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 택시기사님과 논쟁이라는 걸 해봤습니다.

쌩쌩 바람 불어 체감온도 영하 20도라는 밤에 고속터미널 앞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설 앞두고 덕담 주고받다가 논쟁으로까지 비화한 것은, 용산참사 때문이었습니다.

택시 공간은 독특한 공론의 장이지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잠시 오도 가도 못하는 긴장을 털려고 얘기를 꺼내고, 창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얘깃거리를 던져주고, 또 라디오 뉴스 흘러나오니 얘깃거리가 쉽게 생기지요.

기사님들은 당신 의견 밝히기에 별로 눈치 안 보시는 편이라 대화열기가 쉽고요. 저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듣기 좋아서 기사님들과 얘기 나누기 좋아하는 편입니다. 대개는 시장이 얼마나 어려운가, 살기 힘든가, 교통 관련 쟁점들이 뭔가, 가족 이야기, 살림 이야기 들이지요.


그런데, 그 날은 ‘용산참사’ 뉴스가 논쟁의 발단이 됐습니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뉴스였지요. ‘왜 대통령이 빨리 용단을 안 내리느냐’는 제 혼잣말에 “이명박 대통령이 뭐 잘못하는 거라도 있어요?”라는 기사님의 응답으로 시작됐습니다.

어떻게 전개됐으리라는 건 짐작하시겠지요. ‘과잉조기진압이 문제냐, 과격농성이 문제냐’ ‘김석기 내정자 사퇴냐, 유임이냐?’에 대한 다른 의견이 펼쳐졌던 거지요.

그런데 논쟁이 되었던 것은 그 택시기사님의 두 주장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들 계속 농성해왔다는 주장’, ‘경찰도 죽지 않았느냐, 경찰청장 잘못한 게 뭐냐’. 이 대목에서 제가 충격을 먹었지요.

농성 시작 25시간 만에 진압 들어간 것은 경찰도 발표한 ‘사실’이다. 국회 행안위에서 농성시작 한 바로 그날부터 진압을 결정했다고 했다는 것도 사실로 밝혀졌다. 왜 ‘사실’조차 부정하려 드느냐?

그 아까운 31살의 젊은 목숨, 김남훈 경장이 왜 그리 죽어야 했느냐? 시민들 뿐 아니라 작전 수행하는 특공대의 안전까지 사전 보장해야 하는 것이 지휘계통의 책임이다. 그런데 수하 경찰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작전을 무리하게 펼쳤으니 지휘계통이 당연히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 그 중에서도 최종책임자인 경찰청장이 자진 사퇴해줘야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아니냐?”

제 생전 택시 안에서 그렇게 소리 높여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선지 그 기사님은 “그건 고객님 생각이고,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지 않느냐?” 고 낮추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사실 왜곡만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못을 박았지요.

***

그렇습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사실 왜곡만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왜곡되지 않으려면 정확한 사실 발표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믿을만한 진상조사가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물증을 드러내고, 모든 기록들을(비디오, 사진, 문서, 무전 내용 등) 다 분석하고, 모든 농성자, 경찰, 특공대, 용역반, 또 목격자의 증언을 들어야 하고, 사전사후의 모든 문서를 드러내고, 그리고 힘들지만 고인들의 검시도 제대로 하며 전후관계를 말끔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경찰과 검찰이 그나마 신뢰를 회복할 수 있으려면 말이지요.

언론에서도 사실관계에 대해서 만큼은 육하원칙에 의해서 모든 언론이 정확하게 드러내야 하지요. 그렇게 해도 귀를 막는 분들이 있을 지 모르지만, 그래도 사실 알리기가 기본이지요.

수습은 그 이후입니다. 저처럼 원칙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고(저는 높은 지휘 계통이 안전 체계 없이 경찰과 특공대를 몰아버린 것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현장의 일선 경찰이 명령을 따르는 외에 무슨 죄가 있습니가?),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요. 경찰에 대해서 뿐이겠습니까?

농성자 기소 문제, 철거용역반의 개입 문제, 검찰의 역할 문제, 국정조사 문제 등 원칙을 따져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지요.

***

신뢰와 원칙. 그렇게도 지키기가 어려운가요?

은폐와 조작과 희석과 두둔으로 일관하는 정부, 여당, 검찰, 경찰이 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사과할 건 하고, 재발 방지할 건 하고, 제도 고칠 건 고쳐야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고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진정 바랍니다.

2009. 1. 28.
김진애 포스팅

후기:

난생 처음 택시기사님과 논쟁이란 걸 해보니, 정말 어렵더군요.

택시 기사님은 운전을 하시니 되도록 흥분하시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렵지요.

전혀 생각이 다르고,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나오는 사람과의 토론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토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이 다르더라도 적어도 ‘사실 확인’에는 동의해야 하고, ‘적용 원칙’에 대해서는 공감해야지요. 그래야 한 발자욱이라도 앞으로 갈 수 있지요.

언론에 대한 기대도 있습니다. 언론은 '사실 전파'가 제 1 기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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