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도 집같이 만들 수 없나요?”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다. 아파트를 만드는 데 한 몫 하는 정책 수립자, 사업자, 설계자, 시공자 등 모든 전문가들이 항상 유념해야 할 말이 아닐 수 없다. ‘집 같은 아파트’를 만들 때까지 할 일은 무한하다.

‘집 같다’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첫째, 오랫동안 살아왔고 오래도록 살 것 같다. 둘째, 새록새록 가족 이야기가 떠오른다. 셋째, 뭔가 여유롭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넷째, 뭔가 우리 집만의 독특한 게 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아파트가 집같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게 참 많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앞으로 오래도록 살 것 같지는 않은,  하시라도 이사할 수 있고 이사하더라도 별로 섭섭하지 않을 것 같은 아파트, 가족이 만드는 삶의 스토리보다 오히려 잘 장식된 거실 장면이나 잘 갖춰진 부엌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 아파트, 여유보다는 빈틈없이 짜인 느낌과 따뜻함보다는 편리함이 먼저 떠오르는 아파트, 이웃집이나 우리 집이나 별 다를 게 없고 다르면 오히려 이상할듯한 아파트.

이런 아파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남이 부러워하는 아파트’가 아니라 ‘우리 집 같은 아파트’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사실 아파트에 관련된 정책, 개발, 설계, 유통, 관리 방식 등이 모두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될 때까지,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당장 우리 사는 아파트를 돌아보자.   

아파트에 대한 여러 아쉬움 중에서 나는 아파트의 뭔가 답답하고 갇힌 듯한 느낌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에 주목해보고 싶다.

<이 집은 누구인가>라는 책에서 나는 비슷한 크기의 한옥과 아파트를 비교하면서 왜 한옥은 작다는 느낌은 들어도 답답하다는 느낌은 안 드는지, 왜 아파트는 크다는 느낌은 들어도 답답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해 이모저모 써놓은 적이 있다. 

아파트에서는 이른바 ‘체험 동선’이 짧고 ‘시각 동선’이 짧고 ‘청각 동선’이 짧다는 점이 답답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치명적인 요인이다. 짧은 동선이 좋다는 단순 상식이 갖는 단점이 아파트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동선이란 그냥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거닐면서 여러 만남이 일어나는 체험임을 표현하는 말이 ‘체험 동선’이다. 한옥은 체험동선이 길고도 풍부하다. 직각 동선뿐 아니라 순환 동선도 있고, 방과 방 사이의 동선 뿐 아니라 방과 마당 사이의 동선도 있다. 이 사이 사이에 다양한 체험이 녹아든다.

시각 동선도 따라서 풍부해진다. 아파트처럼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미세기문과 대들보와 창문과 처마와 그 너머 보이는 조각하늘까지 시선이 길어진다. 한옥의 좋은 점은 뭔가 더 있을 듯, 저 너머까지 내 것인 듯, 공간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고 넘어가지만, 아파트의 무언가 둔중한 불쾌함은 사실 소리 때문인 경우가 많다. 너무 조용하면 조용한 대로 전자음만이 둔중하게 공간을 채우고, 벽에 소리가 반사되는 것이 안 좋다. 아파트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일 때 정신없다는 느낌이 드는 게 바로 이 소리 때문이다. 마치 닫힌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얘기할 때 드는 느낌과 비슷하다. 아파트의 청각 동선은 직선으로 반사하는 반면, 한옥의 청각 동선은 공간 사이사이로 감아들고 퍼지기 때문에 편안하고 또 여유롭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의 심리란 참 묘한 것이어서, ‘눈에 보이는 게 다’라고 여겨지면 뭔가 답답하고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아파트의 문제는 쉽게 너무 다 드러내 보인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사람도 뭔가 겹겹이 더 있는 듯 하고, 만날 때 마다 뭔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 매력적이듯이, 우리의 아파트도 이런 매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아무리 한정된 공간이라 할지라도 한 눈에 다 보아는 것이 아니라 살짝 감추고 살짝 돌면 뭔가 다른 게 보이고 시선과 시선 사이에 여러 장치들이 겹겹이 있고, 저 문, 저 벽 뒤에 무언가 더 있을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면 기대감이 계속되는 것이다. . 

한 눈에 반한 사람이 길게 가기 어렵지 않은가. 요즘 아파트는 너무 한 눈에 반하게 만들려는데 힘을 쏟는다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길게 가는 매력, 그것이 ‘집’의 매력일 것이다.

남들 하는 대로만 하지 말고, 발코니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꼭 똑같은 대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꼭 들어가자마자 거실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파트라 해서 마당이 없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지 말고, 창문이 지금처럼 크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발상의 폭을 넓혀보자.

아파트를 집으로 느끼게 되면, 우리 사는 문화가 훨씬 여유롭고 풍부해질 것이다. 집 같은 아파트, 만들어보자.      

☆ 읽으신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잠시 스톱!☆ 김진애의 블로그가 맘에 드신다면 RSS버튼을 클릭해서 구독해주세요
, , , , , , , , , ,
받은 트랙백이 없고 , 5 Comments

Trackback URL : http://jkspace.net/trackback/18 관련글 쓰기

« Previous : 1 : ... 437 : 438 : 439 : 440 : 441 : 442 : 443 : 444 : 445 : ... 455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