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야구영화, 야구와 연애합시다
- Posted at 2009/03/21 12:59
- Filed under 책-영화 이야기
이제 WBC 준결승-결승전의 명장면을 기대하면서,
최고의 야구영화-<불 더램> 이야기를 올립니다. 야구와 연애합시다!!! ^^
“나는 야구라는 종교를 믿는다 I believe in the church of baseball!"는
야구광팬 애니의 선언으로 이 영화는 시작된다. '별의별 종교, 별의별 남자 시험해봐도 믿을 건 야구밖에 없다, 죄의식을 강요하지 않아서 좋고 절대로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는 것인데, 온갖 이론과 문학과 철학을 동원하여, 미국이 스스로 만든 것 치고 꽤나 괜찮은, 야구를 찬양한다.
<불 더램/
Bull Durham>
감독:론 셸튼/
주연:수잔 서랜든,
케빈 코스트너,
팀 로빈스
이 영화는 ‘마이너리그 야구’ 얘기다. ‘더램 불즈’라는 미국 중서부의 전통적인 구단, 전형적인 2류 구단이다. 신출내기들이 등단하거나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못하는 선수들 또는 퇴물들이 활약하는 구단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황소가 마스코트인 이 구단의 영원한 팬이다.
‘야구는 종교’라 믿는 주인공 애니는 시즌마다 선수 하나를 골라서 키우는 것을 자기의 숙명으로 삼는다. 종마처럼 펄펄 뛰는 애송이 남자를 봄부터 가을까지 딱 한 시즌 동안만 애인으로 삼아서 근사한 남자, 근사한 야구선수로 키워서 내보내는 것인데, 숙명이라면 아주 유쾌한 숙명이다.
에디트 피아프의 “아니, 난 후회 안 해요! Non, Je ne regrette rien” 샹송을 즐겨 듣고 이름도 불란서 향 물씬한 애니 사보이는 시즌 첫날 두 남자를 찍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탐낼만한 백만 달러 짜리 팔을 가졌으나 머리는 텅 빈 루키 투수 애비. 게임을 귀신같이 읽으며 작전을 짜고 타율도 괜찮은,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 삼 주일만에 쫓겨났던 퇴물 포수, 크래쉬.
두 남자를 집에 데려가서 애니는 자기가 정한 게임의 룰을 알려주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겠다고 한다. 크래쉬 왈, “왜 당신이 선택하지? 왜 나는 못 택하는 거요?” 애니 왈, “지구상의 누구도 선택하는 게 아녜요. 그거 다 양자역학이자 타이밍이죠. 알지 못하는 법칙이 우리를 이끌고 또 떼어버리는 거라니까.” 말인즉슨 ‘운명론’인데, 크래쉬는 '나 그런 거 안 믿는다'고 일어나 버린다. 애니는 도전하듯 묻는다 “그럼 대체 당신은 뭘 믿는데? What do you believe in, then?"
크래쉬는 속사포처럼 쏜다. 아니, 대사를 마치 재즈 음악처럼 튼다.
“나는 영혼을 믿지. 수컷, 암컷, 여자 등에 깊게 파인 홈, 뚝 떨어지는 커브 볼, 근사한 스카치 위스키, 길고 긴 사랑몸짓, 그리고 스잔 손탁 소설은 자기중심적이고 과대평가된 쓰레기라는 것. 나는 오스왈드가 케네디를 혼자 쐈다고 믿고, 인공잔디나 지정 투수제는 헌법으로 금지해야 하고, 달콤하고 소프트한 포르노 영화,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브가 아니라 아침에 풀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길고 느리고 깊고 부드럽고 촉촉한 키스를 사흘 내내 할 수 있다고 믿지.“
I believe in the soul, the cock, the pussy, the small of a woman's back, the hanging curve ball, high fiber, good scotch, long foreplay, and that the novels of Susan Sontag are self-indulgent, overrated crap. I believe that Lee Harvey Oswald acted alone, I believe that there oughtta be a constitutional amendment outlawing astro-turf and the designated hitter, I believe in the "sweet spot", soft core pornography, opening your presents on Christmas morning rather than Christmas eve, and I believe in long, slow, deep, soft, wet kisses that last for 3 days.
영혼을 믿는다는 말에 솔깃해지고 정치 암살과 여성 소설 비판에 빳빳하게 긴장되다가 크리스마스 선물 얘기에 푸근해지고 드디어는 3일 동안의기막힌 키스 얘기에 여자는 짜릿짜릿 녹아내린다. 그리고 나오는 탄성, “오 마이!(Oh, my!)” 왜 안 그렇겠는가?
도대체 어떤 순간에 여자는 남자에게 혹 가나? 도대체 어떤 순간에 남자는 여자에게 홀딱 가버리나? 영원한 수수께끼다.더구나 로미오나 줄리엣같이 ‘초짜 러버’가 아니라 산전수전 다 겪은 남녀 사이에서 그 화학반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그야말로 불가사의다. 뭉근하게 달아오르는 것도 아니고 단번에 불꽃이 튀기는 순간, 그렇다고 육욕의 부딪힘이 아니라 그야말로 ‘남 vs. 여’의 접속 순간이라면 참으로 매혹의 순간이 아닐 수 없을 게다. <불 더램>에서는 야구를 매개로 그 매혹의 순간이 30초 대사로 빚어진다. 남자의 대사에 여자의 온 몸이 촛농처럼 녹아 내리며 저도 모르게 숨을 내뿜게 하는 것이다.
이 여자 애니는 그 카리스마 당당한, 그러나 자신을 허물기를 주저하지 않는 카리스마도 갖춘 스잔 새런든이다. 이 남자 크래쉬는 세파 겪었어도 순진한 듯 느릿느릿 말을 내뱉는 케빈 코스트너다. “그런데, 누가 누구랑 자기는 자는 거예요? So, somebody gonna go to bed with somebody, or what?" 어설픈 대사를 읊는 천둥벌거숭이 속물 애비는 이 영화로 만나서 스잔 새런든과 환상의 동거 컴패니언이 된 팀 로빈스다.
애니는 막무가내 힘만 쓰는 애비에게 스트립 쇼도 시켜보고, 에밀리 딕킨슨과 월트 휘트먼의 시를 읽어주는가 하면, 스타킹 거들을 푸는 비법도 가르쳐 가며 이 답답한 루키를 시즌 동안 키운다. 크래쉬는 애니를 빈정댄다. “그래, 니 말 잘 듣는 애송이 휘두르는 맛이나 즐겨봐라. 그런 여자 심리, 내 잘 알지.”
시즌이 끝날 무렵 애비가 메이저리그에서 스카우트되고, 애비를 리드할 포수가 더 이상 필요 없어 해고된 크래쉬가 찾아온 밤, 두 남녀의 밤은 어땠을까? 베테랑은 베테랑이다.
야구와 연애하며, 연애에 빠지는 남녀, 야구와 연애해봄직 하다.
*** <불 더램>, 최고의 야구영화, 최고의 연애영화?
이 영화의 우리말 제목이 웃긴다. <열아홉번째 남자>라니? 도대체 어디서 이런 제목이 나왔을까? 영화에서도 힌트가 전혀 없는데….
이 영화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영 섭섭하기 짝이 없었는데, 2000년에 미국의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잡지에서 1988년 작인 이 영화를 베스트 스포츠 영화 1위로 뽑았다. 그 맹숭맹숭한 <꿈의 구장>, <내쳐럴>같은 영화를 제치고. 나는 신났다. “과연, 내 눈은 정확해!” 하면서 말이다. 지금도 이 영화는 최고의 야구영화로 꼽히고 있다.
이 영화, 남자들이 볼 영화다. 잘 보고 여자 심리 좀 헤아려 주라. 제발 훈련 좀 해라. 능수능란해 질 때까지. 거품 좀 빼라. 프로답게 열정 좀 가져 보라. 여자가 “뭘 믿어요?” 하면 내놓을 대사 좀 가져 보라.
이 영화, 이 시대 여자가 보면? 차라리 안전한 애송이를 택하면서도 여전히 베테랑을 그리는, 죽어도 안 빠지려고 셀프 컨트롤의 벽을 높이는 심리를 분석해 봄직도 하다. 여하튼 이 시대 여자는 복잡다단하다.
스잔 새런든? 복합심리를 넘나드는 이 시대의 쿨한 여자다. 실세계에서 팀 로빈스라는 애송이를 베테랑으로 키워낸 여자일까? 케빈 코스트너 최고의 영화다. 폼 되게 잡는 다른 영화들의 거품이 없어서 볼 만하다.
20090321. 김진애 포스팅
ⓒ 김진애 블로그 -'사람, 공간 그리고 정치'- www.jkspace.net
결승전에서 9회말 동점 만드는 것부터 열렬하게 봤는데, 연장전 10회에서 안되었네요. 9회말에서 2점을 냈어야 하는데... 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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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램 불스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 ^ 지금은 더램 불스가 탬파베이 레이스 산하 트리플 A에 있습니다.
WBC 병역 면제 관련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WBC 병역 면제가 전형적인 선심성 정책으로 개정한지 얼마 안된 병역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할 곳이 국회인데, 국회에서 조차 자신들의 말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는 다면 큰 문제 아닐까요?
김진애님 포스팅을 늘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야구 관련된 포스트가 올라와 써봅니다.-
어제 베네주엘라전은 참 뿌듯했지요. 전 메이저리거들만 있다는 팀을 이기니 더 좋더군요. '마이너리그'를 그린 <불 더램>이 좋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어릴적 야구만화-고교야구시대를 자라와서 야구에 종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깊은 믿음이 있답니다. 미국이 만든 스포츠치고 정말 괜찮은, 인생같은, 사회같은 스포츠가 흥미롭고, 프로든 아마추어든 다 즐길 수 있어서 좋고요. 저도 '한 베팅' 할 줄 안답니다.^^
내일 결승전, 어느 팀과 붙을 지 모르지만 만약 우승을 하게 되면, 아마도 '병역면제' 사안을 들고나오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전 국민/전 남성이 갖는 국민의 의무와 배치되지 않는 방향을 고민해야 하겠지요... 쉽잖은 사안입니다. 건투하세요, 너부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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