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진학을 고민하는 건축학도에게
- Posted at 2009/10/11 17:00
- Filed under 자라기 멘토링/멘토링
제 블로그 방명록에 ‘로스쿨 진학을 고민하는 건축학도’의 질문이 떴습니다. ‘비밀글’이지만, 사실 비슷한 질문을 건축학도, 공학도, 인문학도들로부터 평소 많이 받습니다. 차제에 제 생각을 정리하여 띄웁니다.
안녕하세요. 전 건축과 다니는 학생입니다.
2007년도에 통과된 건축기본법에 대해 무척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건축이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일이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을 만들어 준다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 건축 기본법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다고 생각했거든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그런데 선생님. 요즘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 하고 있는 일이 건축기본법의 정신과 맞아 떨어지는 일인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서요. 건축기본법이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자리잡기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구요
졸업을 앞두고 이제 진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건축을 하는 것도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지만, 지금 '행복을 만드는 건축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무척 시급하고, 또 이런 일이 행해지고 있는 사실을 보며 앞으로 많은 법적 움직임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보았어요
그래서 앞으로 로스쿨에 진학해서 이런 기반을 닦는 일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근데 다른 한편으로 로스쿨에 진학해서 법적 지식을 배우고 나서 건축기본법이 자리잡는 일에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학생이다 보니 지식도 부족하고 많은 고민이 생기네요. 선생님의 의견은 어떠하신지 궁금하여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됐습니다.[비밀댓글]
몇 가지로 정리하여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법을 다루는 사람은 나름 자신의 전공 또는 관심 분야에 일정한 경험을 한 후에 법을 공부하고 법 실무를 하는 것이 건강하고 내공있는 사회를 위해 좋다는 생각입니다. 공학 출신들이 법조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 평소 저는 많이 권장하는 편에 속합니다. 공학 훈련 특유의 구체성, 현실성, 미래지향성, 합리성, 정직성을 기반으로 법 훈련을 하면 좋은 법조인을 기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법 실무가 좀 더 건강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 역시 나이가 젊다면 지금도 로스쿨 진학을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제 고교 시절 전공 선택할 때 역시 법학과 의학은 꽤 인기가 높았습니다마는, 저는 ‘XXX'를 그었었지요. 의학은 ’아픈 사람 보면 제가 너무 아프다‘는 이유, 법학은 '당시로서는 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이유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더 많아졌고, 법 훈련을 거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현실적인 일을 더 많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릅니다.
바른 ‘법치’란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힘 중의 하나입니다. 현 정부에서의 법치가 시민의 자유와 책임을 억압하는 기제로 종종 사용되는데, 그런 상황을 견제하고 바로잡아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요. ‘법치’란 이른바 사회적 특혜를 받고 있는 기득권의 고삐가 풀리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힘이 약한 계층이 법에 의존해 기본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개념이고, 법에 의해 통치한다는 개념인데, 그게 흔들리는 게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공학도 출신이 법 훈련을 하면, 할 수 있는 특화 분야도 상당히 넓어질 수 있지요. ‘지적 재산권, 저작권, 특허권, 환경권, 건강권, 안전망, 공정 거래, 권한 분쟁 등’ 기술적 분별력과 판단력을 요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지요. 그만큼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있고 활동 영역도 많이 넓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다만 개인의 선택에는 많은 고민을 하셔야 할 겁니다.
선택에는 많은 위험이 따르기도 할 겁니다. 일단 몇 년 더 투자를 해야 한다는 부담도 만만찮을 터이고, 현장의 법조인이 된 후에도 우리 사회의 법 실무 전문계가 그리 선진화되어있지 못하기도 하고, 양극화 현상도 만만찮으니까요. 외국계 회사 진출, 거대자본의 문제, 이익집단화의 문제도 여전히 있으니,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면서 법조인으로 활동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지요.
변호사를 ‘상어'로 많이들 비유하지요? 미국처럼 모든 것을 법 분쟁에서 해결하는 사회에서 도덕성과 윤리성 여부에 관계없이, 의뢰인의 이해를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하는 이미지...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상어 법조인의 위험이 커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정파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법조인의 이미지, 권력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법조인의 이미지 등...
그만큼 법조인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과 사회와 역사와의 대화를 해야한다는 의무감이 따릅니다. 나름 의지를 확인해 보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진은 오바마 대통령. 오바마는 법 훈련을 거쳐 법조인 활동을 했지만, 주로 시민사회와 관련된 일을 많이 했지요.)
3. 법조인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전문가도 사회활동을 통해서 법조인 이상의 무브먼트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전문활동의 경험을 토대로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에 여러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고,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사진 속 박원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법조인 출신이기는 하지만 시만사회 속에서 '소셜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바꾸는 일을 해오셨지요. 법률가 출신이기에 더 역량이 커졌을까요?)
특히 경력이 높아질수록 자신의 전문가 활동만이 아니라 전문계의 사회적 기반, 사회적 기여를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역량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4. 건축기본법과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의 역할에 대해서
건축기본법 입법은 그런 일 중 하나였습니다. 2007년 12월 제정되었는데, 이런 ‘입법’ 활동은 법조인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가 당시에 대통령자문 건설기술-건축문화선진화위원장으로 있었기에 구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나름 경력이 있는 전문가로서 할 수 있던 일이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무척 보람있는 일이었습니다.
다만 지적하신대로, 건축기본법에 근거해 만들어진 현재의 ‘국가건축정책위원회’(2008년 12월 설립)가 건축기본법의 정신을 살리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저 역시 의문입니다. 건축관련 분야가 민생에 관련된 기본 인프라가 무척 부족한데, 그런 인프라 정책을 다루기 보다는, 4대강이며 주변개발이며 하는 사업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도 속으로 많이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법 정신‘을 실제 현장의 실무에 안착시키는 일은, 법조인 만의 일은 아닙니다. 관련 전문가들, 행정관료, 정치인, 시민사회가 꾸준하게 노력을 해야하는데, 그런 견제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선진사회라 할 수 있지요. 현재의 건축기본법 실무나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기능은 많이 미흡합니다. 전문계가 반성할 일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만드는 정치권에 구체적으로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걱정은 됩니다.
***
어떤 전공을 지금 하고 계시든, 전공을 공부하고 또 실무를 하면서 많은 아쉬움을 느끼고, 법학을 전공하여 법을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고, 특히 전문계를 위한 법적 기반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학도-실무자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고민을 수태 해오면서 지금 이 시간까지 와 있습니다. 저는 전공으로 법학을 선택하지도 않았고, 그 이후에 공식으로 법을 공부하지도 않았지만, 실무에서 수없이 관련 법을 검토하고 제안하는 일을 해왔기도 합니다. 법이라는 인프라를 고민하는 것은 전문가의 일상입니다. 법과 무관하지 않은 현실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법률가 출신입니다. 법 훈련을 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단련할 수 있고 합리적인 투쟁을 하는 능력이 높아졌을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겝니다. '법치'와 '시스템'에 대해서 그렇게 고민했던 것도 법률가 특유 훈련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회의 가치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고민을 했던 것도 법 훈련 덕분이 아닐까요? 물론 통상적인 세속적인 법조인의 길을 버리고 출세 수단으로서의 법률가 이력을 버렸기 때문에 가능했었겠지요. 이 세상에는 출세 수단으로 법학을 택하는 사람들도 워낙 많으니까요... )
이런 여러 사항들을 의식하시면서,
로스쿨 진학에 대한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법조인이 되지 않더라도 사회를 바꿀 수 있고 항상 법을 생각하며 일해야 합니다.
법조인이 되어서 더 실천적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역량을 쓴다면 그 역시 바람직 합니다.
딱 부러지는 결론을 내지 못하지만,
당신의 고민 섞인 선택을 위하여, 건투!!!
20091011
김진애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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