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수요일에 ‘오마이뉴스 TV'에서 점심시간에 숭례문 참화 현장에서 생방송을 하는 자리에 갔었다. 애통해하는 시민들로부터 아픔과 회한의 말을 듣는 자리였다.


현장에 가니 가림막이 거의 올라간 상태였다. 숭례문 높이는 22미터 정도인데, 가림막 15미터를 올리면 길에서는 전혀 안 보이게 된다. 내가 갔을 때 허물어진 2층 누각이 약간 보이는 정도였고 가림막 두 칸만 더 올리면 완전히 가려지는 상황이었다. 시민들은 남산 언덕 쪽에서 숭례문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발돋움을 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공사장 가림막이다. 육중한 가림막을 세우기 위해서 기초 콘크리트 타설 차까지 와있었다. 갑자기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심정을 매몰차게 뿌리친다고 할까. 맘껏 통곡하고 싶은 사람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아버린다고 할까. 

게다가 그 가림막 안에서 공사장 인부들이 탄 잔해들을 걷어내고 한켠에 마구잡이로 쌓아놓고 있었다. 정말 씁쓸했다. 그 잔해들을 어디로 갖다 버리려는 지, 폐기처분 하려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걸까?

빨리 가리고 빨리 치우고 싶은 당국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빨리 가리고 빨리 치우고 싶은 정치인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화재 현장 보호를 위해 가림막이 필요한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추가 상황에 대비해서 가림막이 필요한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왜 꼭 이런 공사장 가림막이냐 말이다. 이 가림막 위에 그림 그려 넣고, 사진 붙이고 난 후, 가림막 안에서 행정당국이 알아서 철거하든, 폐기하든, 복원하든 알아서 해버리겠다는 건가?

가림막을 치우라. 잔해를 보전하라. 숭례문의 참담한 모습 앞에서 선조들에게 석고대죄할 시간을 갖자. 애도하고 참회할 시간을 갖자. 

참상이 아프지만 잔해 가득한 참상을 직접 눈으로 봐야 아픔이 새겨진다. 숭례문이 무너진 바로 다음날 11일 오전에 참화 현장에 가니 시민들이 통곡하고 눈물콧물로 뒤범벅이고 남자들도 글썽하게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렇게 직접 체험해야 우리는 자랄 수 있다.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다. 

우리 모두 인간에 불과하니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할 수도 있지만, 그런 실수와 잘못이 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인간적 성숙도,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가 나타난다. 잘못을 인정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참회하고 같이 아파하자. 

부끄럽다고 가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가리면 뭐하나, 속은 흉한데.

보호 가림막으로 어떤 시민은 투명판을 제시하기도 하고, 어떤 시민은 메싱판을 제안하기도 하고, 어떤 시민은 일부라도 개방해야 한다고 한다. 숭례문이 복원되는 전 과정을 국민들이 보게 해달라고 하고, 적어도 애도와 참회의 기간만큼은 참상을 가리지 말고 우리 국민 모두의 거울로 삼자고 한다.

얼마나 지혜로운 국민들인가. 왜 정동일 중구청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런 생각을 미리미리 못하는가? 왜 인수위 사람들과 이명박 당선인은 국민의 지혜를 따라가지 못하는가? 왜 가슴 아프게 눈물 흘리는 국민들 앞에서 가림막부터 세우려 들었는가?   

숭례문이 다시 우리 국가의 상징으로 부활할 때까지 우리 국민들이 애도의 글을 담은 글을 달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적어도 사람 키 높이 만이라도 숭례문 성벽을 돌아 애도의 글을 달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숭례문이 다시 우리의 국보 1호로 온전하게 부활할 때까지 전 국민 사천 팔백만, 적어도 서울시민 천만이 이 애통하고 또 그리운 심정을 담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윽고, 그 애도의 글이 희망의 글로 바뀌는 과정을 보고 싶다. 투명하게 열린 과정 속에서 숭례문이 다시 부활하면 좋겠다. 

빨리빨리 복원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왜 복원에 꼭 3년을 못 박을 필요가 있는가. 화려한 준공식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시대에 사는 모든 국민들이 어딘가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비극 속에서도 그나마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지혜로운 선조로 인정받을 수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자.

뚝딱 해치워 버리면 안 된다. 정밀검사를 거쳐 잔해들의 보전과 복구 활용을 고민해야 한다.  복구 과정에서 차분하게 고증을 밟고, 현장의 폐허에서 살릴 것을 살리고, 사대문안 한양에서의 숭례문의 위상을 다시 살리고, 일제가 허물어버린 성곽과 묻어버린 기단 등을 다시 살려내고, 다시는 부주의함으로 문화유산을 잃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것만이라도 해야 한다. 숭례문 옆에 이 참극을 잊지 않을 수 있는 기념 공간도 만들 수 있다. 우리가 태워버린 숭례문 잔해를 소중히 보전하라.    

이 모든 작업을 부디 투명한 개방 과정 속에서 하라. 공사장 가림막부터 치우라.

(***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중구청이 가림막을 투명 강화 플라스틱으로 바꾸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 교체도 제발 급하게 좀 하지 말라. 좀 차분하게 일하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6년 숭례문 개방 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2층 누각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보도사진이다. 분명 숭례문 안에까지 들어가 봤던 이명박 전 시장, 방재에 한마디라도 독려를 했더라면 오죽 좋았을까?)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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