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5단계'는 누구에게나
- Posted at 2009/07/18 14:07
- Filed under 김진애의 좋은 새벽/정치의 가치
상실의 5단계란 죽음, 이별, 비극, 배반, 실연 등 깊은 슬픔을 동반한 상실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해서 심리학자이자 죽음 연구가인 퀴블러 로스가 정리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 이론이지요.
1단계. 부정 denial
2단계. 분노 anger
3단계. 우울 depression
4단계. 대화와 타협 dialogue & bargaining
5단계. 인정 acceptance
1. 이럴 수 없어! 그럴 리 없어!
2.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말도 안 돼!
3. 말하기조차 싫어!
4. 무엇이 잘못됐을까?
5. 이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왼쪽 다이어그램:
퀴블러 로스 (Kübler-Ross, Five Stages of Grief:)
로스의 책은 우리에게도 번역이 되었지요?
저도 읽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그 큰 무게가
삶의 한 부분으로 다가오더군요.
바람 부는 새벽, 노무현 상실의 5 단계 이후를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서 여러분은 상실의 5 단계를 어떻게 거치셨는지요? 각 단계는 꼭 선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병행되기도 한답니다.
1 단계의 ‘총 맞은 것처럼’ 충격에서 몸까지 상했고,
2 단계의 분노에서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3. 말하기조차 싫은 우울의 단계는 한 달 가량 지속되어 사람 만나기조차 싫었답니다.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 상처받을까 두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 달 정도 지나자
4 단계, 전후좌우를 짚어보게 되었고 무슨 뜻이 있을까 깊이 살펴보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게 되더군요.
49재가 되자
5 단계로 들어가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며 그 의미를 받아들이려 노력하게 되더군요.
불교의 49재가 드디어 인간의 혼이 이승을 떠나 저승에 드는 의미라고 하는데, 살아있는 사람도 슬픔과 비탄의 여러 단계를 거쳐가는 것 같아 그 기간이 각별히 의미가 있더군요.
퀴블러 로스는 5단계 또는 5단계 이후를 ‘승화(sublimation)’라 표현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나름 정의를 해보자면, 6단계, 7단계도 이어질 수 있겠지요.
6단계. 승화(sublimation),
무슨 뜻이 있을까? 나에겐 어떤 의미일까? 그 상실이 던져주는 의미를 깨닫는 단계 아닐까요?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아마 ‘재탄생(rebirth)’에 대한 희망 아닐까요?
7단계 새로 태어남(rebirth), 희망(hope)
나는 어떻게 다시 태어날까?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다가올까? 희망을 어떻게 일구어낼까?
오른쪽 사진:
노무현대통령의 얼굴을 수많은 네티즌 사진으로 조합구성한 것. <오마이뉴스> 작업.
물론 아직도 상실의 여러 단계를 제대로 이겨내지는 못했습니다마는, 훨씬 더 긍정적인 사이클로 들어서게 된 것은 승화와 새로운 탄생에 대한 희망, 그 안에서 제가 해야 할 몫을 돌아보고 사회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저에게 오는 의미를 두루 또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음이지요.
20090718
토요일 새벽 김진애 씀
새벽에 일어나 일하는 저로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몸을 던지신 새벽, 특히 토요일 새벽에 심란해지곤 합니다.
오늘 새벽에는 특히 바람이 세게 불어 더 심란해지더군요.
우리 모두의 인생에서 상실을 겪지요. ‘사람과의 헤어짐’ 때문에 우리 속의 무언가가 부서지고 상처를 받지요. 사별은 몸이 에이게 가장 아프고, 실연과 이혼의 아픔은 실망감과 배신감을 안겨주지요. 더구나 한스런 상실은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상처에서 이윽고 새살이 돋듯, 우리 마음에도 새살이 돋아나야지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서 각별히 상실에 대한 여러 단계를 생각하게 되는군요. 왜 이리 아픈가, 이 상실감의 정체는 무엇인가, 무엇을 잃었나,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어떻게 감정을 나눠야 할까, 이 슬픔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에게 무엇을 남겼나, 나는 어떻게 다시 태어났는가, 앞으로 어떤 희망을 일구어야 할까?
이런 성찰을 해야, 노무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겠지요.
이런 성찰을 우리 삶에서 또 우리 사회에서 하나하나 희망으로 피어올려야겠지요.
***
‘상실’을 생각할 때마다, '비탄'을 생각할 때마다,
용산참사의 가족들이 떠올라 어지러워집니다.
가족이 한을 품고 죽음을 당한지 여섯달이 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그 ‘한’을 어떻게 풀 수 있을지요?
설령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더라도
깊은 상실감에 젖은 사람들의 슬픔과 희망을 조롱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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