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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신시키는 6가지 요령

요즘 시대에 우리는 누구나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다. 국제외교를 담당하는 외교관뿐 아니라, 해외비즈니스, 유학, 여행 뿐 아니라 해외상품에 대한 구매를 하고 인터넷으로.....

혁신도시, 적극적으로 승계하라

내 그럴 줄 알았다. 이명박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에 대해서는 참여정부의 맥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책 이름을 ‘균형발전’에서 ‘지역발전’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광역경제.....

기록해야 쌓이는 노하우

Document your own history. 자신의 성장을 가장 성의 있게 지켜보는 사람은 자기여야 한다. 자기 기록이란 자신의 책임이다. ‘자신의 역사가 바로 자신’이라는.....

'딸‘은 완벽하다

나는 딸딸 엄마고 나의 남편은 딸딸 아빠다. 아들만 있는 엄마 아빠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딸의 존재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다. 기를 때 ‘아.....

도시에서 길은 가장 중요하다. 길은 건축보다 더 중요하다. 사람들이 만나고 즐기고 편하게 느끼고 재미있어 하는 길이 있으면 그 도시는 행복한 도시다. 그런 도시에서 사람들은 행복해한다. 

사람은 가장 중요하다. 도시도 건축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사람을 위압하거나 눈으로 감탄하게 하는 건축이 아니라 사람이 편안해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즐거워하는 건축이 가장 좋은 건축이다. 

‘길로 만든 건축’인 인사동 쌈지길은 그래서 도시와 시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건축물이다. 눈으로 보는 건축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인사동 쌈지길은 그래서 건축의 본연에 가장 충실한 건축물이라 할 만하다.

‘쌈지길’에서 행복한 사람들

상업공간이자 복합문화공간인 ‘쌈지길’에서 사람들은 행복하다. 인사동길에서 한 걸음만 살짝 들어오면 꽤 너른 마당이 있다. 제일 먼저 사람들이 눈에 띈다. 4층 까지 이어진 경사길에 이어져 있는 올망졸망한 가게들의 쇼윈도를 보는 사람들이다. ‘뭔가 재미있겠구나!’ 호기심이 든다. 경사길을 따라 오르며 사람들에 합류한다. 아기자기한 소품들, 공들여 만든 장식품, 우리 전통의 오방색과 자연소재들이 어울린 세련된 전통공예품들을 아이쇼핑하다가 여기저기 가게를 드나들다보면 시간을 잊어버린다. 

쌈지길은 이 경사길을 ‘오름길’이라 부른다. 제주도의 ‘오름’이 생각나는 정겨운 이름이다. 쌈지길이라는 이름 자체도 정겹지만 한 오름, 두 오름, 세 오름, 네 오름 하는 이름도 정겹다.
 
네 오름을 오르다 보면 여기 저기 작은 공간들이 다가온다. 이리로 빠지면 작은 정원이고 저리로 빠지면 계단길이고, 조금 더 오르면 바닥이 나무길로 바뀌다가 또 흙길로 바뀐다. 조금 더 오르면 ‘하늘정원’에 닿는데 손바닥만한 크기의 정원이지만, 인사동의 하늘을 안는다. 어스름한 석양에 이 하늘정원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어둑어둑해지는 주변을 느끼면서 두런두런 노닥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가롭다. 도심 한가운데 아주 작은 공간에서도 이런 한가로움이 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쌈지길의 매력이기도 하다.

쌈지길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얼마나 될까? 평일에는 하루 6천 여명, 주말에는 만 여명을 넘는다고 한다. 인사동의 유동인구가 평일 6만 여명, 주말에는 10만 명 정도라고 하니, 인사동을 찾는 사람 중 적어도 10%는 쌈지길을 들러 가는 셈이다. 쌈지길은 인사동의 명실상부한 명소가 되었다.

인사동과 쌈지길의 만남

쌈지길은 인사동과 많이 닮았다. 쌈지길이 ‘길로 만든 건축’이라면 인사동은 ‘길로 만든 동네’다. ‘인사동길’이라 불리는 큰 길보다 작은 골목들 속에 인사동의 더 큰 세계가 숨어있다. 열두 큰 골목과 열두 작은 골목으로 꼬불꼬불 꺾이고 굽은 골목, 폭 1미터에서 3미터 사이의 작은 골목들이 얽히고설켜있는 미로 같은 골목이 인사동의 매력 포인트다. 그 작은 골목들에 옹기종기 늘어서 있는 작은 가게들, 갤러리들, 색깔 있는 식당과 곳곳에 앉아 쉴 곳, 담장 옆의 작은 화단과 텃밭들이 인사동 골목의 특색이다. 그 골목의 기분이 그대로 쌈지길의 공간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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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길과 쌈지길이 만난 것은 행운이다. 쌈지길은 인사동에 있기에 성공할 수 있었고, 인사동은 쌈지길을 만나서 더 인사동다워질 수 있었다.

2000년 나는 인사동길 설계를 하고 한참 공사 안팎을 돌보고 있었는데, 쌈지길 땅이 팔린 것을 알았다. 이 땅은 인사동에서는 꽤 큰 땅인 편이다. 땅의 안쪽에는 꽤 큰 한옥이 있었는데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길 쪽을 따라 올망졸망 늘어선 작은 가게들의 숫자는 열두 개. 약 50미터쯤 늘어서 있으니 인사동 전체 600미터 중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가게들이다.

이 땅이 어느 부동산회사에 넘어간다는 소문들이 무성해서 인사동의 터줏대감들인 열 두 가게 주인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을 터에, 패션 과 디자인 브랜드를 갖춘 (주)쌈지가 이 땅을 인수했다고 결정이 났다. 열 두 가게 주인들은 시위를 하기도 하고 이 땅에서 가게를 계속 하게 해달라고 서울시에 청원도 넣고 여러 시끌벅적한 과정들이 있었다. 건축주 천호균 사장은 아주 지혜로운 결정을 내렸다. 건물을 새로 짓더라도 열 두 가게의 영업권은 그 자리에 그대로 확보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결정은 인사동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한, 정말 지혜로운 결정이었다.

열두 가게를 그 자리에 그대로 살리겠다는 결정이 쌈지길의 설계 개념을 리드했는지도 모른다. 쌈지길은 인사동 특유의 성격을 그대로 살려나갔기 때문이다. 인사동 골목길을 따라 작은 가게들이 이어지듯이, 오름길을 따라 60여 개의 가게들이 이어진다. 만약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처럼 쌈지길을 내부공간으로 만들었더라면 쌈지길은 별 성격 없는 상업시설에 불과하게 되었을 것이다. 인사동에서처럼 쌈지길에서는 모든 가게가 노천 길에 면해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햇볕이 나면 나는 대로 그에 따라 오름길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하늘정원에서 소나기를 만나는 장면은 아주 감칠맛 난다.  
 
건축가의 쌈지길 건축론

쌈지길을 설계한 건축가 최문규(미국 건축가와의 공동작업)는 설계 개념을 잡고 풀어내기는 아주 쉬웠다고 한다.

“인사동처럼 재료를 소박하게 쓴다, 인사동처럼 길을 만든다, 인사동처럼 가게를 작게 많이 만든다, 인사동처럼 오밀조밀한 공간을 만든다, 인사동 골목처럼 작은 화단과 텃밭을 많이 만든다.” 

그런데 가장 어려웠던 것은 관할 구청의 건축심의 과정이었는데, 전통문화지구인 인사동에 한옥 형태를 지어야 한다는 은근한 압력이 있었지만 꼭 한옥의 형태를 하지 않더라도 한국적인 공간과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설득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건축가로서 꼭 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은, 열 두 가게 지붕을 테라스처럼 만들어서 사람들이 인사동길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게 하고 싶었는데, 구청에서 지붕을 만들라고 해서 못한 것이란다. 허가 받을 때 경사지붕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지붕대신 땅을 덮어서 그 위에 이끼며 덩굴 식물을 심어서 오히려 향토적인 분위기가 살아난다.  

시공자인 (주)장학건설 대표 정세학은 설계자의 의도인 ‘단순한 배경 장치로서의 건축’이라는 개념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전벽돌과 노출콘크리트와 나무’ 딱 세 가지 재료만 쓰는 것이라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치밀하고 정교한 시공이 필요했고, 오름길처럼 외부에 노출되는 공간이 많아서 더욱 치밀한 시공이 필요했다고 한다.

좋은 건축가와 좋은 시공자가 만나고 싶어 하는 좋은 건축주. 사실 쌈지길은 좋은 건축주 덕분에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쌈지의 천호균 대표와 현재 쌈지길의 대표 천호선이 이들이다. 바로 그 동네에 필요한 바로 그 공간을 기획해내는 안목을 갖춘 건축주다.

회사 이름 ‘쌈지’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자그만 주머니에 보물을 가득 담는 것처럼, 쌈지는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대중적인 거리문화의 풍요로움에 착안하여 패션과 악서세리, 그리고 생활소품에 파격적인 발상 전환을 가져온 디자인으로 국내와 해외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 회사다.

쌈지는 전통공예와 디자인 소품을 다루는 마켓플레이스를 착안해서 서울의 인사동, 대학로, 홍대앞에 각기 하나를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인사동에만 프로젝트 결실을 맺었다고 한다.     

예술과 공간의 기발한 만남

‘쌈지길’에서 파는 상품들은 디자인이 파격적이면서도 친근하다. 뭔가 우리 옆에 항상 있는 것 같지만 또 새롭게 보인다. 파는 상품 뿐 아니라 공방에서 직접 참여해서 만드는 것도 있다. 페인팅이나 소품 디자인 공방이다. 인사동에 정말 있음직하고 있어야만 하는 공방 개념이다.
 
쌈지길은 건축물 자체가 심플하고 소박해서 오히려 아주 좋은 공간 무대로서의 효과가 더 살아난다. 쌈지길은 무대이고 사람들과 쇼윈도와 상품이 주연이다. 상업건축에서 갖추어야 할 기본을 품위 있게 지키고 있다. 공간 곳곳에 자연스럽게 설치된 공간장식품들도 우리의 허를 찌르게 평범한 듯 하면서도 기발하다. 예컨대, 계단실의 중앙을 타고 피어오른 커다란 꽃들, 입구에 가게 표지판들을 마치 문패처럼 우리말로 써서 조각 문패처럼 만든 것, 하늘을 수놓는 깃발들, 초등학교 복도에 있을 듯한 벤치에 화려하게 칠한 색채, 스텐리스 쟁반과 양은 쟁반으로 만든 모빌 장식품 등, 하나하나 기발하다.

마치 ‘모든 사람은 디자이너, 모든 것은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쌈지길은 평범한 우리들의 삶에 숨어있는 디자인을 재미나게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세련되고 쿨하고 외국 냄새 물씬 풍기는 명품 브랜드 매장과는 얼마나 다른가. 차원이 다르고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다.


쌈지길에서는 어느 누구도 편하게 느낄 수 있다. 쌈지길에서는 어느 누구도 주눅 들지 않는다. 쌈지길에서는 모든 사람이 호기심을 발동한다. 쌈지길에서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다. 한국사람들은 물론 외국사람들은 더욱 더 재미나 한다. 나이든 어르신도 물오른 젊은이들도 멋모르는 아이들도 재미나 한다.   
 
건축이 없는 건축, 사람이 주인인 건축

건축가 최문규는 쌈지길을 완공한 후에 여러 상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쌈지길에는 건축이 없다’는 평을 건축가들에게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쌈지길은 건축적 권위나 건축적 허세를 벗어던졌다는 얘기이고 그 점에서 건축가들의 불평을 사기도 한 모양이다.

하지만 건축이 없는 건축, 사람이 주인인 건축을 만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지금도 쌈지길은 끊임없이 변한다. 간판도 변하고 인테리어도 변하고 일부 외관도 변한다. 하지만 쌈지길은 상투적인 상업건축으로 변하지 않고 여전히 기품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사려 깊게 만들어놓은 간판, 인테리어 지침이 작동하는 이유도 있지만, 쌈지길 건축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공간의 품격과 건강한 공간 골격, 배경으로 존재하는 건축적 겸손함 덕분이다. 이런 건축적 지혜가 앞으로 우리의 건축에 시사하는 바 크다.

여하튼 우리는 ‘길로 만든 동네, 인사동’이 있어 행복하고, ‘길로 만든 건축, 쌈지길’이 있어 행복하다. 말로 하기 보다는 직접 쌈지길의 마당에 들어가고, 오름길에 오르고, 하늘정원에 앉아보는 것이 최고다. 



쌈지길에 대한 간단한 소개

위치 :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38번지(인사동)
규모 : 대지면적 454.72평, 연면적 1,249.60평, 지상4층 지하2층
용도 : 근린생활시설 및 문화 집회시설
구성 : 최소 3평 이상의 가변적 공간의 작가 공방과 문화상품의 직영매장과 작가별, 분야별
단독매장형태로 전체 60여 개 가게로 이루어진 공예, 디자인, 전승문화의 종합문화 콘텐츠
건축가 : 가아건축 최문규 + 미국 건축가 가브리엘 크로이쯔
건축주 : ㈜쌈지 천호균
시공사 : ㈜장학건설 정세학
수상 :
 - 2005년  한국건축문화대상 특선
 - 2005년  제23회 서울사랑시민상 본상
 - 2005년 미국 AIA 협회 메릴랜드 디자인 어워드
 - 2005년 미국 AIA 협회 볼티모어 디자인 어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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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콤플렉스, 성공 콤플렉스 = 이명박 콤플렉스?

 “아니, 너희 나라는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는데 무슨 영어 교육이 그렇게 큰 이슈냐?”

외국인이 하는 말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한 나라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웬 영어타령이냐!

대통령직 수행을 준비하려면 대비할 게 오죽 많은가. 굵직굵직한 국정과제들에 집중해도 바쁜 판인데, 무슨 영어몰입교육 운운인지 모르겠다. 국사 과목까지 영어로 가르친다고 공약했다가 영어 과목만 영어로 가르친다고 후퇴한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국민성공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이명박 당선자의 성공 콤플렉스에 국민을 중독시켰다면, ‘영어몰입교육’은 이명박 당선자의 영어 콤플렉스에 국민을 중독시키려 하고 있다. 마치 ‘사회적 성공 못하면 국민 자격 미달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생활 영어 못하면 국민 노력 부족이다’라고 하는 듯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대다수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 콤플렉스를 퍼뜨리는가.

바로 보자. 대다수 국민들은 절대로 이명박 당선자 또는 인수위 사람들처럼 성공할 수 없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수도, 그렇게 승승장구 할 수도, 그렇게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도 없다. 대다수 한국 국민들은 절대로 영어를 편하게 할 수도 없다. 혹시 영어권 식민지 생활을 30년 이상 하면 모를까.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시민들이 영어를 못해서 불편해한다”고 하는 이명박 당선자의 말은 전형적인 식민지적 사고다. 외국인들이 자국인들과 편하게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나라들은 대개 영어권 식민지를 거친 나라들이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 홍콩, 두바이 등. 이들 나라들이 세계화 시대에 다른 나라들보다 관광 산업, IT 산업, 유통 사업들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아이러니지만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영어권 식민지 생활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세계화 수준과 함께 이른바 일반 국민의 영어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네덜란드나 핀란드에서도 영어 못하는 국민들이 많다. 다만 그들은 영어 콤플렉스에 걸려있지 않다. 떳떳하다. 우리처럼 영어 못한다고 자리를 피하거나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아는 단어 몇 마디로도 유쾌하게 소통한다. 정 통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데려온다. 여하튼 궁극적으로 통한다.

네덜란드에서 델프트라는 작은 마을의 시청 앞 광장 시장에서의 경험.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남대문 시장통 아줌마 같은 가게주인이 하던 영어는 단 두 마디. ‘홧 두 유 원트?’와 ‘굿’, 그리고는 알지 못할 네덜란드 말로 설명하더니 계산기에 찍힌 금액을 보여준다. 나는 샌드위치 잘 샀고, 그 아줌마 분위기로 샌드위치 맛을 알아챘고, 계산도 잘했고, 네덜란드에 대한 인상도 아주 좋아졌다.

도대체 우리 국민의 몇 %가 영어를 잘해야 하나? 잘 모르겠지만, 이것은 인수위가 제시해야 할 수치 아닌가? 영어몰입교육을 수조원의 재정을 들여 ‘국가 프로젝트’로 만들겠다고 한다면, ‘생활영어를 편하게 한다’는 막연한 목표가 아니라 ‘어떤 전문 수요, 어떤 산업 수요, 어떤 영어 역량 수요’가 필요한지 정확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우리 사회의 영어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일화들은 수없이 많다. 영어 단어 섞어 쓰는 것도 좋지 않게 봤던 적이 얼마 전인데 언제 이렇게 변했나?   

얼마 전 신문에서 정몽준 특사가 부시 대통령과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눴고 이명박 당선자가 외국 기업인들과의 회의에서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눴다는 둥 칭찬성의 기사가 나왔던 적이 있다. 참 적절치 않다. 언론은 오히려 통역을 안 쓴 것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해야 했다. 어떤 경우에나 외교란 통역을 통해서 해야 한다. 첫째, 국익을 위한 정확성을 기하고 둘째, 국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이고, 셋째, 공적인 기록을 위해서다. 준비된 연설문을 읽는 자리나 사교 자리가 아니라면 통역을 통하는 것이 프로토콜의 정석이다. 이런 프로토콜을 어기면 오히려 아마추어 외교라고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영어가 여전히 불편하다. 영어로 박사논문을 썼고 국제회의에서 발표하고 국제 비즈니스도 처리할 정도이니 남들은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전문적인 일, 확실한 업무 처리가 필요한 경우에, 예컨대 협상이나 계약 업무에서, 나는 전문 통역의 힘을 빌린다. 나의 영어는 어디까지나 제2 외국어 영어 사용자의 수준일 뿐이며 내가 아무리 영어에 상대적으로 익숙하다고 하더라도 체크용, 사교용, 준비용으로 영어를 쓰는 것이 정상이고, 공적인 업무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전문 통역이 필요하다.  

생활영어를 본토 발음으로 할 수 있다고 해서 아무 일이나 맡지 못한다. 영어 역량과 직능 역량은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업무들은 영어 역량 때문이 아니라 직능에 필요한 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하는 업무에서 영어가 필요한 일은 5% 미만에 불과하다. 영어를 못하더라도 나는 내 업무를 할 수 있다.

물론 영어 역량과 직능 역량이 동시에 필요한 직업들이 있다. 그런 역량이 필요한 수요는 초중고를 마치고 하는 생활영어 수준이 아니라 상당한 고급 수요다. 인수위는 준비 없이 나서지 말고 새로 출발하는 교육부에 어떤 수요가 필요한 것인지 일단 분석하게 하고, 그에 합당한 영어 교육 방식을 고민하게 해야 한다. 말하기, 듣기, 쓰기 역량이 모자란 것은 비단 영어 교육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 전반의 문제다. 우리말로도 제대로 말하고 듣고 쓰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영어로 잘 할 수 있는가?  

영어 잘 한다고 전문 역량이 모자라면서도 설치는 전문가들이 가끔 있다.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정말 꼴갑이라 눈꼴시다. 눈꼴신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문 역량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더 우려된다. 이런 사정인데, 영어 잘한다고 국가에서 교사로 채용해주고 병역 특례까지 준다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겠는가? 직능 내공은 없이 영어 입만 살아있는 사람들이 온갖 거품을 만들어낼 것 아닌가?

하나 더 지적하자. ‘시장’을 중요시하는 이명박 정부 아닌가? 왜 영어에 대해서 공급 주도형이 되고자 하는가?

영어 수준을 높이려면 오히려 ‘제대로 된 영어 수요’를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컨대, 영어 전용 경제자유구역, IT 국제정보 산업, 통역 서비스 강화, 택시와 여행 가이드, 서비스 산업(법률, 컨설팅, 디자인 서비스 등)에서의 영어 사용 수요를 높이면, 국가에서 공연히 난리칠 필요 없이 그런 직능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영어를 습득하게 마련이다.     


평소의 내 소신인데, 오히려 영어 시험으로 하는 모든 선발 방식을 없애는 것이 좋다. 공무원 시험이나 직업 채용에서는 특히. 영어 잘해서 채용된 사람들이 일을 잘하리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익시험, 토플시험’도 모자라서 이제 국가영어평가제도까지? 아니 영어 교육 광풍으로 대다수 국민을 무기력하게 만들려고 작정했나? 이명박 당선자와 이경숙 위원장은 정신 차리기 바란다. 

바로 보자. 국민 대다수에게 영어는 결코 필수가 아니다. 대다수 국민이 영어를 못해도 상관없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마찬가지로, 대다수 국민이 이명박 당선자처럼 외형적 성공을 하지 못하더라도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이명박 콤플렉스 = 성공 콤플렉스, 영어 콤플렉스’가 우리 국민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지 않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을 ‘자발적 영어권 식민지’로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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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오렌지, 오뤤지, 아~륀쥐... 우리말은 어디로?

    Tracked from 민주주의는 소중한 것!! 2008/02/01 03:18  삭제

    외래어와 외국어 외래어와 외국어는 다르다. 외래어는 ‘국어의 체계에 동화되어 사회적으로 그 사용이 허용된 단어’로서 국어의 한 부분이다. 물론 외국어는 말 그대로 외국에서 쓰이는 말로 국어가 아니다. 이 초등학교 상식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오뤤지’ 사건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미국에서 ‘오렌지’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듣고, ‘오뤤지’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알아 듣더라며, 외래어표기법을 바꾸자고 주장했다. 불행히도 인수위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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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여름날 2008/01/31 12:0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이명박 당선자가 불쌍한 초중고 학생들, 학부모 괴롭히지 말고 공약대로 서민 경제만 살리는 정책만 냈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이.. 있습니다.(경제를 살릴지는 모르지만요 =-=;;;)

  2. 나비 2008/01/31 13:5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인도,필립핀,말라시아,아프칸등 많은 나라가 영어을 유창하게 해도 선진국은 아니다
    영어는 필요하지만 주체성 없는 나라시민은 결코 문화선진국이라 할수없다
    선진국이란 꼭 경제선진국만 있는게 아니다

  3. 이쁜공주 2008/02/01 11:05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돈없어서 유아교육부터 영어를 배우지못한 나는 초등학교에서 영어로만 진행되는 영어시간은 무슨 말인지 조차 알아듣지 못하고 결국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낯선 외국에 있어야만 했다. 20년후 나의 딸이쓴 일기중에서..

  4. 아름드리 2008/02/01 23:08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저도 명박정권이 하는거 보고 증말 미칠것 같습니다. 새해부터는 사회의 발고 긍정적인면만 볼라고 하는데 티비만 틀면 복장터지는 소리들을 쏟아내니..
    제 주변에는 미국땅 한 번도 안밟고도 영어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 무지 많습니다. 그 사람들 영어에 대한 환상도 없고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없이 자기 적성에 맞고 열씨미해서 그케 된거죠.
    지금 우리 교육에 필요한 건 초등학교 부터 그 어린 우리 아이들 고문하며 몰입교육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건 미친듯이 파고 들고 집중하게 하고 개방적이고 트인 사고 방식을 갖게 하는 바른 가치관과 소신을 가르치는 거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그걸 지시하는 사람들이 편법과 눈가림으로 평생으로 일군 사람들이니 그런 가치를 알까 못내 두렵습니다.

  5. EverGrateful 2008/02/03 10:54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seoprise.com 대문글 링크 타고 왔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어딜가나 남다르게 bi-lingual하다는 말을 듣는, 전문직에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절대 동감합니다.

  6. 박선양 2008/02/04 09:13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김진애=>이명박 컴플렉스

  7. 2008/02/04 16:4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속 시원한 명쾌한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절대공감!!!
    영어를 잘해야 잘 산다고 윤리선생까지 자처하는데, 잘 산다의 가치가 언제 그렇게 퇴보했단 말입니까. 초딩들도 콧방귀 뀝니다.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장점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만능은 아닐진데 말입니다.

  8. 희망없는사회 2008/02/29 22:4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사기꾼 이명박, 숙대출신 인수위원장, 숙대 테솔과정 팔아먹으려는 개수작일 뿐이지.....김진애 님, 아직도 살아있군요.....그 명석한 판단력 본받고 싶어요

인생이란, 시간을 빼앗으려는 온갖 잡사와 공간을 빼앗으려는 온갖 잡물과의 끊임없는 전투다. 잡사와 잡물은 점점 늘어나니 패배할 확률은 점점 높아진다. 승기를 잡으려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청소파'와 요리파’. 영어로 하자면 ‘클리너’와 ‘쿠커’. 
청소파는 깨끗하게 정리하는 데 힘을 들이고, 요리파는 무엇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들인다. 청소파는 ‘조직’하기를 좋아하고 요리파는 ‘창조’하기를 좋아한다. 청소파는 깔끔하게 보이고 요리파는 좀 지저분하게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청소파는 분주하고 요리파는 여유작작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청소파는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고 요리파는 약속쯤이야 잊어버리고 나중에 선물로 환심을 사려할지도 모른다. 

기실 청소파와 요리파는 우리 속에 같이 있다. 문제는 ‘극(極) 청소파’ 또는 ‘극 요리파’다.
‘극 청소파’의 징후는? 주변이 어지러우면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바빠 죽겠는데도 여전히 정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몸이 솜처럼 피곤해 죽겠는데도 치워놓지 않으면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당신의 청결 집착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 한다, 말끔하게 하는 데 시간을 쓰느라 일을 끝내지 못한다, 마감시간을 자주 못 지킨다, 등.

‘극 요리파’의 징후는? 필요한 자료를 잘 찾지 못한다, 물건 찾느라 온 사방을 뒤지고, 결국 못 찾고 아예 새로 사버린다, ‘정신이 없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한번 빠지면 다 끝내기 전까지는 잠도 안자고 밥도 안 먹는다, ‘자기중심적’이라는 불만을 듣곤 한다, 한번 빠지면 돈도 안 따지고  목적도 따지지 않고 그것만 들이 판다, 마감시간을 자주 못 지킨다, 등.

극 청소파나 극 요리파나 문제다. 자신도 피곤하고 남도 피곤하게 만든다. 극 요리파가 빠지는 함정은 ‘타고난 창조자’라는 환상이다. 그러나 일이 복잡해지거나 커지면 타고난 것도 별 효과가 없다. 체계가 없으면 진짜 창조의 고비를 못 넘긴다. 극 청소파가 빠지는 함정은 ‘깨끗한 비조직성’이다. 겉으로는 너무도 깨끗하지만 실제 내용을 다스리는 원칙이 없어서 형식의 깨끗함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인생이란 청소와 요리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어떻게 교묘하게 배치하느냐다.

나의 성향은 요리파에 속한다. 요리하기 자체를 좋아하려니와 무엇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워낙이 청소하기를 싫어하려니와 일에 부대끼다 보니 시간을 쓸 틈도 없다. 작업실을 방문한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사는 지 놀란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차’라고 할 정도로 굴러가기만 하면 차도 내버려둔다. 

나는 한동안 ‘청소 콤플렉스’에 걸렸었다. 주위에서 야단맞는 것은 물론 나 자신도 문제가 아닐까 의문했었다. 열심히 청소도 해봤다. 그러나 확실히 내 체질은 아니었다. 그래서 열심히 훈련한 것. ‘분류하기’다. 말하자면 청소파는 아니어도 ‘분류파’는 되자는 것이다.

한동안의 훈련을 거쳐 지금의 나는 ‘어지러운 조직자(cluttered organizer)'가 된 셈이다. 겉으로는 혼란스러워 보여도 내부 질서는 튼튼하다. 분류 방식에 따라 정리해두는 데에 부지런을 떠는 셈이다. 필요한 것을 못 찾는 일도 별로 없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썼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자신이 요리파라고 자신하지 말라. 너무 지저분하면 언젠가는 필요한 것을 못 찾고 진짜 하고 싶은 것을 놓칠지 모른다. 자신이 청소파라고 자신하지 말라. 정리가 잘 되어있는 듯싶어도 그 질서가 무너지면 자신도 무너질 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요리파와 청소파를 적절하게 넘나들 수 있는 묘기를 부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분류를 위한 나만의 장치들은 많다. 깨끗하거나 세련되게 보이지는 않더라도, 전형적인 멀티 태스커인 나를 튼튼하게 받쳐주는 도구들이다. ‘봉투 시스템, 종이 박스 시스템, 네모 책장, 그리고 웹 마스터 파일 시스템 등’

그 중에서도 ‘머릿속 서랍’은 가장 유효한 장치다. 서랍. 열면 보이고 닫으면 안 보인다는 것이 매력적인 장치다. 머릿속 서랍은 닫으면 잊고 필요할 때 열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공간의 속박에 구애받지 않고 시간의 속박에서 자유롭다. 머릿속 서랍을 닫고 잊어버리는 훈련이란, 쉽지 않지만 하면 된다. 머릿속 서랍은 때때로 제 맘대로 열고 나오려 든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머릿속 서랍 수는 늘어난다. 서랍 내용도 풍성해진다. 나의 공간과 나의 시간이 확보되었다. 청소 걱정 없이 요리할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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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lysium1015 2008/02/25 17:03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ㅋㅋ 김진애 선생님도 이런 생각을 하시는군요.
    요리는 신나게 할 수 있는데 청소는 정말~~~T_T

“아파트도 집같이 만들 수 없나요?”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다. 아파트를 만드는 데 한 몫 하는 정책 수립자, 사업자, 설계자, 시공자 등 모든 전문가들이 항상 유념해야 할 말이 아닐 수 없다. ‘집 같은 아파트’를 만들 때까지 할 일은 무한하다.

‘집 같다’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첫째, 오랫동안 살아왔고 오래도록 살 것 같다. 둘째, 새록새록 가족 이야기가 떠오른다. 셋째, 뭔가 여유롭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넷째, 뭔가 우리 집만의 독특한 게 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아파트가 집같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게 참 많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앞으로 오래도록 살 것 같지는 않은,  하시라도 이사할 수 있고 이사하더라도 별로 섭섭하지 않을 것 같은 아파트, 가족이 만드는 삶의 스토리보다 오히려 잘 장식된 거실 장면이나 잘 갖춰진 부엌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 아파트, 여유보다는 빈틈없이 짜인 느낌과 따뜻함보다는 편리함이 먼저 떠오르는 아파트, 이웃집이나 우리 집이나 별 다를 게 없고 다르면 오히려 이상할듯한 아파트.

이런 아파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남이 부러워하는 아파트’가 아니라 ‘우리 집 같은 아파트’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사실 아파트에 관련된 정책, 개발, 설계, 유통, 관리 방식 등이 모두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될 때까지,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당장 우리 사는 아파트를 돌아보자.   

아파트에 대한 여러 아쉬움 중에서 나는 아파트의 뭔가 답답하고 갇힌 듯한 느낌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에 주목해보고 싶다.

<이 집은 누구인가>라는 책에서 나는 비슷한 크기의 한옥과 아파트를 비교하면서 왜 한옥은 작다는 느낌은 들어도 답답하다는 느낌은 안 드는지, 왜 아파트는 크다는 느낌은 들어도 답답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해 이모저모 써놓은 적이 있다. 

아파트에서는 이른바 ‘체험 동선’이 짧고 ‘시각 동선’이 짧고 ‘청각 동선’이 짧다는 점이 답답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치명적인 요인이다. 짧은 동선이 좋다는 단순 상식이 갖는 단점이 아파트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동선이란 그냥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거닐면서 여러 만남이 일어나는 체험임을 표현하는 말이 ‘체험 동선’이다. 한옥은 체험동선이 길고도 풍부하다. 직각 동선뿐 아니라 순환 동선도 있고, 방과 방 사이의 동선 뿐 아니라 방과 마당 사이의 동선도 있다. 이 사이 사이에 다양한 체험이 녹아든다.

시각 동선도 따라서 풍부해진다. 아파트처럼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미세기문과 대들보와 창문과 처마와 그 너머 보이는 조각하늘까지 시선이 길어진다. 한옥의 좋은 점은 뭔가 더 있을 듯, 저 너머까지 내 것인 듯, 공간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고 넘어가지만, 아파트의 무언가 둔중한 불쾌함은 사실 소리 때문인 경우가 많다. 너무 조용하면 조용한 대로 전자음만이 둔중하게 공간을 채우고, 벽에 소리가 반사되는 것이 안 좋다. 아파트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일 때 정신없다는 느낌이 드는 게 바로 이 소리 때문이다. 마치 닫힌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얘기할 때 드는 느낌과 비슷하다. 아파트의 청각 동선은 직선으로 반사하는 반면, 한옥의 청각 동선은 공간 사이사이로 감아들고 퍼지기 때문에 편안하고 또 여유롭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의 심리란 참 묘한 것이어서, ‘눈에 보이는 게 다’라고 여겨지면 뭔가 답답하고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아파트의 문제는 쉽게 너무 다 드러내 보인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사람도 뭔가 겹겹이 더 있는 듯 하고, 만날 때 마다 뭔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 매력적이듯이, 우리의 아파트도 이런 매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아무리 한정된 공간이라 할지라도 한 눈에 다 보아는 것이 아니라 살짝 감추고 살짝 돌면 뭔가 다른 게 보이고 시선과 시선 사이에 여러 장치들이 겹겹이 있고, 저 문, 저 벽 뒤에 무언가 더 있을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면 기대감이 계속되는 것이다. . 

한 눈에 반한 사람이 길게 가기 어렵지 않은가. 요즘 아파트는 너무 한 눈에 반하게 만들려는데 힘을 쏟는다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길게 가는 매력, 그것이 ‘집’의 매력일 것이다.

남들 하는 대로만 하지 말고, 발코니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꼭 똑같은 대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꼭 들어가자마자 거실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파트라 해서 마당이 없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지 말고, 창문이 지금처럼 크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발상의 폭을 넓혀보자.

아파트를 집으로 느끼게 되면, 우리 사는 문화가 훨씬 여유롭고 풍부해질 것이다. 집 같은 아파트,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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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08/01/29 14:00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자 그럼 이제 발상의 폭의 변화된걸 보여주세요.. 몇년전에 한말하고 달라진게 뭐에요? 발상의 전화 보여주세요.

  2. .. 2008/01/29 14:03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발상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뭐가 좋고 뭐가 나쁜건지좀 정확히 말씀해주세요. 그러니깐 발상의 전환에서 보면 들쭉날쭉 나와있는 간판도 하나의 경관이될수 있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왜 차분하게 보여야 하나 도시는 원래 복잡한곳인데 그럼 더 정신없게?

  3. .. 2008/01/29 14:0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이런글은 누가옳고 누가 틀리냐를 따지는 글이 되면 안될꺼 같습니다. 자본주의에서 돈이 되는 일을 하면 잘못됐다고 할순 없잔아요. 선생님께서 하는 말이 뭔지 정확히 알겠습니다. 바꿔나가자는 생각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글만쓴다고 바뀌나요? 한번 알트를 보여주세요. 이건 정말 무책임한거 같아요. 학생들한테 공모전을 통해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원한다고 하는데 입상한것들중에 실현된게 뭐가 있나요?
    진정 우리나라의 건축을 생각하신다면 이렇게 글만쓰지 마시고.. 실천할수 있는 알트를 보여주세요. 이런 글은 건축을 생각하고 있는 건축을 공부하고 있는 건축과 관련있는 누구나 생각하고 있는것 입니다.
    이건 발전이 아닌 사소한 말싸움밖에 안될꺼 같아요..

  4. 정말 2008/03/13 10:5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건설회사 사장님이 그런 아파트를 지으면 됩니다. 아니면 돈을 많이 벌어서 건설회사를 차리면 끝이지요. 다만 자본주의 논리상 돈을 효율적으로 많이 벌 수 있는 시스템이 현재의 아파트일뿐입니다. 나중에 현재의 아파트가 지겨워지고 수요가 사라지면 수요의 재창출을 위해서 나오겠지요. 인스턴트에서 웰빙으로 바뀌었던것 처럼. 그리고 서로의 의견을 말합시다. 무조건 까지말고.

  5. 고명환 2008/03/26 12:4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선생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저의 아버지 께서는 전통건축을 공부하시는 분이셔서 어께너머로 한옥을 조금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신 체험동선과 (대부분의 한옥이든 좁은평수의 아파트이든 architectural promenade 라고할수있을까요?) 한옥가옥구조에 따른 공간의 구분 (뒷간 화장실, 대청마루, 안방, 창고, 사랑방, 대문, 뜰 등등은 각기 인간이 다른 형상으로 이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좌식과 입식이 적절히 조화되어 부지런히 움직여야합니다만), 과학적이고 자연에 가까운 건축과학 (대청마루에 걸터 앉으면 남쪽을 향함, 채광은 처마와 태양의각도에 따라 적당히 조절됨 등등) 그리고 추억과 같이하는 건축 (아파트에서는 약간 생소합니다만 어머니께서 자녀를 출산하실적 아버님께서는 자녀의 성별에 따라 나무를 키우시고는 분가시에 손수 키우신 나무로 가구를 만들어주시는 전통)은 아파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여성이 좋은 점은 바지도 입고 치마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나는 정의한 적이 있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요새 여성들은 당당하게 치마를 입으며 여성성을 즐긴다.”는 요지의 기사를 얼마 전 본 적이 있는데, 십여 년 전에 “요새 여성들은 당당하게 바지를 입으며 통념적 여성성을 뛰어넘는다.”라는 현상에서 한 발 더 나간 것이라고 할까?

공개 석상, 예컨대 국회의사당 내에서 여성이 바지를 입어도 괜찮아진 것이 10여년 정도다. 바라기는, 치마만 입지 말고 또는 바지만 입지 말고, 상황과 분위기와 전략에 따라 치마와 바지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21세기 여성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요즘 여성 패션 트렌드는 아무래도 좀 찜찜하기는 하다. 한동안의 ‘공주 패션’에서 더 올라가 ‘퀸 패션’ 수준이 되어가는 걸까. 장식도 많고, 무늬도 대담해지고, 색깔도 강렬해지고, 주름도 겹겹이고, 커트도 다채롭고, 투명과 반투명도 많고, 잘록하고 풍만한 몸의 선이 강조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공이 더 들고 그만큼 엄청 더 비싸다.”

요즘의 패션 리더는 상류층, 부유층이라는 ‘계층’이라는 현상은 영 탐탁찮다. 예전 시대의 패션 리더는 예컨대 ‘저항 세대’, ‘자유 세대’, ‘평등 세대’, ‘워킹 우먼 세대’ 등, ‘어떤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문화 그룹’이었다. 지금은? ‘돈’으로 대변되는 계층이 패션 리더다.

이것은 경제 양극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20% : 80%의 양극화 시대, 또는 5% : 95%의 초 양극화 시대에 20% 또는 5%의 부유층을 겨냥한 패션이 판을 친다. 전자제품과 초호화 아파트 인테리어 광고는 물론이고 ‘신데렐라’ 성 드라마는 물론이고, 스타들의 초호화 패션은 물론이고, 화장품 광고는 물론이고, 쏟아지는 명품 브랜드 잡지들이 계층 패션, 허영 패션, 비싼 패션을 주도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성성을 최대한 상품화’하려는 성향이 극에 달해 ‘비싼 패션’을 띄우고 있는 것이다.     


‘비싼 패션’의 짐은 여성 모두가 지게 된다. 글쎄, 5%에 속하는 여성들은 즐기겠고, 20%에 속한 여성들은 웬만큼 따라갈 지도 모르겠지만, 나머지 80%의 여성들은 따라가기에 허덕허덕할 수밖에 없다. 깨끗이 잊어버릴 수도 없다. ‘그 놈의 돈’만 있으면 변신할 수 있다는 허상, 또한 그렇게 변신을 하여야 일자리라도 얻을 수 있는 현실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이 시대 여성들은 양극화 현상에서 이중 삼중으로 피해를 받는다.

경제 양극화와 함께 떠오른 신보수주의적, 신자유주의적, 계층주의적 ‘비싼 패션’. 그 피해는 오히려 경제적으로 힘든 계층에게 더 떨어지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아파트 값 양극화와도 비슷하다고 할까? 

비싼 패션 시대에 80 - 95% 여성이 살아남는 법은 무얼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미니멀 패션, 도시 패션, 워킹 패션이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점이다. 단순하고 정갈하고 건강하고 스타일이 있다. 무엇보다도 값이 싸게 먹힌다. 소화만 잘 한다면 돈으로 감싼 허영의 패션 계층을 지그시 누를 수도 있다.

섹시하고 세련되게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자. 치마도 입고 바지도 입어가면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자. 스타일은 결국 패션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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