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메이는 용산참사 백일
- Posted at 2009/04/29 11:05
- Filed under 김진애의 좋은 새벽/이명박정부
“아! 부르짖고 원망하여 바야흐로 도탄 속에 있어도 구해내지 못하니,
장차 무슨 낯으로 지하에 돌아가서 선조의 영령을 대하겠는가?
말이 여기에 미치니, 나도 모르게 목이 메인다.”
영조의 말씀입니다.
용산참사 백일이 되었건만, 사과 한마디 없는 정부, 범죄로 몰아가는 정부, 대책 하나 내지 않는 정부, 유족 호소문조차 받지 않으려드는 청와대. 장례도 못 치르고 오히려 법정에 서야하는 유족들. 법원 명령에도 불구하고 수사기록 전부를 공개하지 않는 경찰.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나 에 대한 회한, 돌아가신 이들의 원혼, 막막한 유족들의 심경에 목이 메입니다.
(오른쪽, 출처: 민중의 소리,
아직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용산참사의 희생자들.
그 원혼을 어떻게 풀어드려야 할지요?)
위의 말씀은 <영조실록> 26년 5월 19일의 기록입니다.
『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이덕일 저)에 나오는 대목인데, 그 정황이 의미 있습니다.
영조가 양반 계급에 군대/군역 의무를 부담하게 하는 제도를 도입하고자 여러 군신들 앞에서 설득하는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양반들이 군대를 안 갈 뿐 아니라 대신 세금을 더 내게 하는 제도에 대해서도 완강히 반대를 하자, 전체 국민과 국가의 균형을 생각해야 하는 군왕의 입장에서 신하들을 설득하려고 한 거지요. 결국 영조가 뜻한 제도를 도입하지는 못하게 됩니다.
이 책을 보면 우리나라 역사를 통해서 개혁을 이루고자 했던 지도자들이 기득권들의 반대에 부딪혀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귀족, 호족, 양반들, 이미 많은 것을 가진 기득권층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으려 들지 않았고, 개혁마인드를 가진 왕조차 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웠고 반발에 봉착하곤 했었지요. 그래도 바른 마음이 있는 왕들이 간혹 존재했던 것에 위안을 받습니다.
이 일화를 꺼내는 것은,
용산참사를 문자 그대로 지워버리고 왜곡해버리려는 현재의 상황을 풀어낼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청와대, 대통령임을 환기시키고자 함입니다. ‘신문고’를 통해서라도 억울한 사정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유족들의 상황이지요.
정부는 이 정황을 어떻게 수습을 하려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그냥 잊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요?
국민에게 비정한 정부가
어떻게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가요?
조선시대에도 왕이 나서서 국민에 대한 형평성,
기득권에 대한 견제를 하려 노력했건만,
지금 시대에
‘부르짖고 원망하여 바야흐로 도탄에 빠진
국민들을 구하려’ 들지 않는다면,
정부의 존재에 어떤 도덕성, 어떤 명분이 있을 지요?
(오른 쪽, 드라마 <이산>에 나온 영조. 이순재의 명연기가 빛났었지요.
개인적인 결함도 많았고 실수도 많았지만, 군왕의 리더십을 가졌던 영조 였지요.)
용산참사 백일에
다시 한 번, 다섯 주민들과 한 경관의 희생에 추모를 드립니다.
부디 이명박 정부는 유족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좀 더 따뜻한 배려의 마음으로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것은 하고 고칠 제도는 고치는
원칙적인 리더십을 가지기 바랍니다.
유족들의 부르짖음에 목이 메입니다.
부디 용기를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20090429
김진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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