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해진 국민’ 속이지 말라
- Posted at 2008/06/02 15:49
- Filed under 김진애의 좋은 새벽/정치의 가치
요새 ‘똑똑해진 국민’이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미국쇠고기협상의 문제점, 대운하의 문제점, 민영화의 문제점에 대하여 세대와 계층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국민들이 또록또록 발언하는 현상이 인상적인 것이다.
마치 ‘똑똑해진 학생’들 같다. 과목신청부터 까다롭기 짝이 없고, 수업 중 질문 공세가 만만치 않고, 또 끝나면 강의 평가까지 까다롭게 한다. 똑똑해진 학생들 앞에서 교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정부와 정치권은 준비 제대로 하고 행동 제대로 해야 한다. 자칫하면 잘린다.
***
‘똑똑해진 국민’은 지금 기다리고 있다. 정부가 정신을 차릴지 여당 정치권이 정신을 차릴지, 기회를 더 주어야 할까 말까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기다린다.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지만 그래도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래도 기다리고 있다. 똑똑해진 국민이다. 무시하지 말라
‘똑똑해진 국민’의 뜻은 별 게 아니다.
‘정치와 정책이 자기의 인생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이다.
정치 세력 또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쉽게 선호하는 수단은 항상 두 가지였다.
- 정보 독점과 권력 독점
(언론을 통한 여론 통제와 권력기관 장악을 통한 으름장 통제. 지금도 진행되고 진행되려 하고 있는 중이다.)
- 소비 마취와 민생경제 으름장
(사회본질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거나, 경제 어렵고 민생 어렵고 일자리 찾기 어려우니 자기 일이나 하라는 식의 으름장)
똑똑해진 국민을 막을 수 없는 시대다.
디지털 시민, 1인 미디어, 웹 네트워크 삼총사 덕분이다.
첫째, 디지털 시민
휴대폰, 디카, 비디오 장비를 갖춘 시민들 앞에서 감출 수 있는 게 없다. 이번 촛불시위 집회에서 온갖 사건들을 직접 취재한 사람들은 전문 기자들 이상으로 시민들이었다. 이런 시민 제보가 기사가 되고 심층 취재가 되고 시민들은 다시 용기를 낸다. 서울대 음대 여학생에 대한 전경 구둣발 폭행사건도 이게 아니면 잘 알려졌겠는가.
둘째, 1인 미디어
이들 시민은 바로 미디어가 된다. 오마이뉴스에 휴대폰 장면을 보내고, 블로그에 글을 직접 쓴다. 강동구 김충환 국회의원의 수행원의 시민 폭행 사건도 이 글 아니면 알려졌겠나? “어디 국회의원 앞에서 난리야?” 라는 김충환 의원, “우리가 아직도 야당인줄 알어?” 정말 가관이다. 1인 미디어 시민 앞에서 감출 곳이 없다.
셋째, 웹 네트워크
블로그 네트워크, 아고라 네트워크, 인터넷 신문 네트워크. 이런 네트워크가 있으니 예전처럼 제도권 언론에만 목을 맬 이유가 없다. 이런 웹 네트워크에서는 댓글이 자정 기능을 한다. 아무리 알바가 난리를 쳐도 내용이 진실성이 없으면 계속 난리를 부릴 수 없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5월 2일 이후 내가 정보를 취득한 순서는 대개 이렇다.
1. 포털 뉴스를 대강 훑어 본다.
어떤 기사가 첫 화면에 뽑혔는지 본다. 이른바 조중동, 경향/한겨레의 균형이 잡혀있지 않으면 그 신문들을 찾아본다. 다음과 네이버의 성향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2. 생생중계를 보고 싶으면 ‘오마이뉴스’에 간다.
현장성이 오마이뉴스의 생명이다. 정리된 논평을 보고 싶을 때는 ‘프레시언’에 간다. 상당히 균형적이고 합리적인 논평을 차분하게 싣는 인터넷 신문인데, 하도 답답한 상황이 벌어지니까 최근에는 논평가들이 좀 격해지기도 했다.
3. 블로거뉴스를 체크한다.
정말 너무나 생생한 뉴스들이 올라온다. 그야말로 전천후로 올라오기 때문에, 스펙트럼을 보기 아주 좋다.
4. 아고라 청원에 들어가본다.
어디로 이슈가 가는지, 국민들이 어떻게 분통을 터뜨리는지 알기 쉽다. 격한 청원도 많지만 그런 청원에 숨은 의미를 파악하기 좋다.
대통령과 한나라당 대표가 아무리 폼 잡고 만나면 뭐하나? 똑똑해진 국민들은 그 폼 잡는 데 감동하는 게 아니라 어떤 진정성 있는 결론이 나오는가에 관심 있을 뿐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사과를 한다고 고개를 몇 번씩 숙이면 뭐하나. 똑똑해진 국민들은 립서비스를 금방 알아챈다. 그렇게 장관고시 하지 말라고 했지만 했다, 지금 그렇게 관보 게재하지 말라고 하는데 한다고 한다, 몇 장관들 목 날리면 국민들이 다시 어리석어지나? 미국과의 재협상은 없이 어떻게든 우리끼리 해보겠다고 하면 국민들이 어리숙 한 척 넘어가 줄 것이라 생각하나?
똑똑해진 국민, 속이려들지 말라.
똑똑해진 국민의 힘, 아주 무섭다.
*** 080602 오후 김진애 부글부글 끓어 씁니다.
오늘은 좀 조용하게 정부에게 시간도 주고 정치권에 호흡 좀 가다듬을 시간을 주며 기다리려고 했는데, 오전 대통령과 강재섭 대표 만남을 보니 이건 ‘친박연대 어찌 처리할지’에 온통 관심 가있고, 게다가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 오만불손 폭력/발언에 끔찍하고, 물대포에 눈 다친 시민, 고막 찢어진 시민, 군화발에 짓밟힌 여대생 뉴스에 부글부글 끓어 씁니다.
지금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보자에 중심이 가있는 것 같아서요. 야당 의원들도 참 답답하지만, 한나라당 의원들 자주 방송에서 듣게 되는데, 도대체 마음은 콩밭에 가있는 것 같습니다. 입으로는 잘못했다, 위기다, 민심을 듣겠다 하지만, 저 오만방자함은 뿌리 깊디 깊은 것 같아서, 걱정 또 걱정. 이러다 6월 3일 뭔가 발표한답시고 문제만 더 키우는 거 아닐지...
*** 080603 화요일 새벽에...
드디어 지난 밤, 관보게재만큼은 보류한다는 발표가 나왔군요. '시간벌기'용만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대운하 보류?' 같은 날 국토해양부는 공개적으로 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청와대는 보류(?)라고 하고, 이런 혼선은 해도해도 너무 심합니다. 청와대가 총괄조정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군요. 여하튼, 조금 한숨 돌리고 눈부릅뜨고 보는 똑똑한 국민 역할을 해야겠지요?
지난밤의 우중 촛불집회 사진은 정말 '짠'하더군요. 마치 <인정사정볼것없다> 영화에서처럼 천둥번개 몰아치는 우박같은 빗속에서 우비쓰고 우산쓰고 촛불든 시민이라니... 어떻게 그렇게 사진이 멋지던지... 감기 조심하세요. 밤에는 꽤 쌀쌀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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