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과 ‘명박산성’
- Posted at 2008/06/12 08:49
- Filed under 김진애의 공간정치/공간정책-이슈
컨테이너 바리케이드, 해외토픽감이 되어버린 6.10 광화문네거리의 광경은 당장 ‘서울 도심 한복판에 웬 베를린 장벽’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경축, 21세기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플래카드가 붙여졌던 컨테이너 장벽이 설마 앞으로도 등장하려나?
난데없이 등장했던 베를린 장벽, 꽁꽁 언 냉전 시대의 1961년, 도대체 얼마나 통제하기 무서웠으면 도심 한복판에 높은 벽을 쌓고 도시 전체를 꽁꽁 벽으로 쌓았겠는가.
너무도 어렸던 나는 도시 가운데에 38선 같은 벽이 쌓여졌던 것으로 알았었다.
(일부 장벽은 역사유산으로 남겨놓고 다 허문 베를린장벽이 있던 자리에 위 사진 처럼 역사기록을 포장에 남겨놓았다.)
도시 가운데만 벽을 쌓은 것이 아니라 동독 영역 안에 있는 서베를린 도시를 사방에서 포위하여 벽을 쌓았던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방에 장벽으로 포위된 도시라니, 마치 옥쇄하는 성 같지 않은가?
6월 10일 컨테이너들, 일명 ‘명박산성’이라 불리던 성도 광화문네거리 한 군데 만이 아니라 서쪽 사직터널, 동쪽 율곡로까지 쌓여졌다니, 청와대를 완전히 포위했던 셈이다. 왜 해외언론들이 대서특필하지 않았겠는가?
컨테이너 2층 장벽은 베를린장벽보다 높았다. 미끄러운 공업용 그리즈를 잔뜩 발라놓긴 했지만, 담장 위 전기선이라도 없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물론 검문소는 골목골목 어김없이 있었다.
베를린은 항상 호기심이 가는 도시다.
장벽에 포위되었던 도시,
동독 속의 해방구 역할을 했던 도시,
‘자유’의 가치를 추구하는 도시,
냉전시대의 철학을 고민하던 도시,
지금도 ‘자유, 정의, 통합’의 상징이 되는 도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도,
히틀러의 도시,
동서분단을 겪었던 도시,
통일독일의 새로운 수도 등.
게다가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도시, 우리에게는 ‘동백림’사건의 도시, 남한 사람도 북한사람도 만난다는 베를린자유대학의 도시 등.
연전 베를린에 처음 갔을 때 가슴은 뛰었다. 베를린의 도시 정서는 어떤 것일까? 베를린 장벽으로 도시는 어떻게 변했을까? 장벽이 걷힌 후 도시는 또 어떻게 변했을까? 다시 수도가 된 후 베를린의 분위기는 어떨까?
오직 하루, 웬종일 걷고 또 걸었다. 베를린천사가 올라앉았던 탑, 브란덴부르크 문까지 새롭게 떠오르는 거리, 통합베를린의 대규모 개발인 포츠담 플라츠, 베를린장벽에 가까운 동네라서 낙후되었던 동네를 재생시켰던 1980년대 IBA 동네(도시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프로젝트다, 지금은 동베를린 지역으로 진출하여 동네 재생이 퍼지고 있다), 시청, 새로 리노베이션 된 통합의회, 의회 청사, 남은 베를린 장벽, 전시장, 유대박물관, 홀로코스트 광장 등.... (사진은 리노베이션 된 의회의 투명 돔이랍니다. 돔에서 시민들이 의회를 내려다 볼 수 있답니다.)
베를린은 ‘이념의 도시’다.
이념이라는 말이 싫다면 ‘이데아의 도시’라고 해도 좋다. 어느 공간 하나, 어느 건물 하나, 어느 조형물, 어느 글귀 하나도 다 어떤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표명하고 표현하고 담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베를린의 역사를 관통해왔던 인간 군상들의 욕망, 갈등, 탐구, 표현... 그 극단의 표현이 그 무작스럽고 야만스런‘베를린 장벽’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난데없이 등장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도 단 순간이었다.
설마 서울에서 컨테이너 장벽이 무너지기를 기대하지 않도록,
먼저 컨테이너 장벽부터 쌓지 말아야겠지.
*** 080612 새벽 김진애 생각
베를린은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호기심이 가는 도시일 것 같습니다. 우리의 역사적 상황과 유사한 궤적이기 때문이겠지요. 베를린에 가시면 역사를 읽으십시오. 베를린에서 가이드하시는 분들은 다른 도시 가이드들과 무척 다른 것도 느꼈습니다. 가볍지 않고 진지하고 도시 공간 속에 숨어있는 역사적 의미, 이념적 가치들을 차분하게 얘기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지요.
도시전문가인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시청 소속 공간에 전시하는 엄청난 모형이었답니다. 이 앞에서 설명하던 도시건축가는 어떻게 인상적이던지요. 건물 뿐 아니라 도시 공간 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 도시의 행정, 도시정치를 완전히 꿰고 있더군요. 그림 속에 보이는 모형 속에서 하얀 것은 보전대상. 나무색깔은 앞으로 건축할 것을 미리 계획해놓은 것이랍니다. 도시를 재건하면서도 베를린의 이미지를 보전하려는 노력이 놀라웠답니다.
그런데, 하기는 베를린 시의 정치 역시 내부 권력게임이 만만찮고, 그림속의 공간도 여러 역학관계로 곧 다른 곳으로 이전된다고 하더구만요.
베를린에는 여러 유학생들이 사시니, 제가 빠뜨린 것도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베를린 장벽' 없어진 베를린에서 서울의 컨테이너 장벽을 보니 어떠셨던가요?
설마, 내일 효순미선 촛불집회에 다시 컨테이너가 등장하진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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