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유전자’의 마술을 위하여!
- Posted at 2008/06/09 11:35
- Filed under 김진애의 좋은 새벽/정치의 가치
그것은 ‘마술’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공간을 완전히 바꾸어놓는 광경이란 마술의 순간이다. 우리 시민들은 놀라운 마술 능력이 있다. 아마 우리 국민의 유전자에 새겨진 ‘광장 유전자’ 아닐까?
시민들은 그 마술을 여러 번 부렸다. 지금 세대에게 기억나는 순간들만 해도 1987년 6.10항쟁,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 2004년 탄핵규탄 촛불집회, 그리고 이제 2008년 미국쇠고기재협상 요구 촛불집회. 그 외에도 역사 속 마술 순간은 수없이 있었다. 덕수궁 대한문 앞의 고종 장례, 1945년 광복의 광화문, 시청앞과 광화문네거리의 4,19, 1960년대의 수없는 거리 시위, 1980년의 봄,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거리를 광장으로 만드는 마술적 순간들이다.
서구 도시문화와 달리 우리 도시문화는 광장의 역사는 아니다. 서구 도시들이 ‘포럼, 아고라, 플라자, 스퀘어, 플레이스’ 등 수많은 종류의 광장들을 기본으로 도시를 구조적으로 엮는 반면 동양의 도시에는 거리는 많아도 광장은 없었다. ‘천안문 광장, 여의도 광장, 김일성 광장’ 같은 것도 근대에 와서 만들어지고, 시민 활동보다는 ‘관의 통제 욕구, 과시 욕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뿐이다. 대신 우리 시민들은 거리를 순간적으로 광장으로 만드는 마술을 부려왔던 것이다.
2004년 월드컵 거리응원을 통해서 처음으로 관에서도 ‘광장의 순기능’에 대해서 눈을 뜨고 나서서 광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랑해마지 않는 서울광장이나 청계광장도 시민의 마술적 힘이 없었더라면 힘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그 실질적 광장들이 촛불집회의 메카가 되고 있는 것에 대통령은 씁쓸해하는 것 같지만, 실제 그 광장들이 없었다 해도 시민들은 놀라운 마술 능력으로 거리를 광장으로 순식간에 바꾸어냈을 것이다.
나는 각별하게 시청앞의 ‘이한열 열사 노제’를 역사의 명장면으로 든다.
시청앞 공간의 구조적 속성을 아낌없이 표출하는 장면이라 사진 한 장으로도 감동적이다.
(그 때 우리나라의 역사 현장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1987년 6월 한 달, 유학 막바지 논문을 쓰면 매일매일 뉴욕타임즈 첫 면의 서울 소식을 들으며 애를 태웠었다.)
시청앞 공간은 마치 ‘심장’처럼 생겼다. 도로들이 마치 핏줄처럼 불끈불끈 들어오며 펄떡펄떡거리는 심장 모습 비슷하다. 이런 펄떡펄떡함이 이한열 열사 노제 사진에서 그대로 전해진다.
반면 광화문 세종로는 마치 ‘큰배’같다. 돛을 올리고 다함께 노를 저으며 항해를 떠날 것 같은 느낌이다. 2004년 탄핵규탄 촛불집회 장면이 이런 성격을 가장 근사하게 표현해낸다. 그 길고도 긴 배를 저어가며 어디로 떠날 거나 하는 공간의 심성이다.
***
지난 5월 2일부터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작은 날개짓이 태풍으로 발달된 것은, 시민들이 부린 마술이다. 마치 “베이징의 날개짓이 카리브해의 허리케인을 만든다‘는 카오스이론처럼, 작은 꿈이 거대한 꿈으로 자라고 작은 소망이 큰 소망으로 자라는 것이다. 우리 유전자 속에 숨은 광장을 만드는 마술적 역량이 실제 광장에 뿌리를 내리며 더욱 큰 나무로 자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가끔 상상해보곤 한다. 만약 강남에 시청앞 같은 광장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돈만 알고 아파트만 알고 비즈니스만 챙기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것 같은 강남 시민들을 진정 우리 국민의 유전자를 키우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강남시민들이라 해서 다 이기주의적이라거나 공인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알다시피 강남에는 전혀 광장이 없고, 광장 역할을 할 만한 넓은 공간조차 없다. 강남의 남북 중심축인 강남대로, 동서 중심축인 테헤란로를 보면 그저 건물만 빽빽이 들어서있고, 건물 주변의 공간조차 벤치놓고 정원가꾸는 등 자기 공간표시가 역력한 공간들 뿐이다.
강남에 유일하게 사람들이 모였던 월드컵 거리응원 때, 강남대로 일부를 막고 거리응원을 했는데, 그 때가 유일하게 ‘강남의 도시 공공성’을 느꼈던 때였다. 이제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잇속에만 밝은 강남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공성에도 강남 사람들이 눈뜨게 하려면 강남 광장 만들어보라.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의 국회의원들, 구청장이 과연 그런 생각을 할지, 서울시장이 그런 생각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우리 국민들은 광장이 없어도 거리를 광장으로 만드는 마술적 유전자를 갖고 있다.
사람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정신이 표출된 공간을 겪어보면 또 사람들은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장으로 한번 나와보라.
그 공간이 당신 유전자에 숨어있는 마술을 깨어나게 할 것이다.
6월 10일 내일을 기다린다.
마틴루터킹의 워싱턴메모리얼 광장 연설: 비폭력 평화행사
제가 좋아하는 명장면 중의 하나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메모리얼 앞 연설입니다. “I Have a Dream"이라는, 위대한 연설이 나온 집회이지요.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킹 목사의 그 연설을 들으면 가슴이 쿵쾅쿵쾅 할 정도로 킹 목사의 혼이 느껴지는 연설입니다. 마치 노래 같아요. 영혼의 리듬을 통해 역사를 바꾼 그 연설, 흑인들의 혼을 뒤흔들고 백인들의 양심을 뒤흔든 그 연설, 비폭력을 호소하고 평화행진을 호소했던 그 연설, 세상을 바꾸어냈지만 결국 킹 목사는 폭력에 희생되어 1968년 암살을 당하지요.
평화집회를 악용하려는 불온한 폭력세력은 언제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 080609 새벽 김진애 생각
72시간 릴레이촛불 집회에서 몇몇 폭력적 충돌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는 촛불시민들 많으시지요. 폭력을 견제하는 자정 노력을 하는 시민들도 많아지고, 그런가하면 벌써 폭력 집회로 몰아가려는 세력도 나타나고...
킹 목사님처럼 종교인으로 사회정의에 앞장서며 ‘인간에 대한 믿음, 변화에 대한 믿음, 비폭력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신 분은 얼마나 존경스럽습니까? 촛불집회를 쓸어버리라는 일부 우리 종교인들의 발언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종교인으로서도, 자연인으로서도, 사회인으로서도.
내일 6월 10일, 지난 현충일의 ‘특수공작수행단회’의 시청앞광장 행사처럼, 자칫 충돌을 일부러라도 야기할 사건들이 생길지도 몰라서 불안합니다.
하지만, 평화의 힘은 더 큽니다. 시민의 힘은 더 큽니다. 촛불의 힘은 더 큽니다.
우리 시민의 광장 만드는 마술의 힘은 훨씬 더 큽니다.
내일 밤 광장에서 뵙지요. 평화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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