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엄마’ 살아남기
- Posted at 2008/04/16 08:16
- Filed under 자라기 멘토링/멘토링
우리나라 고3 엄마가 자청, 타천 걷는 가시밭길. 아빠도 힘들지만 엄마만큼 힘들지는 않을 게다.
지금 나는 ‘고3 엄마’다. 두 번째 해 보는 거니까 그나마 노하우가 쌓인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철학을 지키면서 고 3 엄마의 정신 건강을 지키려고 갖은 궁리를 한다.
평소 나의 ‘엄마 철학’(또는 부모 철학)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모진 엄마 되기’다.
‘아이들의 홀로 서기를 도와주는 부모,
홀로 설 때까지 당분간 책임지는 부모,
아이들 커 가는 것을 보는 즐거움을 최대한 만끽하는 부모’가 나의 소신이다.
그래서 아이들 어릴 때부터 의․식․주를 자신이 챙기는 훈련을 열심히 시켰고, 아이들이 커서는 ‘첫째도 독립, 둘째도 독립, 셋째도 독립’을 부르짖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이들과 놀고 싶을 때는 언제나 아이들이 나와 놀아 주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두 딸은 나의 모짊을 은근히 비판한다.
“우리 반에서 밥할 수 있는 아이는 나뿐이야.”
중학 시절 작은딸의 투정 어린 말이었다.
옆에서 하는 큰딸의 말이 걸작이다.
“얘, 나는 너보다 더 어릴 때부터 했어.”
내가 훨씬 더 시간과 싸우며 살았던 시절에 첫째 노릇을 했으니 그렇다. 쯧쯧, 나는 겉으로 미안한 척해 준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래, 너희들 엄마 될 때 어디 두고 보자.’
***
고 3 엄마로서 나는 나름대로 고행을 정했다.
첫째 고행. 아침 등교 시 차 태워주기다. 큰애에게 해 줬듯이 작은애에게도 해 주고 있다. 2학년 2학기부터니까 13개월 동안이다. 차 태워주기를 질색하지만, 이때만큼은 해 주는 게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딸의 시간 절약은 불과 30분 정도지만, 나랑 보내는 20분 정도가 딸의 정서안정에 꽤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 아침 시간 30분 동안, 투덜투덜, 종알종알 딸의 불만도 듣고,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갈등 얘기도 들어 주고, 시험의 어리석음에 대한 비판도 듣고, 입시에 대한 비판도 듣고, 인생살이의 피곤함도 얘기하고, 시사 문제에 대해 토론도 한다. 이 아이가 나를 독점하고 내가 이 아이를 독점하는 귀중한 시간이다.
별 고행도 아니라고? 새벽에 몇 시간 집중해서 일하는 나의 작업 호흡의 중간 토막을 끊는 거니까 내게는 무척 큰 고행이다. 적어도 딸은 이 고행의 의미를 알고 있다.
둘째 고행. 영화 안 보기다. 고 2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서 약속을 했다. “너 시험 볼 때까지 한 편도 영화를 안 보마. 물론 ‘새 영화’다. 내가 보고 또 보는 영화 비디오는 예외로 한다. 나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별 고행 아니라고? 그렇지만 영화광인 나로서는 고행이 아닐 수 없다. 새 영화를 안 보니까 세상 사는 맛이 덜하기도 하려니와 하필이면 요새 왜 이렇게 좋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가 말이다. 주변에서 유혹도 하고 큰딸은 몰래 보자고 꼬드기기도 하지만 굳게 참는다. 나와 마찬가지로 영화광인 작은딸의 고행 길을 같이해 주는 엄마의 고행 아닌가. 적어도 딸은 나의 고행의 의미를 알고 있다.
엄마만 고 3 고행을 할 수는 없다. 아빠에게도 뭔가 고행이 있어야지. 밤늦은 학원 길의 차 태워 주기를 하면 좋겠지마는, 운전 알레르기가 심해져서 그것만은 죽어도 싫단다. 평소에 딸과 함께 하는 놀이도 없는 편이니까 금욕 고행을 할 것이 없다. 이런 아빠에게 필요한 것은 고행보다는 일감이다.
딸이 아빠를 위해 만들어 낸 일감은 ‘대학 분석하기’다. 복잡해진 대학별 요강을 분석하는 일을 맡았다. 내가 아빠에게 만들어 준 일감은 ‘대학 지원 작업’이다. 원서 사고 학교 방문하고 지원하는 일감이 아빠 몫이다. 각기 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한 달 정도 집중하면 되는 일감이다. 큰딸에게 해 줬듯이 작은딸에게 해 줄 것이고, 아빠는 두고두고 자기의 공헌을 자랑하리라.
매일매일 내가 도 닦듯 하는 고행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나는 계속 비판할 것임은 물론이다. ‘매일매일’과 ‘어쩌다’의 차이가 엄마와 아빠의 차이인가? 나는 이 차별을 아주 못 마땅해 한다. 그렇지만 대충 타협은 봤다. 나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
내 고3 시절, 나의 엄마는 엄마의 고행을 했다. 맛있는 음식을 대 주셨고(나는 별로 못하는 일이고, 기껏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 놓는 정도다), 밤공부를 들여다봐 주셨고(나는 잘 자야 일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매몰차게 일찍 자 버린다. 코까지 골지는 않으려 노력하면서.^^), 대학 시험장에 나와 주셨고(나는 절대로 안 하는 일이다. 시험장 밖에서 떨면서 기다린다고 아이가 시험을 잘 칠 리 없다), 불공을 드리며 기도를 하셨단다.(나는 기도 체질은 아니다.)
나의 고 3 시절에 나는 나의 고행을 정했다. 2학년 겨울방학에 접어들면서 소위, 결단을 했다. “절대로 소설 안보리라. 절대로 TV 안보리라. 절대로 영화 안보리라. 딱 12개월 간 오직 공부만 하리라”
나 자신이 대견할 정도로 나는 독하게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엄마 시대랑 지금은 달라!” 딸의 말이 맞기는 맞다. 요새는 공부를 멀리하게 하는 유혹이 정말 많다. 그러나 유혹거리가 많아졌을 뿐, 유혹에 지고 싶은 마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란다.
입시 공부 너무 힘들고 지겹다고? 그렇지만 입시 공부란 앞으로 네 인생에서 일어날 고행에 비한다면 아주 쉬운 편에 속할 거다.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바보같이 맹목적으로 입시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너는 우리나라 사람인데 뭘. 이른바 좋은 대학 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동감이다. 좋다는 대학 가려고 공부하지 말고 공부하다가 어쩌다 좋다는 대학에 들어가면 그것도 괜찮은 거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대학 꼭 갈 필요 없다고? 동감이다. 대학 가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 할 일은 무수하게 많으니 대학에 목을 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어린 조카들... 이 아름다운 아이들의 미래는....? 우열반으로 나눠어 고통을 받겠지... )
이 세상의 모든 고 3 엄마들. 너무 불공평한 고행을 하시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고 3 아빠와 나눌 것 나누셨으면 좋겠다.
고 3 자식에게 이렇게 떳떳이 말하셨으면 좋겠다.
“내 일이냐? 네 일이지!”
(*** 초등학교부터 0교시 수업, 우열반 차등운영 등 자율화를 하겠다는 어제 뉴스를 보고, 참 걱정된다 걱정돼. '자율화'란 미명 하에 '교육 욕망,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의 욕망만을 부추기는 우리사회' 퇴행하는 것 아닌가?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이 걱정이다. 공교육을 흐뜨러뜨리고 돈으로 사는 사교육을 방과 후 프로그램에 넣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어릴 때 충분히 놀아야, 세계화사회, 지식사회, 정보사회에서 유능하고 창조적인 인재가 태어날 터인데... 거꾸로 간다... 이 시대 부모들, 정신차려 교육정책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 맞서야 하는데, 우리가 '항상 고3 부모'되어야 하나? 재앙이다.
'모든 부모의 고3 부모화', 대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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