 구석구석이 많아야 추억이 많아지며, 어른들만 폼 잡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마음껏 어지르고 마음껏 술래잡기를 하는 집이 되어야 이야깃거리가 많아진다. 넓은 거실만 만들려 할 게 아니라 구석을 많이 만들자. 숨을 구석, 비빌 구석, 기댈 구석, 걸 구석 등.

아이들 방을 너무 조용하게 하지 말자. 오히려 비사교적이고 내성적인 아이가 된다. 모쪼록 아이들은 방에서 나오고 싶은 유혹을 견디며 스스로 공부를 해야 큰다. 아이들은 모쪼록 마음껏 자기 방을 어지르고 스스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언제라도 바깥에 나가 맘껏 뛰놀며 동네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아이가 되어야 나중에 크게 자란다.

부부가 행복해야 집도 건강하다. 마스터 베드룸을 멋지게 장식한다고 부부 사이가 행복해지나? 부부 사이의 온갖 사랑 몸짓은 집 곳곳에서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스치는 손길, 오가는 눈길, 같이 젖은 손, 어깨를 보듬는 팔, 상쾌한 뽀뽀가 집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지 한번 돌아보자.

동선 짧은 집은 나쁜 집이다. 체험 동선이 긴 집이 좋은 집이다. 사람들은 거닐면서 수많은 만남, 추억,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만나야 이야기가 생긴다. 어떻게든 동선을 줄이려는 아파트는 이제 다시 재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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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체험 동선이 길기 때문에 집이 아무리 작아도 답답하지는 않은 반면, 아파트가 아무리 커도 갇혀있고 답답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동선이 짧고 모든 게 다 눈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옥에서는 마당과 마루, 툇마루와 처마와 창문, 그리고 저 멀리 얼핏 보이는 한 조각의 하늘 때문에 항상 무언가 더 있을 듯한 기대감을 준다. 우리가 만드는 현대의 집에도 그런 기대감을 심어보자. 다 드러내는 게 아니라 어딘가 더 있을 듯한 기대심리를 불어넣어 서 집을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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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람, 집은 추억, 집은 이야기’임을 우리 모두 충분히 느끼고, 나와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를 만들고자 작은 것이라도 직접 실천에 옮긴다면, 분명 우리가 만드는 집은 지금과 같은 메마르고 상투적인 모습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집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사람을 보면 집이 그려진다.
                                 집은 사람이다.


*** 080617 김진애의 느낌.

'집' 얼마나 정다운 말입니까. 제가 지은 책 중에서 <이 집은 누구인가>라는 이름이 가장 맘에 듭니다. 당시 편집장과 보름 여 고민하고 마지막에 100여개 제목을 앞에 두고 2시간을 토론하다가 완전히 새로운 제목으로 태어난 '이 집은 누구인가', 정말 그럴 듯한 제목 아닌지요. 자화자찬.^^  
이 집은 누구인가 상세보기
김진애 지음 | 샘터 펴냄
사람 사는 집에 대한 열두 가지 생각을 담은 건축가 김진애 에세이집. 삶의 면면이 배어들고 사람의 마음이 표현되며, 정서가 녹아드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 책은 추억을 만드는 집에서부터 비밀의 장소가 많은 집, 에로스를 즐기는 집, 집을 고르거나 짓고 집을 관리하는 법까지 열두 가지 테마로 나누어 주제별로 집에 대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집에 대한 12가지 생각

1. 추억을 만드는 집                     - 어떤 기억이 생생하세요?

2. 체험 동선 긴 집이 좋은 집
       - 거니세요!

3. 구석구석 많은 집
                    - 비빌 구석, 숨을 구석을 찾아서

4. 중심 잡힌 집
                           - 마당, 마루, 그리고 부엌

5. 신(神)과 함께 사는 집
             - 어떻게 집에 마술을 부릴까?

6. 여자의 집, 남자의 집
               - '타인의 취향'과 '적과의 동침' 사이

7. 에로스를 즐기는 집
                 - 성(性)은 집의 어디에?

8. 나 역시, 집 역시 자연
              - 빗소리, 흙내음, 눈 소리

9. 시간의 갤러리가 되는 집
         - 이 집은 몇 시예요?

10. 길에서 창문에서 동네에서 보는 집
         - 얘, 나와 놀자!

11. 길들이며 사는 집
                  - 집 고르기, 집짓기, 집

12. 혼자 있어보는 집
                  - 정말 집의 주인이세요?



여러 사회 쟁점을 얘기하지 않으면 안될 듯한 압박을 받고 있는 중에, 중간에 깊은 호흡을 좀 쉬어야 겠습니다. 정말 벼랑끝에 다다른 것 같을 때에도 '집'에 오면 숨쉬기 편해지는 그 느낌을 위해서. 우리 사회를 우리 집처럼 만들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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