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불로 하는 황홀한 장난.’
요리라는 행위를 극찬하는 나의 대사다.
그런 장난이 일어나는 공간,
‘부엌은 신나는 놀이터’다. 부엌을 찬양하는 나의 대사다.

물장난만큼 신나는 것 있으랴. 이 세상에 아무리 더러운 것도 물로 씻으면 어찌 그리 깨끗해지는가.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노라면 심산유곡이 따로 없다. 물방울 맺힌 푸릇푸릇 야채는 싱그러운 축복이다. 뽀드득뽀드득 소리 나게 접시를 닦으면 오장육부까지 다 시원해진다.

불장난만큼 신나는 것 있으랴. 불이란 정염이고 불이란 변신이다. 불이란 새로운 탄생을 약속한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장작불, 펄펄 살아 있는 숯불까지 바랄 것도 없다. 불기 앞에서 달아오르는 느낌, 마치 뜨끈뜨끈 다시 한 번 연애하는 기분 아닌가.

다른 놀이들도 곁들여진다. 칼부림(?), 가위 부림(?), 뒤집기, 섞기, 뿌리기, 다지기, 꽂기, 끼우기, ‘몰랑몰랑’ 주무르기, 색깔 맞추기, 어여삐 담기. 게다가 물과 불로 한바탕 장난을 치고 나면 기막히게 맛있는 먹을거리가 차려지니 요리란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장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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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만든 요리, '라자냐' , 놀라셨지요?^^

영화 자체는 별로지만 리처드 기어가 ‘셰프(chef)’로 나와서 괜찮은 요리 대사를 읊은 <뉴욕의 가을>에서 그는 ‘요리는 유일하게 beautiful as well as nourishing한 것’이라 정의한다. 아름다운 여인을 쫓아다니는 바람둥이 남자의 해석인 셈이다. 여자가 아름답고도 영양가 높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요리는 아름답고도 또 영양가 만점이다. 요리 찬가다.

요리하는 맛을 모르는 남녀는 아직 삶의 맛, 사랑의 맛을 모르는 것이다.

‘사랑의 첫 탐색 단계’는 ‘같이 먹는 것’이다. ‘애프터’를 위해서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드는 행위다. 먹기 욕망은 사랑 욕망과 통한다.

‘사랑의 둘째 단계’는 ‘그대를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이다. 그 여인을 기다리며 상 차리는 남자의 두근거림, 그 남자를 떠올리며 장 보는 여인의 설렘, ‘나의 공간에서 나의 손으로 그대를 위해 무언가 해 주고 싶다’.

‘사랑의 셋째 단계’는 ‘그대가 해 주는 요리를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다. 그대 손길과 그대 마음이 담기면 맛이 없어도 맛이 있다. 그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준다는 것만도 감격스럽다. 당신의 사랑을 삼키는 것이다.

‘사랑의 경지’는 ‘같이 요리해서 같이 먹는 것’이다. 서로에게 손이 되어 주고 발이 되어 주고 입이 되어 주고 눈이 되어 준다. 무엇보다도 시간을 같이 보낸다. 사랑의 경지를 맛본 사람은 모두 아는 비밀이리라. 근사한 섹스 후에 배가 고파져서 둘이 함께 만들어 먹는 요리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라는 것을.

물론 ‘사랑이 깨지는 단계’는 같이 먹기조차 죽어도 싫은 것이다. 모래알 씹는 듯, 독약 마시는 듯, 쓴 약 삼키는 듯, 죽어도 함께 먹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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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남녀>, 대만의 리안 감독의 너무 근사한 영화였지요?
                   
우리나라 남녀의 사랑이 무르익으려면 아무래도 부엌이 근사한 놀이터가 되어야겠다. 요리하지 않는 남자가 그렇게 많아서야, 요리하기 지겨워하는 여자가 그렇게 많아서야, 우리나라의 사랑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 부실하면 나라도 부실해진다. 그러니 부엌이 근사해야 나라가 근사해진다. ‘요리 찬가’로 시작한 것치고는 무척이나 큰 선언으로 자라 버렸구나. 하하하!

여하튼, 부엌이란 집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공간임엔 분명하다. 불과 물이 있고, 만물상에, 작업장이자 카페이고 레스토랑이다. 신나는 놀이터? 소꿉장난 놀이터일 수도 있고 세련된 남녀가 희롱하는 놀이터일 수도 있다.

혼자 있는 부엌은 징그러운 노동이지만 둘이 하는 노동은 사교가 된다. 장난거리가 된다. 둘 이상이 왁자왁자 놀 수 있는 부엌을 만들어 보자.

물론 여자는 자천타천 부엌의 대장이다. 대장 노릇을 제대로 하자. 부엌을 당신만의 성으로 독점하지 말라. 탁월한 대장의 리더십이란, 부하들(?), 팀원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끌어 주고, 격려하고, 야단치고, 칭찬하고, 그리고 함께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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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남자에게서 물장난, 불장난을 빼앗지 말라.
그 황홀한 장난에 맛을 들이게 하자.
부디 아이에게서 물장난, 불장난을 빼앗지 말라.
그 황홀한 장난의 묘기를 익히게 하자.
근사한 남자, 멋진 아이들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눈을 서로 마주 보게 할 구상을 해 보자. 벽을 보는 뒷모습은 절대로 보이지 않게 한다. 외로워 보이니까. 안돼 보이니까. 왠지 미안한 맘이 들지도 모르니까. 손이 마주 닿을 수 있게 해 보자. 손을 내밀면 당신의 젖은 손을 잡을 수 있게 하자. 젖은 손가락, 젖은 손바닥의 마주침은 또 다른 느낌이다. 누구든 무엇이든 찾기 쉽게 하자. ‘무엇무엇’ 하면 바로 대령할 수 있도록 누구나 아는 약속을 만들라. 내가 물을 쓰면 너는 불을 쓴다. 내가 칼을 쓰면 너는 가위를 쓰고, 네가 접시를 꺼내면 나는 컵을 꺼낸다.

소품도 마련해 볼까. 근사한 앞치마는 부엌의 필수 패션이다. 돈 별로 안 들이고도 패션 감각을 즐길 수 있다. 셰프 모자까지 쓰라는 소리만 안 하면 앞치마쯤은 기꺼이 걸치지 않을까?

요리의 순간 예술을 같이 만끽하자. 그 예술적 순간을 같이 맛보자. 재주 없다고 타박하지 말고, 못한다고 잔심부름만 시키지 말고, 내가 더 잘한다고 나서지 말고, 역시 내가 최고야 유세 떨지 말자. 불기를 머금어 더 파릇파릇해지는 순간을, 기름 한 방울로 비단처럼 보드라워지는 순간을, 간 하나로 희한한 맛으로 변하는 순간을, 과감하게 양념을 뿌리는 순간을, 냄비 속에서 볼품없어 보이던 것이 접시 위에서 마술적 예술로 변하는 순간을 즐겨 보자.

그러고는 물론 먹어서 없애는 것이 요리다. 그래서 요리란 순간 예술이다. 그 잠깐의 10분, 길어 봤자 1시간의 순간 예술. 먹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매일매일 퍼포먼스 아트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소멸하기에 요리는 더욱 창조적이다. 더욱 새로운 창조를 위해 이 순간 소멸한다.

그러나 먹는다고 없어지기만 할까.
먹은 것은 사랑이고 마신 것은 애정이다.
먹은 것은 너의 손이고 마신 것은 너의 입술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한 그 시간의 기억은 내 몸속 어디엔가
아름답고도 영양가 만점으로 새겨졌을 것이다.
요리는 정말 ‘beautiful as well as nourishing’ 하다.

‘웬 헛꿈?’ 하고 몰아붙일 독자도 계시겠다. 도대체 될 일을 얘기해야지? 아니 부엌이 어디 놀이터냐, 지겨운 노동터지. 요리가 어디 그리 황홀하냐,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쳇바퀴지. 그리 여기시면 나도 별 도리 없다. 그저 나의 장난 상상력이 지나치다고 할밖에.

그렇지만 나는 상상한다. 부엌이라는 신나는 놀이터에서 황홀한 장난을 하는 너와 나를. 너는 물이 되고 나는 불이 될까? 네가 불이 되고 나는 물이 될까? 물과 불의 상극을 기꺼이 섞어 보자. 요리란 장난이다. 요리란 사랑이다.

이번 주말,
신나는 놀이터 부엌에서 당신과 나, 한바탕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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