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씁쓸하게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통합민주당 한명숙, 민주노동당 심상정이 대선 후보로 경쟁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실제 그럴 수 있었다.

첫 단추 박근혜. 당내 경쟁에서 이기고 여론조사에서 져서 간발의 차이로 후보 자리를 놓쳤던 박근혜. 후보 검증 국면에서 조금만 달랐더라면, 예컨대, 아프간 인질 사태나 남북정상회담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경선이 일주일만 더 갔더라면, 박근혜가 후보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랬더라면 대선이 치졸한 검증 국면이나 ‘묻지 마’ 투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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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단추. 그랬더라면, 자력으로 권영길과 결선투표까지 갔던 강심장의 심상정이 결선투표에서 드디어 이겨 냈을 확률이 높다. 심상정, 정말 강심장이다. 그 담대한 배짱과 그 높은 이상, 그 탄탄한 논리로 우리 정치를 한 단계 올렸을 것이다. 치열한 정책 경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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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단추. 그랬더라면 한명숙이 당 경선에서 단일화의 선봉에 섰을 확률이 높고 돌풍을 만들면서 경선 끝까지 치고 나가며 후보 자리를 따냈을 수 있다. ‘신사보다 더 신사 같은 한명숙’, 그 후덕한 포용력과 그 또박또박한 말솜씨와 그 아우르는 품으로 대선 경쟁의 격조를 높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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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명숙, 심상정이 붙는 게 제 시나리오예요...”

내가 이 말을 하면 남자들이 득달같이 덤벼들었다. “꿈도 야무지네.”, “걱정 마, 그런 일은 안 생길 테니까...” 등 등. 어떤 남자가 그야말로 정색을 하면서 “우린 뭐 하구?“ 할 때 나는 크게 웃었다. “왜 할 일 없어요? 남자들 할 일 많아요.”

왜 이런 부질없는 역사의 상상을 하느냐? 

첫째 이유.

지금 이명박 정부 초기의 인사 난맥을 보면서 답답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특정 인사의 선택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공인의식의 기준과 도덕의 기본과 인간에 대한 철학이 이런 난맥상의 바탕에 있음을 도대체 아는가 모르는가. 이명박 정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공인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박근혜, 한명숙, 심상정의 정치력, 판단력, 의지, 역량, 정치 성향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던 간에, 이 세 탁월한 여성들의 공인의식, 당당하고 담담하고 훈련된 공인 매너에 대해서만큼은 믿을 수 있지 않은가. 이들이 ‘원칙’을 세우고 지키려한다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신뢰할 수 있지 않은가. 박근혜 정부, 한명숙 정부, 심상정 정부가 태어났더라면 지금처럼 불안하고 부끄러운 사태가 생겼을까? 

둘째 이유.

이번 인사 난맥 사태에서 유독 치졸한 문제에 휩싸인 당사자들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이춘호, 박은경, 박미석, 여성 3인방. 아니 어떻게 ‘암이 아니라서 축하로 남편이 사줬다’는 말을 하나, 아니 어떻게 ‘땅을 사랑했을 뿐’이라는 말을 하느냐, 여자대학 교수의 제자 논문표절이라면 여성이 여성을 등친 것이나 다름없지 않으냐... 도대체 공인의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들인가, 도대체 공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사람들인가. ‘여성이 더 도덕적이다’가 아니라 ‘여성이 권력에 더 취한다’라는 말을 하게 되지 않는가 말이다. 부끄럽고 안타깝다.

(그렇다고 여성 내정자들만 문제라는 건 아니다. 문제가 된 남성 내정자들의 ‘후안무치’적인 경력과 지금도 ‘뭐가 문제냐’는 식의 ‘후안무치적인 대응’에 더 끓는다, 끓어. 남자는 ‘뻔뻔해도 괜찮다’는 이중 잣대, ‘일만 잘하면 된다’는 이중 잣대에도 속을 앓는다.) 


박근혜, 한명숙, 심상정. 세 여성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든, 세 여성은 공인 훈련이 된 희귀한 사람 자산이다.

이제 세 여성 모두 현재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 박근혜는 추악하기까지 한 권력쟁탈 국면에서 ‘팽’ 당하지 않기 위해서 더 힘든 싸움을 벌여야 하고, 한명숙은 참여정부 성과에 대한 국민의 차가운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번 18대 총선을 이겨냄으로써 역사의 평가에 꿋꿋하게 대면해야 하고, 심상정은 민주노동당의 분열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보세력의 새로운 환골탈태와 응집을 만들면서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내야 하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공인으로서 존경과 기대를 받는 여성은 우리나라의 희귀한 자산이다. 수많은 단련과 시행착오와 비판과 시련을 거치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 강금실, 추미애 등에게 격려를 보내주자. 뜨겁게, 뜨겁게.  

권력 지향적, 자리 지향적인 비겁한 여성들은 빼자.

나쁜 뜻의 ‘명예남성화’한 여성들, 미사여구의 말로 오히려 세상을 더 거칠게 만드는 여성들, 어여쁜 화장을 걸치고 오히려 거짓 세상을 만드는 여성들, 세상을 자신의 좁은 눈으로 재단하는 여성들, 자신의 전부를 던지지 않는 여성들,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 여성들, 자신이 가진 것을 세상에 나눠주려 들지 않는 여성들, 사익에 더 관심이 많은 여성들, 여성이면서 여성의 제대로 된 발전에 관심을 두지 않는 여성들, 권력 남성들의 눈치만 보는 여성들....

 왜 그렇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근처에는 그런 여성들, 이름 석자도 입에 올리기 싫은 여성들이 디글디글할까? 권력과 이익이 커서 그럴까. 이익집단의 성격이 더 커서 그럴까.  

이명박 정부의 인사 난맥에서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여성인 나, 결점 많은 나, 더 많은 단련이 필요한 나, 더 큰 시련에 던져야 할 나....
대한민국 여성들이여, 우리 깨어나자.
우리 먼저 공인이 되도록 노력하자.
우리 미래를 위해서,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
우리 여성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사회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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