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길은 가장 중요하다. 길은 건축보다 더 중요하다. 사람들이 만나고 즐기고 편하게 느끼고 재미있어 하는 길이 있으면 그 도시는 행복한 도시다. 그런 도시에서 사람들은 행복해한다. 

사람은 가장 중요하다. 도시도 건축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사람을 위압하거나 눈으로 감탄하게 하는 건축이 아니라 사람이 편안해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즐거워하는 건축이 가장 좋은 건축이다. 

‘길로 만든 건축’인 인사동 쌈지길은 그래서 도시와 시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건축물이다. 눈으로 보는 건축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인사동 쌈지길은 그래서 건축의 본연에 가장 충실한 건축물이라 할 만하다.

‘쌈지길’에서 행복한 사람들

상업공간이자 복합문화공간인 ‘쌈지길’에서 사람들은 행복하다. 인사동길에서 한 걸음만 살짝 들어오면 꽤 너른 마당이 있다. 제일 먼저 사람들이 눈에 띈다. 4층 까지 이어진 경사길에 이어져 있는 올망졸망한 가게들의 쇼윈도를 보는 사람들이다. ‘뭔가 재미있겠구나!’ 호기심이 든다. 경사길을 따라 오르며 사람들에 합류한다. 아기자기한 소품들, 공들여 만든 장식품, 우리 전통의 오방색과 자연소재들이 어울린 세련된 전통공예품들을 아이쇼핑하다가 여기저기 가게를 드나들다보면 시간을 잊어버린다. 

쌈지길은 이 경사길을 ‘오름길’이라 부른다. 제주도의 ‘오름’이 생각나는 정겨운 이름이다. 쌈지길이라는 이름 자체도 정겹지만 한 오름, 두 오름, 세 오름, 네 오름 하는 이름도 정겹다.
 
네 오름을 오르다 보면 여기 저기 작은 공간들이 다가온다. 이리로 빠지면 작은 정원이고 저리로 빠지면 계단길이고, 조금 더 오르면 바닥이 나무길로 바뀌다가 또 흙길로 바뀐다. 조금 더 오르면 ‘하늘정원’에 닿는데 손바닥만한 크기의 정원이지만, 인사동의 하늘을 안는다. 어스름한 석양에 이 하늘정원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어둑어둑해지는 주변을 느끼면서 두런두런 노닥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가롭다. 도심 한가운데 아주 작은 공간에서도 이런 한가로움이 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쌈지길의 매력이기도 하다.

쌈지길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얼마나 될까? 평일에는 하루 6천 여명, 주말에는 만 여명을 넘는다고 한다. 인사동의 유동인구가 평일 6만 여명, 주말에는 10만 명 정도라고 하니, 인사동을 찾는 사람 중 적어도 10%는 쌈지길을 들러 가는 셈이다. 쌈지길은 인사동의 명실상부한 명소가 되었다.

인사동과 쌈지길의 만남

쌈지길은 인사동과 많이 닮았다. 쌈지길이 ‘길로 만든 건축’이라면 인사동은 ‘길로 만든 동네’다. ‘인사동길’이라 불리는 큰 길보다 작은 골목들 속에 인사동의 더 큰 세계가 숨어있다. 열두 큰 골목과 열두 작은 골목으로 꼬불꼬불 꺾이고 굽은 골목, 폭 1미터에서 3미터 사이의 작은 골목들이 얽히고설켜있는 미로 같은 골목이 인사동의 매력 포인트다. 그 작은 골목들에 옹기종기 늘어서 있는 작은 가게들, 갤러리들, 색깔 있는 식당과 곳곳에 앉아 쉴 곳, 담장 옆의 작은 화단과 텃밭들이 인사동 골목의 특색이다. 그 골목의 기분이 그대로 쌈지길의 공간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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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길과 쌈지길이 만난 것은 행운이다. 쌈지길은 인사동에 있기에 성공할 수 있었고, 인사동은 쌈지길을 만나서 더 인사동다워질 수 있었다.

2000년 나는 인사동길 설계를 하고 한참 공사 안팎을 돌보고 있었는데, 쌈지길 땅이 팔린 것을 알았다. 이 땅은 인사동에서는 꽤 큰 땅인 편이다. 땅의 안쪽에는 꽤 큰 한옥이 있었는데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길 쪽을 따라 올망졸망 늘어선 작은 가게들의 숫자는 열두 개. 약 50미터쯤 늘어서 있으니 인사동 전체 600미터 중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가게들이다.

이 땅이 어느 부동산회사에 넘어간다는 소문들이 무성해서 인사동의 터줏대감들인 열 두 가게 주인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을 터에, 패션 과 디자인 브랜드를 갖춘 (주)쌈지가 이 땅을 인수했다고 결정이 났다. 열 두 가게 주인들은 시위를 하기도 하고 이 땅에서 가게를 계속 하게 해달라고 서울시에 청원도 넣고 여러 시끌벅적한 과정들이 있었다. 건축주 천호균 사장은 아주 지혜로운 결정을 내렸다. 건물을 새로 짓더라도 열 두 가게의 영업권은 그 자리에 그대로 확보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결정은 인사동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한, 정말 지혜로운 결정이었다.

열두 가게를 그 자리에 그대로 살리겠다는 결정이 쌈지길의 설계 개념을 리드했는지도 모른다. 쌈지길은 인사동 특유의 성격을 그대로 살려나갔기 때문이다. 인사동 골목길을 따라 작은 가게들이 이어지듯이, 오름길을 따라 60여 개의 가게들이 이어진다. 만약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처럼 쌈지길을 내부공간으로 만들었더라면 쌈지길은 별 성격 없는 상업시설에 불과하게 되었을 것이다. 인사동에서처럼 쌈지길에서는 모든 가게가 노천 길에 면해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햇볕이 나면 나는 대로 그에 따라 오름길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하늘정원에서 소나기를 만나는 장면은 아주 감칠맛 난다.  
 
건축가의 쌈지길 건축론

쌈지길을 설계한 건축가 최문규(미국 건축가와의 공동작업)는 설계 개념을 잡고 풀어내기는 아주 쉬웠다고 한다.

“인사동처럼 재료를 소박하게 쓴다, 인사동처럼 길을 만든다, 인사동처럼 가게를 작게 많이 만든다, 인사동처럼 오밀조밀한 공간을 만든다, 인사동 골목처럼 작은 화단과 텃밭을 많이 만든다.” 

그런데 가장 어려웠던 것은 관할 구청의 건축심의 과정이었는데, 전통문화지구인 인사동에 한옥 형태를 지어야 한다는 은근한 압력이 있었지만 꼭 한옥의 형태를 하지 않더라도 한국적인 공간과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설득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건축가로서 꼭 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은, 열 두 가게 지붕을 테라스처럼 만들어서 사람들이 인사동길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게 하고 싶었는데, 구청에서 지붕을 만들라고 해서 못한 것이란다. 허가 받을 때 경사지붕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지붕대신 땅을 덮어서 그 위에 이끼며 덩굴 식물을 심어서 오히려 향토적인 분위기가 살아난다.  

시공자인 (주)장학건설 대표 정세학은 설계자의 의도인 ‘단순한 배경 장치로서의 건축’이라는 개념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전벽돌과 노출콘크리트와 나무’ 딱 세 가지 재료만 쓰는 것이라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치밀하고 정교한 시공이 필요했고, 오름길처럼 외부에 노출되는 공간이 많아서 더욱 치밀한 시공이 필요했다고 한다.

좋은 건축가와 좋은 시공자가 만나고 싶어 하는 좋은 건축주. 사실 쌈지길은 좋은 건축주 덕분에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쌈지의 천호균 대표와 현재 쌈지길의 대표 천호선이 이들이다. 바로 그 동네에 필요한 바로 그 공간을 기획해내는 안목을 갖춘 건축주다.

회사 이름 ‘쌈지’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자그만 주머니에 보물을 가득 담는 것처럼, 쌈지는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대중적인 거리문화의 풍요로움에 착안하여 패션과 악서세리, 그리고 생활소품에 파격적인 발상 전환을 가져온 디자인으로 국내와 해외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 회사다.

쌈지는 전통공예와 디자인 소품을 다루는 마켓플레이스를 착안해서 서울의 인사동, 대학로, 홍대앞에 각기 하나를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인사동에만 프로젝트 결실을 맺었다고 한다.     

예술과 공간의 기발한 만남

‘쌈지길’에서 파는 상품들은 디자인이 파격적이면서도 친근하다. 뭔가 우리 옆에 항상 있는 것 같지만 또 새롭게 보인다. 파는 상품 뿐 아니라 공방에서 직접 참여해서 만드는 것도 있다. 페인팅이나 소품 디자인 공방이다. 인사동에 정말 있음직하고 있어야만 하는 공방 개념이다.
 
쌈지길은 건축물 자체가 심플하고 소박해서 오히려 아주 좋은 공간 무대로서의 효과가 더 살아난다. 쌈지길은 무대이고 사람들과 쇼윈도와 상품이 주연이다. 상업건축에서 갖추어야 할 기본을 품위 있게 지키고 있다. 공간 곳곳에 자연스럽게 설치된 공간장식품들도 우리의 허를 찌르게 평범한 듯 하면서도 기발하다. 예컨대, 계단실의 중앙을 타고 피어오른 커다란 꽃들, 입구에 가게 표지판들을 마치 문패처럼 우리말로 써서 조각 문패처럼 만든 것, 하늘을 수놓는 깃발들, 초등학교 복도에 있을 듯한 벤치에 화려하게 칠한 색채, 스텐리스 쟁반과 양은 쟁반으로 만든 모빌 장식품 등, 하나하나 기발하다.

마치 ‘모든 사람은 디자이너, 모든 것은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쌈지길은 평범한 우리들의 삶에 숨어있는 디자인을 재미나게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세련되고 쿨하고 외국 냄새 물씬 풍기는 명품 브랜드 매장과는 얼마나 다른가. 차원이 다르고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다.


쌈지길에서는 어느 누구도 편하게 느낄 수 있다. 쌈지길에서는 어느 누구도 주눅 들지 않는다. 쌈지길에서는 모든 사람이 호기심을 발동한다. 쌈지길에서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다. 한국사람들은 물론 외국사람들은 더욱 더 재미나 한다. 나이든 어르신도 물오른 젊은이들도 멋모르는 아이들도 재미나 한다.   
 
건축이 없는 건축, 사람이 주인인 건축

건축가 최문규는 쌈지길을 완공한 후에 여러 상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쌈지길에는 건축이 없다’는 평을 건축가들에게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쌈지길은 건축적 권위나 건축적 허세를 벗어던졌다는 얘기이고 그 점에서 건축가들의 불평을 사기도 한 모양이다.

하지만 건축이 없는 건축, 사람이 주인인 건축을 만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지금도 쌈지길은 끊임없이 변한다. 간판도 변하고 인테리어도 변하고 일부 외관도 변한다. 하지만 쌈지길은 상투적인 상업건축으로 변하지 않고 여전히 기품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사려 깊게 만들어놓은 간판, 인테리어 지침이 작동하는 이유도 있지만, 쌈지길 건축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공간의 품격과 건강한 공간 골격, 배경으로 존재하는 건축적 겸손함 덕분이다. 이런 건축적 지혜가 앞으로 우리의 건축에 시사하는 바 크다.

여하튼 우리는 ‘길로 만든 동네, 인사동’이 있어 행복하고, ‘길로 만든 건축, 쌈지길’이 있어 행복하다. 말로 하기 보다는 직접 쌈지길의 마당에 들어가고, 오름길에 오르고, 하늘정원에 앉아보는 것이 최고다. 



쌈지길에 대한 간단한 소개

위치 :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38번지(인사동)
규모 : 대지면적 454.72평, 연면적 1,249.60평, 지상4층 지하2층
용도 : 근린생활시설 및 문화 집회시설
구성 : 최소 3평 이상의 가변적 공간의 작가 공방과 문화상품의 직영매장과 작가별, 분야별
단독매장형태로 전체 60여 개 가게로 이루어진 공예, 디자인, 전승문화의 종합문화 콘텐츠
건축가 : 가아건축 최문규 + 미국 건축가 가브리엘 크로이쯔
건축주 : ㈜쌈지 천호균
시공사 : ㈜장학건설 정세학
수상 :
 - 2005년  한국건축문화대상 특선
 - 2005년  제23회 서울사랑시민상 본상
 - 2005년 미국 AIA 협회 메릴랜드 디자인 어워드
 - 2005년 미국 AIA 협회 볼티모어 디자인 어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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