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란 엄마와 시어머님 스타일
- Posted at 2008/05/13 09:57
- Filed under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요리하는 인생
요리 스타일 전혀 다른 두 어머니를 거친 것은 나의 행운이다.
두 어머니는 정말 다르다.
식솔 많고 집안 대소사 많은 내력과 손 큰 것은 비슷하지만 요리 스타일은 어떻게 그렇게 다를까.
친정 엄마는 한마디로 ‘우르르 쾅쾅’ 스타일이다. 빠르고 거침없이 해낸다. 산본 시댁과 수원 친정과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젊은 시절을 단련했고, 열 명의 아이를 낳은 크나큰 배와 일곱 아이를 키워낸 큰 그릇 덕분 아닐까. 별로 하는 것 같이 안 보이는데 어느새 다 되어 있는 식이다.
시어머님은 한마디로 '조근조근' 스타일이다. ‘진즉 요리계로 나가셨더라면 한 달인 했을 텐데’ 할 정도로 체계적이시다. 그 옛적 일제강점기 기간에 진주여고를 다니셨기 때문일까?(박경리 선생과 비슷한 시기에 다니셨다.)
'첫째, 둘째, 셋째’ 조목조목 짚고, 재료는 이렇게 다듬고, 썰기는 이렇게, 재두기는 저렇게, 담기는 요렇게…, 요리책에 다 쓰기에는 너무도 사소한 그러나 절대적으로 중요한 노하우를 실전으로 가르쳐주신다. 물론 지금도 조근조근 그 잔소리를 그치지 않으시는 것이 유감이지만^^, 요리 배우는 초급 과정에서 시어머님의 ‘조근조근 스타일’은 아주 유효했다.
요리하는 중
친정 엄마의 레퍼토리는 “빨리 해”.
시어머님의 레퍼토리는 “‘개미’가 있어야지”
‘빨리’는 나의 모토가 되었고, '개미'는 나의 철학이 되었다.
‘개미’라는 말은 내가 아주 공감하는 진주 사투리다. ‘맛있다’는 말보다 더 진한, 입에 달라붙는, 뭔가 손맛이 느껴지는 정겨운 말이다. '깊은 맛', '바로 그 맛'이라고 하면 어떨까. 나는 ‘빨리’와 ‘개미’를 입에 붙이고 산다. '우르르쾅쾅' 요리하는 사이사이 조근조근 '개미'를 내는 비법을 낸다고 할까. ('개미'란 말은 경상도 사투리인줄 알았더니, 전주사투리라는 설도 있다. 여하튼 '깊은 맛'이라는 뜻의 '개미', 정말 정겨운 말이다.)
친정 엄마와 시어머님의 메뉴 중 영원히 못 잊을 맛들이 있다.
친정 엄마의 ‘굴깍두기’와 시어머님의 ‘갈치속젓 김치’,
친정 엄마의 ‘갈비찜’과 시어머님의 ‘도미매운찜’,
친정 엄마의 ‘북어찌개’와 시어머님의 ‘된장찌개’,
친정 엄마의 ‘오징어국’과 시어머님의 ‘대구 매운탕’,
친정 엄마의 ‘고사떡’과 시어머님의 ‘빈대떡’,
친정 엄마의 ‘도루묵’(알배기 도루묵을 연탄불에 매운 양념으로 굽는다)과
시어머님의 ‘볼레기’(남해 연안에서 잡히는 우럭처럼 생겼지만 훨씬 작은 생선. 그 고소함은 누구도 못 잊는다) 등 등 등.
친정 엄마와 시어머님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하지 못한 것은 정말 아쉽다.
특히 친정 엄마의 굴깍두기는 명절 때면 온갖 기름진 음식으로 느끼해졌을 때, 모든 딸, 사위, 아들, 며느리, 손주들이 마지막 밥 한 공기 비벼먹기로 유명했는데, 배우려고 맘 먹을 때 그만 엄마가 돌아가셔서 지금도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있다. 몇몇 딸들이 옛 맛의 기억을 따라 흉내를 내고는 있는데, 엄마의 그 맛은 아니다. 요리란 얼마나 섬세한가.
시어머님의 조근조근한 체계적 요리 전수 방식은 두고두고 요긴하다.
오히려 나는 시어머님의 노하우는 상당히 전수한 듯 싶으니, 체계적 배우기는 그래서 좋은 것이다.
손맛도 체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전통의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나도 죽기 전에 요리 책 하나 만들어 보련다.
이 꿈을 이룰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을 먹느냐 이상으로 어떻게 만들어 먹느냐가 중요하다.
(요새는 '무엇을 먹느냐'도 너무나 중요해졌지만^^...)
요리는 그 사람의 스타일이다.
엄마와 시어머님의 스타일에서 진화한 나의 요리 스타일.
*** 김진애 생각:
언젠가, '요리란 아빠와 시아버님 스타일'이란 말도 나올 것으로 나는 굳게 믿는다.
'요리'란 인생의 가장 큰 맛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남자에게서 요리의 즐거움을 뺏는 것은 분명한 차별이라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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