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에 눈에 띄는 건물이 부쩍 늘었다. 튀는 건물들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건물들의 설계에는 외국 건축가들이 참여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좋은 건축인 것일까? 아니면 “유명한 외국 건축가가 설계했대.” 하는 ‘브랜드네임 빌리기’에 그치고 있는 것일까? 

사례를 보자. 외국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 중에는 괜찮은 것도 있다. 가장 최근 준공된 서울 광교의 <SK 타워>는 ‘홍콩 RAD 그룹’이 설계했는데, 삐딱한 형태나 다채로운 창문 형상이 다소 유행적 매너리즘에 빠진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유쾌한 변화를 보여준다. 비슷한 건물이 너무 많아지면 문제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KPF’라는 고층건물 설계 잘하는 미국의 건축 팀이 설계한 <동부금융센터>와 <포스틸사옥>은 철골구조와 유리로 날씬하고 우아한 자태를 만들어냈다. 국제성을 부각하는 테헤란로의 가로 풍경을 만들어냈다고 할까?

그렇지만 유감스러운 예도 적잖다. 파랑, 빨강의 원색과 동그라미와 사선 막대기 형태가 눈에 띄는 서울 강남 영동대로 상의 <아이파크타워>. 나는 이 건물을 처음 볼 때, “아니, 도대체 누가 저 장난질을 했지?” 했었다. 건축주가 어떤 상업 디자이너 또는 광고기획가를 시켜서 디자인한 것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외관 설계를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아니 베를린의 ‘유대기념관’의 탁월한 개념을 만들어 낸 그 건축가? 아니, 뉴욕의 9.11 테러 현장의 재건축 설계경기에 당선된 그 건축가가 설계했단 말인가?

스위스 출신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강남교보타워>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10여 년 동안을 끌어온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중후한 표면 처리를 위해 택한 벽돌 프리캐스트(벽돌 패널을 붙이는 시공) 외관에 처음에는 기대도 하였다. 그런데 결과는 보타의 브랜드인 ‘흰색과 갈색의 띠 두른 기둥’이 나타난 정도다. 건물을 두 개로 쪼갠 것은 괜찮은 선택이지만, 건물 규모가 너무 크고 거리에 바짝 붙어있고 벽돌 색깔이 너무 무겁고 단조로워서 거리를 차분하게 하기 보다는 위압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옥상의 철골구조물은 형태가 어정쩡하고 가로 공간과 로비는 거의 디자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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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콜하스, 장 누벨, 마리오 보타, 이 세 명의 세계적 스타 건축가가 설계한  <리움 삼성미술관>은 그저 ‘일정 수준 이상을 넘긴 범작’일 뿐이다. 설계를 잘못했다거나 하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이런 스타 건축가 셋이 만든 작업이라면 세계 문화계에서 회자될 정도의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결과는 그들의 기존 공간 어휘들을 그대로 쓴 정도다. 이들이 자신의 작품이라 자랑스럽게 내놓지 않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만큼 ‘작가의 치열한 고민과 진정한 혼’이 안 보인다.    

옛 화신백화점을 털어낸 자리에 라파엘 비뇰리가 외관을 재구성한 <종로타워>는 ‘오버’한 디자인의 전형이다. ‘클라우드’ 라고 불리는 상층부 원형과 건물 양쪽에 있는 코어의 디자인은 너무 두텁고 거칠다. 그렇게도 우아한 자태의 일본 ‘도쿄포럼’을 설계한 비뇰리라면 상당한 디자인 파워를 갖춘 사람인데, 이런 졸작에 그치다니.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요점은, 외국 건축가가 설계한다고 해서 꼭 좋은 건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외국 건축가를 잘 쓰려면, 적어도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확실한 설계 크레디트를 주면서 일을 맡기느냐?” 설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특히 초기 개념은 아주 중요하다. <아이파크타워>나 <종로타워>가 졸작이 된 것은 외관 구성만 맡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동부금융센터>, <포스틸>이 좋은 성과를 낸 것은 설계 크레디트가 확실했다는 것이 작용했을 것이다.  

둘째, “주문자가 건축가의 야심을 일깨우는가?”좋은 건축주는 좋은 건축가, 좋은 작품을 만든다. 주문자(즉 건축주)가 수준이 높을수록 건축가도 역량의 극한을 끌어내려 노력하는 것이다. <리움 미술관>은 이 점에서 아쉽다. 역작을 만들려는 건축가의 야심을 끌어내지 못했던 결과가 아닐까 추측이 가능하다.  

셋째, “일정 수준의 건축비를 감당할 수 있느냐?” 이것도 무시못할 일이다. 통상적으로 외국 건축가의 설계는 수준 높은 디테일이 받쳐줄 때 빛을 발하며 많은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통상 건축비를 비교하면 일본이 거의 2배, 유럽이 1.7배 정도 더 크며, 특별한 설계일수록 건축비는 올라간다.(예컨대 ‘도쿄포럼’의 경우는 거의 4배) <SK 타워> 경우 초기 설계에서 많이 후퇴한 안으로 최종 시공이 되었는데 건축비 문제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요컨대, 외국 건축가를 쓴다는 것은 ‘인재’를 쓰는 요령과 같다. 그 인재에게 최대한의 책임과 권리를 주는가, 인재의 창조 야망을 불러일으키는가, 그리고 현실적인 제약을 감안할 수 있는가의 세 가지다. 우리도 이제 외국 건축가를 기용하는데 그저 유명세만 빌리는 정도는 넘어서야겠다. ‘좋은 성과를 만들기 위한 인재 활용’의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외국 건축가들을 기용하는 데에는 주로 대기업이 나서왔다. 30여 년 전 미국 건축가 시저 펠리를 기용해서 <광화문 교보>를 설계한 것이 첫 번째 시도라 할까? 그 전에 일본 설계회사를 기용해서 지은 것도 적잖았지만(시청앞 플라자호텔, 코리아나 호텔 등) 그 때는 대체로 숨어서 설계한 ‘용병’의 개념이었다. 지금은 건축가 이름을 마케팅한다는 것이 다르다.

문제는 이런 대기업의 브랜드 마케팅 행태를 공공에서도 따라 한다는 것이다. 2004년에 서울시에서 세운상가 주변 재개발에 대한 설계경기를 하는데 외국 건축가 다섯 팀만 지명 초청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개운찮다. 대기업이 외국 유명 브랜드를 마케팅하는데 치우치는 것도 답답한데, 서울시까지 나서서 그러는 것은 아무래도 공공 마인드 부족이다.

외국 건축가를 쓰는 것은 결국 좋은 작품을 우리 도시 속에 만들려는 노력 중 하나가 되어야겠다. 앞으로도 국제설계경기 등 외국 건축가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활동할 것이다. 좋은 작품이 많이 만들어진다면 반가운 일이고, 또한 그 과정에서 우리 건축가의 해외 진출도 많아지는 세계 교류활동이 많아지면 더욱 반가울 일이다.

“유명한 외국 건축가 누구누구가 설계했대.” 하는 말에 속지 말자. 눈에 띈다고 좋은 건축이라고 여기지도 말자. 정말 우리 맘에 들어야 좋은 건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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