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길을 만들면서 느낀 행복 그 순간
- Posted at 2008/01/21 12:48
- Filed under 김진애의 공간정치/도시건축이야기
내가 행복해할 때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할 때, 그리고 남들이 내가 한 일로 즐거워할 때다. 필연적으로 나는 공공적인 일을 좋아한다. 예컨대, 사적 건물 짓기보다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도시 만들기와 도시공간 만들기가 더 좋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한편, 더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0년 인사동길 설계를 내 인생 중 인상적인 행복 순간 중 하나로 꼽는다. 설계부터 완공까지 2년 동안 긴장하고 애태우고 치열했던 매 순간이 행복했다.
서울시 공모에 당선된 날은 밤잠을 설쳤다. 인사동이란 이 중요한 서울의 공간, 내가 흠모해왔던 공간을 다루게 되니 얼마나 설레던지. 서울시에서는 길 위만 가꾸기를 주문했지만, 봄철이면 몇 곳씩 수도가 터짐을 알고 있던 나는 몇 달 동안 서울시를 설득하여 드디어 길 밑의 상하수도, 가스, 전기를 정비하게 했다. 중간에 욕 잔뜩 먹었고 남들이 몰라줘도 나는 뿌듯하다.
보고 시 당시 고건 시장이 외국도시에서는 벽돌이 깨져도 자연스럽다면서 설계자 제안을 받아들이자 해서 안심했던 순간도 잠깐이었다. 공사 시작하며 벽돌 샘플을 깔아놨는데, 전벽돌은 안 보이는 게 아닌가. 구하기 쉬운 유럽풍의 적벽돌이나 갈색 벽돌만 샘플로 깔린 거였다. 다시 동분서주해서 겨우 관철해냈다. 지금도 찻길 위에는 전벽돌이 꽤 깨졌지만, 여전히 인사동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남인사마당’ 만들기도 행복했다. 인사동길 자체는 워낙 폭이 좁은 편이고, 쓸 만한 광장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이곳이었다. 문제는 종로구청에서 이미 리노베이션을 했다며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두 방향으로 설득했다. 한편으로는 영 폐쇄적인 공간이어서 낮에도 술판이 곧잘 벌어진다는 문제를 제기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중화장실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 설득했다.
우여곡절 끝에 만든 남인사마당은 종로와 바로 붙어 있어서 사시사철 사람들이 끓고, 거의 모든 인사동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별로 크지 않지만 쓸모 있는 마당이다. 내가 만든 공간 중에 가장 잘 쓰이는 공간이라 할 만하다. 행사가 열리는 남인사마당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그냥 행복하다.
공사 중에 조선일보에서 대문짝만하게 인사동길에 띄엄띄엄 놓은 물확 돌을 ‘세상에서 제일 커다란 재떨이’라고 비판하는 기사를 실어서 한동안 곤혹스러웠는데, 지금은 물확 돌 하나하나마다 관리하는 가게 이름을 박아 넣고, 여름이면 물옥잠화를 곱게 피우고 있다. 도시란 사는 사람들이 직접 가꾸어야 한다는 내 소신이 맞아들었으니 나는 또 행복하다.
물론 행복하지 못했던 사건도 있다. 공사 중에 차도 폭이 넓어져서 계획했던 나무 심기가 대폭 줄었고, 중간 중간 만든 작은 ‘텃밭’은 준공 몇 년 후에 결국 사라져 버렸다. 인사동 깊은 골목 속의 작은 텃밭들처럼 큰길에도 텃밭이 있다면 얼마나 좋은 도시겠느냐 하며 겨우 몇 개 만들었는데, 결국 관리 문제 때문에 사라져버렸으니 속상하다. 하지만 언제나 완벽하게 행복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 글을 읽는 블로거들은 짐작하시리라. 인사동길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어렵게 도전하고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미리 찾아내서 남을 설득하고 만들어내는 일이다.그러니 사실 나는 언제나 행복하다고 해도 좋다. 일하는 과정 자체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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