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이혼'에 대한 소신
- Posted at 2008/05/21 08:04
- Filed under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남성여성인생가족
우리 부부가 딸들에게 공언해 왔던 것.
“우리가 이혼한다면 아주 우아하게 헤어질게.”
그러나 영 잘 될 것 같지 않다. 간이라도 빼 줄 듯하다가도 원수처럼 돌아서는 것이 남녀 사이라던가? 촌수 없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본질적 딜레마다. 뜨거운 남녀 관계든, 정겨운 남녀 관계든, 인간적인 남녀 관계든, 의리 있는 남녀 관계든, 선남선녀(善男善女)가 곧이곧대로 선남선녀이기는 어렵고 최악의 ‘악남악녀(惡男惡女)’가 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일 것이다.
우리 집안에도 드디어 다난(多難)한 남자 여자의 헤어짐이 벌어졌다. 그것도 두 건씩이나. 맏딸, 맏아들이 아니면서도 버팀 역할을 하는 우리 부부는 아주 곤혹스러웠다. 70대 부부의 별거와 30대 부부의 이혼 과정을 목격, 조언, 조정, 위로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남녀가 우아하게 헤어지기란 정말 어렵구나!’라는 단순한 진리다.
이 과정에서 우리 식구들 사이에서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음은 물론이고 온 친척들 집에서도 맹렬하게 토론이 벌어졌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낯 뜨거운 장면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감정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사는가’ 같은 원초적 의문을 던져 주는 장면이 참으로 많이도 벌어졌었다. 참 인간관계란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헤어지기 힘들어서 지옥처럼 살기를 계속 할 수도 없는 일이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우아하게, 근사하게, 멋지게 헤어질 수 있을까?
나의 평소 소신은 세 가지다.
첫째, 우아하게 헤어질 수 있는 상대를 만날 것.
둘째, 우아하게 헤어질 수 있는 상대가 되고 또 만들 것.
셋째, 우아하게 헤어질 수 있는 상태로 만들 것.
다행히 “우아하게 헤어질 수 있는 상대가 되고 또 만들 것” 그리고 “우아하게 헤어질 수 있는 상태로 만들 것”은 같이 사는 과정에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다. 머리도 클 만큼 컸거니와, 세상사를 알 만큼 알았고, 아이들 키우면서 아이들의 미래 세상에 대한 고민도 제법 할 만큼 되었을 터이니, ‘강추’할 만한 기준 아닐까?
(결혼 이야기는 인류 최고의 인기 스토리? TV 인기 프로와 대히트 영화.)
이 두 기준은 사실 동전의 양면이다.
사람은 상태를 만들고 상태는 사람을 만든다.
그리 마음을 먹으면 그런 상태를 만들고,
그런 상태가 되면 그리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그릇을 키울 의무가 있다. 어떤 그릇일까?
다시 세 가지를 꼽아 본다면,
‘경제적 독립을 할 그릇, 정서적 안정을 지킬 그릇,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질 그릇’이다.
‘경제적 독립의 그릇’이란 역시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현실적으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렇다. “돈이 최고야” 하는 속물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앞가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사람은 이성을 잃지 않는 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남자는 밥벌이, 여자는 집 챙기기’ 같은 역할 구도는 영 불합리한 구도가 아닐 수 없다. 역할 분담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이 새삼 의심스러운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정서적 안정을 지킬 그릇’이란 것도 그리 만만치 않다. 경제적 사정이 괜찮다고 정서가 안정되리라는 법은 없다. “당신 없이는 못 살아”는 그 순간에야 환상적으로 들릴지는 몰라도 얼마나 부담스럽고 피곤한 상황인가? 그렇다고 “당신 없어도 잘 살 수 있어”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헤어짐에 따른 배신감과 상실감이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터인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상대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릇, 자신의 괴로움을 표현하고 상대의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릇이 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질 그릇’이란 아무리 부담스러워도 직면해야 할 의무다. 남녀가 헤어져도 그들은 여전히 엄마이고 여전히 아빠다. 아이들이 어려도 그렇고 성장하여 독립한 자녀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녀가 헤어져도 기본적인 가족관계가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란 얼마나 힘든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으로서의 존경심을 잃지 않게 하는 것, 부모로서의 위치를 지키는 덕목의 중요성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잘 안 될까?
“왜 상대편의 입장에 서질 못하는가?
왜 상대의 과만 보는가?
왜 상대의 공을 인정하지 않는가?
왜 헤어진 이후의 삶을 보지 못하는가?
왜 여자에게 ‘더 참기’를 요구하는가?
왜 남자는 ‘홀로 살이’에 그리 겁을 내는가?
왜 여자는 경제적 독립에 그리 겁을 내는가?
왜 여자는 ‘죄책감’에 시달리는가?
왜 남자는 ‘상처받은 자존심’에 시달리는가?
왜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더 이기적이 되는가?
왜 사람은 자신을 희생자로 설정하고 싶어 할까?”
사람들의 나약한 심성에 대한 실망감도 든다.
( 그림: '이혼케이크'란다. 영화 <장미의 전쟁>이 생각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어 보이는 것은, ‘
헤어지는 부부에게
우리 사회가 은근히 가하는 단죄의 폭력’이다.
왜 남녀는 꼭 같이 살아야만 정상이라고 보는가? 왜 남녀 관계에 정상 비정상이라는 잣대를 꼭 들이대야만 할까? 그 남녀는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거기에 죄책감까지 요구하는가?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세계 3위란다. 믿고 싶지도 않고 잘 믿어지지도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통계적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남녀는 참으로 다사다난한 단계를 지나고 중이고 그만큼 이런 현실에서 우리에게는 다양한 인생스타일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하다.
가족들의 이혼 사건은 다른 가족들에게 어떻게 작용할까? 집집마다 맹렬한 토론 끝에 갖은 반응이 다 나온단다. “우리도 헤어져 봐?, 우리는 어떻게 좀 잘 살아 보자, 우리도 헤어지겠군.” 등.
나와 나의 남자는 어떻게 될까?
우아하게 헤어지는 모습을 과시하게 위해서 이혼을 할 수도 없고 보면^^, 우리의 미래를 누가 알랴. 다만 '우아한 이혼에 대한 3가지 소신'은 적어도 우리가 맺은 관계만큼은 지켜줄지도 모른다.만날 때 헤어짐을 생각했고, 같이 있으면서 따로 될 때를 생각하는 용기가 우리가 맺은 관계를 지켜 주지 않을까?
최근 친척들, 친구들의 이혼 고민, 이혼 단행 이야기를 꽤 자주 듣게 됩니다.. '
'결혼 이야기' 보다 더 힘든 '이혼 이야기', 잘 쓰기 너무 어려운 이야기 입니다.
결혼이 유일한 선택이 아니듯 이혼도 유일한 선택이 아니고.
결혼을 선택하듯 이혼도 선택할 수 있고.
'사람 관계의 으뜸인 남녀관계'를 잘 맺기란 그렇게도 어렵군요.
'부부의 날'이 있다는 것을 저는 올해 첨 알았습니다. 참 한심도 하지요?^^
5월 가정의 달에 21.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을 저는 잘 믿지 않지만,
둘이 하나의 울타리를 '그런대로 잘' 만들 수 있음은 믿습니다.
부부님들, 오늘 서로 우리의 다른 하나를 새삼 새로운 눈으로 봐 줍시다.
저도 새삼 다짐.^^
**** 0521 오후 4시 생각...
이 글이 이렇게 방문수가 많을 줄이야...
점심에 몇분들과 점심을 먹다가 이 이야기를 하니까, 한 분이 하시는 말씀....
"그렇지요. 이혼 한 번 생각 안해보는 사람 없으니까..."
평소 무척 진중하신 분이 이 얘기를 하니까 더 놀랐습니다.
결혼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지요.
여러 악플도 달리지만, 아래 '댓글 보고'님의 해석이 맥을 꿰뚫고 계서서 마음 가볍습니다.
부부의 날에 부부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역지사지 해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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