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만에 뉴스를 보니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나라 어디 있느냐’라는 발언을 했단다. 대통령의 말법, 어법이 국민들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이번 발언은 너무 심하다.
어떻게 우리나라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이런 나라 운운’ 할 수 있는가?

***
이 뉴스를 듣자마자, 해외여행 관광가이드가 떠올랐다. 대부분 해외여행에서 버스관광가이드를 받아본 적이 있으실 것이다. 가이드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 나라’라는 말이다. “이 나라는 말이죠...”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말이죠...” 하며 시작하기도 한다.

‘이 나라’라는 표현에 담긴 숨은 뜻은, “이 나라는 뭔가 이상하다, 이 나라는 뭔가 잘못 됐다, 이 나라는 우리나라에 비해서 못났다. 이 나라 사람들은 뭔가 후지다.” 등의 은근히 ‘차별’의 의미, '비하’의 뜻을 담고있다.

그 현지 가이드들은 그 나라에서 오래 살다가 가이드로 훈련받은 분들도 있고, 잠시 체류하다가 아예 가이드 직분으로 눌러앉은 분들도 있고, 유학이나 취업을 하면서 가이드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사정이 여하하든 그 나라에서 일자리 혜택을 받고 살고 있는 입장인데 고마움과 애정을 표현하지 못할지언정 왜 차별하고 비하하는 표현을 쓰는지 모르겠다.

내가 예민한 편이기는 하지만, ‘이 나라 운운’이 하도 듣기 맘 불편해서 관광가이드에게 뭘 물어보기 겁날 정도다. 직접 지적하기도 난감하다. 그런데 한 번은 많이 친해진 가이드에게 지적을 한 적이 있는데, ‘다들 그렇게 써요.’라는 답을 해서 더 난감해졌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조차 ‘이 나라’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을 만나면, 이거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외교관일수록, 그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자긍심보다는, 어쩌다 내가 이렇게 작고 힘없고 실적도 별로 안 나는 작은 나라에 있냐는 불만의 기색이 역력하다. 이른바 선진국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은 ‘이 나라, 이 나라 운운’하는 표현을 쓰는 사람을 못 보았으니 말이다.

‘이 나라 운운’은 졸부 근성, 선진국 콤플렉스, 차별 의식, 편가르기, 폐쇄적 민족주의 성향이 버무려져 부지부식 간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입에서 ‘이런 나라 운운’을 들으니,
이건 문화감각 제로인 해외관광가이드도 아니고,
자신의 출세에만 신경 쓰는 무책임한 외교관도 아니고,

마치 ‘제 3자’처럼 우리나라를 대하는 제3국 사람도 아니고,
모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나라를 제 3자의 입장으로 비하하고 멸시하면
과연 세계에서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겠느냐 말이다.

대통령의 어법, 말법은 국민들을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특히 약한 자, 소외된 자에 대한 배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무리 국가가 전력전심을 다해도 사회에서 힘 약한 자, 소외된 자의 상처는 불가피하게 생기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새처럼 경제 공황에서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안 그래도 심리적 균열이 잔뜩 있는 상황에서 신임 경찰청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권력의 힘의 상징’인 경찰을 두둔해주면 어떻게 하나. 설령 그런 속내가 있더라도 말은 자제해야 하는 게 대통령의 자리다. 대통령은 오히려 이렇게 얘기했어야 했다.

“시위하는 시민들과 경찰의 충돌이 잦은데 자칫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경찰이 각별히 주의하도록 하라.
이번 용산 집회시위자와 경찰의 충돌을 보면 사복 경찰이 단초가 된 것 같은데,
사복 경찰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가능하면 사복 경찰은 시민을 상대로 하는 자리에서는 쓰지 않도록 하고,
중대한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경우에만 쓰는 방식을 고민해보라.”

“아! 이명박 대통령이 용산 참사에서 희생된 5명의 시민들과 1명의 경찰에 대해서 국민에게 진즉 진심 어린 사과만 했더라도 이렇게 민심이 사나워지지는 않을 텐데... 대통령 사과해야 돼요.” 이 말은 어제 택시 기사에게 들은 말이다. “그런 사태 만나면 나도 택시 때려치우고 시위에 나설 판인데, 대통령이 어쩌자고 저러시는지 모르겠어요.”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의 제3자 행세를 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 이미 권력에 의해 힘을 가지고 힘을 행세하는 조직의 편을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제발, 대통령의 말법을 고치고,
그 전에 힘없는 국민, 기댈 데 없는 국민의 마음을 배려해 주시기를.  

20090311 김진애 포스팅.

차분하게 쓰려고 무진 노력을 했습니다. 적어도 ‘대통령 직’에 대한 존중심을 지키기 위해서. 쉽지 않았습니다. 어제 기사, 논설, 블로그들을 보니 이명박 대통령의 ‘이런 나라 어디 있느냐’ 발언에 대해 분노가 충천했더군요.

이명박 대통령, 정말 고쳐야 합니다. 이미 인정된 우리 사회의 기득권, 기 권력층을 편들어주는 것은 속맘에 감춰두시고, ‘그렇지 않은 척’이라도 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자꾸 노력하면 가까워집니다. 분노를 충동하는 말을 자꾸 입밖에 내면 점점 더 분노가 높아지고 자기 심성이 황폐하게 됩니다.

언론들, 모두 같은 기준으로 나서서 이명박 대통령 말법과 마음법을 고쳐줘야 합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우리는 한편’이라고 설득하려 해도, 그저 속빈 덕담으로 들으시고, 언론인들 나서줘야 합니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한다?’ 그건 격려와 박수가 절실하게 필요한 약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지요. 권력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비판해주어야, 권력자들이 신중의 신중을 기하는 마음을 잃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말에 너무 자존심 상하고 너무 상처 받습니다.
그러니 그 당사자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상처 덧나고, 심정이 사나워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김진애 블로그 -'사람, 공간 그리고 정치'- www.jkspac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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